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항아리, 신유한·조귀명·이용휴·유한준 평전 출간
주류에서 밀려나 '나만의 글' 추구한 18세기 문인들
"많은 사람이 하는 대로 따르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이치를 따라야 한다.

이치는 어디에 있는가? 마음에 있다.

무슨 일이든지 반드시 자기 마음에 물어보라."
혜환 이용휴(1708∼1782)는 무작정 세태에 따라 행동하기를 배격하고 자신의 마음을 잣대로 삼아 유연하게 처신하고자 했다.

그는 유독 '나', 즉 자아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환아잠'(還我箴)이라는 글에서 "나 그 옛날 첫 모습은 순수한 천리(天理) 그대로였는데 지각이 하나둘 생기면서부터 해치는 것들 마구 일어났네"라고 한 뒤 천지신명께 "이 한 몸 다 마치도록 나는 나와 함께 살아가겠노라"고 빌었다.

이용휴가 시선을 밖이 아닌 안으로 돌린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는 저작 '성호사설'로 잘 알려진 성호 이익의 조카이자 조선 후기 이름난 학자 이가환의 아버지였다.

하지만 큰아버지인 이잠이 숙종에게 상소를 올렸다가 맞아 죽은 사건으로 인해 가문 전체에 낙인이 찍혔고, 정치적 뜻도 펼치지 못했다.

비단 이용휴뿐만 아니다.

18세기에 뛰어난 문장가로 명성을 떨친 인물 중에는 이런저런 사연으로 중심부에서 밀려나 글쓰기에만 천착한 이가 적지 않다.

글항아리가 '18세기 개인의 발견' 시리즈로 펴낸 '천하제일의 문장', '나만이 알아주는 나', '기이한 나의 집', '저마다의 길'은 각각 18세기 문인 신유한(1681∼1752), 조귀명(1693∼1737), 이용휴, 유한준(1732∼1811)의 삶과 문학세계를 비평적 시각으로 조명한 평전이다.

'기이한 나의 집' 저자인 박동욱 한양대 교수는 이용휴에 대해 "각종 한시의 금기를 위반하면서까지 의미를 전하는 데 주력했다"며 "할 말만 하되, 남들과 똑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용휴가 당파 싸움으로 인해 당대 문단에서 문제적 인물이 됐다면, 신유한은 서얼 출신이라는 신분 때문에 좋은 관직을 얻지 못하자 문학적 성취를 추구했다.

그는 조선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온 뒤 유명한 기행문 '해유록'(海遊錄)을 남겼다.

하지영 세종대 초빙교수는 '천하제일의 문장'에서 "신유한의 이름을 '해유록'으로만 기억하기에는 아까운 작품이 그의 문집인 '청천집' 안에 가득하다"며 "이렇다 할 가학도, 스승도, 동학도 없었기에 신유한은 그만의 이채롭고도 개성적인 문학을 꽃피울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신유한은 20대 초반 진사시에 합격한 천재였고, 제자를 가르칠 때도 정형화된 틀에 얽매이지 않았다.

문장도 마찬가지여서 파격적이고 특이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대부 세계의 경계에 서 있던 신유한은 "과거를 통해 진출한 자들과 사귀어보니 경학에 대해서는 앵무새처럼 부질없이 말만 따라 하는 수준이고, 문예는 속 빈 강정"이라며 "권력과 부귀를 얻고 나면 온 세상을 상대로 교만하게 굴었다"고 비판했다.

하 교수는 최고의 문장가를 희망한 신유한의 꿈이 충분히 실현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문단에 자그마한 균열을 가한 것만은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송혁기 고려대 교수가 '나만이 알아주는 나'에서 다룬 조귀명은 몸이 아파서 불행했다.

어린 시절부터 병으로 고생한 조귀명은 "나는 병과 함께 태어났고 병과 함께 자라서 일찍부터 병에 대해 묵묵히 알아 왔다"고 했다.

바깥나들이를 거의 하지 못한 조귀명은 집에 머물면서 유교 경전은 물론 불교와 노장사상 관련 서적까지 다양한 책을 탐독했다.

그는 죽기 전에 자신의 문집에 실을 서문을 써 달라고 젊은이 세 명에게 부탁했지만, 모두 거절했다.

이에 대해 송 교수는 그 이유로 '조귀명의 글에 담긴 이단 사상'을 지목하고 "유가, 주자학에서 벗어나는 사상에 깊이 빠져들고 그것을 글로 남기는 것 자체를 꺼리던 18세기 전반 조선의 지적 풍토를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주장했다.

유한준은 자신이 사대부였지만 타락한 사대부를 거침없이 비판한 인물이었다.

아울러 그는 '각자 자신의 도를 도로 삼는다' 혹은 '각자 자신의 길을 가라'는 뜻을 담은 '각도기도론'(各道其道論)을 제시했다.

'저마다의 길'을 쓴 박경남 고려대 교수는 "유한준의 문학은 어떤 특정한 이념에 얽매이기보다는 자신의 길을 가는 모든 개인의 모습을 이념적·당파적·신분적 편견 없이 오직 실제적 사실에 근거해 드러내고자 했다"고 평했다.

출판사 측은 "18세기에 새로운 사유와 혁신을 보여주는 인물로 흔히 북학파 문인들이 논의됐지만, 네 사람은 이들과 동시대에 살면서 또 다른 방향에서 새로운 사유를 모색한 인물들"이라며 평전을 통해 '개인의 발견'이라는 18세기 문학의 또 다른 지향점이 확인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각권 380∼408쪽, 2만∼2만2천 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