국내서도 인기가 높았던 미국 드라마 'CSI' 시리즈에서는 사건 해결에 과학수사대의 활약이 눈부시다.

미궁에 빠질 법한 범죄 사건도 철저한 과학적 수사로 수집한 증거들로 진범을 밝혀낸다.

미국 검사들은 유죄를 입증할 강력한 과학 증거가 없으면 배심원들이 유죄판결을 하지 않으려는 'CSI 효과'가 있다고 불평한다고도 한다.

그러나 브랜던 L. 개릿 미국 듀크대 로스쿨 교수의 저서 '오염된 재판'(원제 Convicting the Innocent)은 실제 미국 형사사법제도가 드라마와는 딴판임을 고발한다.

책은 과학수사의 오류로 유죄판결을 받았지만, DNA 검사로 결백을 입증받은 오판 피해자 250명을 조사한 르포 사례집이다.

무고한 이들 250명 가운데 17명이 사형을, 80명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과반인 155명이 흑인이었고, 20명은 라틴아메리카계였으며 백인은 74명이었다.

책은 먼저 자신이 저지르지도 않은 범죄를 자백한 사례부터 다룬다.

오판 피해자의 16%에 해당하는 40명이 이런 거짓 자백으로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대부분 살인자나 성폭행범만 알 수 있었던 범행의 구체적 정황에 대해 자백을 했으며 대부분은 경찰이 조사 과정에서 이들에게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부적절하게 노출했을 것으로 저자는 추정한다.

거짓으로 자백한 무고한 피고인들 가운데 절반 이상이 미성년자였거나 정신장애가 있었다고 한다.

오판의 가장 많은 사례는 피해자나 목격자에 의해 범인으로 잘못 지목된 경우다.

조사 대상의 76%에 해당하는 190명이 이 사례에 해당한다.

책에서 구체적으로 다룬 하비브 압달의 사례를 보면 목격자에 의해 범인으로 잘못 지목됐고, 피해자는 재판에서 압달이 성폭행범임을 틀림없이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경찰이 피해자에게 압달의 사진만을 보여주면서 그를 알아볼 수 있겠냐고 반목해서 피해자를 압박한 결과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피해자는 처음에 범인을 전혀 다르게 묘사했고, 압달을 경찰서에서 처음 봤을 때 피해자는 그가 범인이 아니라고 말했다.

압달은 백인 목격자에 의해 오인된 흑인 74명 가운데 한 명이다.

저자는 타인종 간 얼굴 식별은 틀릴 확률일 매우 높지만, 형사절차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아울러 첨단 DNA 기술이 활용되기 전 혈액형이나 치아 자국(치흔) 등 법의학 증거로도 무고한 피해자들이 나왔다.

저자는 이런 과학 증거들은 모두 검찰 측에 편향된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이 밖에도 오판 피해자 사례의 21%는 제보자들이 악역을 맡았다.

대부분이 동료 수감자였는데, 이들은 거짓 진술을 한 대가로 검사에게 가벼운 형을 받았다고 한다.

저자는 "오판 피해 사례들에서 발생한 잘못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기보다는 이런 잘못된 판결에 대한 연구를 통해 시스템상에 문제가 있으며 개혁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시사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번역은 국내 주요 소송에서 여러 차례 무죄를 끌어낸 신민영 변호사가 맡았다.

한겨레출판. 512쪽. 2만8천 원.
DNA 검사로 뒤집은 미국 형사사건 오판들…'오염된 재판' 출간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