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괄량이 길들이기' 안무 수정 방침…누리꾼 "재해석 바람직"vs"예술 자유 훼손"

최근 국립발레단이 작품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 장애인을 희화화했다는 지적을 받은 안무를 수정키로 하자 온라인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SNS세상]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전 공연 수정 놓고 갑론을박
국립발레단은 지난 20일 "창작자가 여성 혐오나 장애인 비하를 의도했던 건 아니지만 시대적 흐름을 감안했다.

재단도 그런 의도는 없었지만 논란이 있다면 안무를 수정하며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인 등이 말괄량이 길들이기 중 남자 주인공 친구들이 여자 주인공을 겁주기 위해 뇌성마비, 뇌병변 장애인 모습을 따라 하고 치마를 들치는 장면이 장애인을 비하한 것이라고 주장하자 다음 달 공연에서 안무를 수정키로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일부 누리꾼은 "시대가 바뀌었다는 걸 이번에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조금씩이라도 (고전을) 시대에 맞게 재해석하고 발전하길 바란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과거 작품을 현대의 잣대로 평가하고 수정하는 것은 예술의 자유와 역사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장애 비하·성차별…"과거라도 비판은 필요"vs"당시 배경 존중"
현대적 시각에서 문제가 제기되는 작품은 말괄량이 길들이기처럼 창작 당시 사회에서는 당연하게 여겨졌던 차별이나 가부장적 질서 등이 드러나는 것들이다.

인종·성 차별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해외 고전이나 여성의 정조를 강조하는 '열녀전' 등이 그 사례다.

누리꾼 사이에서는 고전 공연도 현대적 기준을 반영해 비판적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입장과 작품 창작 당시 시대상을 고려해 현대적 잣대로 판단하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시각이 대립하고 있다.

[SNS세상]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전 공연 수정 놓고 갑론을박
새로운 기준 적용을 요구하는 이들은 작품이 창작될 당시에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더라도 현대적 시각에서 명백하게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면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작품 다시 쓰기 등을 통해 고전에 드러난 윤리적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온라인 연예 커뮤니티의 익명 누리꾼은 "시대도, 세상도, 생각도 바뀌어간다면 예전 작품도 더이상 성역이 아니다"라며 "당시에는 그랬더라도 이제는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윤단우 무용칼럼니스트도 "고전 작품이 만들어지던 시절에는 차별이나 혐오가 용인됐더라도 현대인들이 볼 때 현대의 시각이 적용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며 "과거에 있었던 흑인 분장 코미디가 사라진 것처럼 고전의 차별과 혐오 효소를 그대로 가져오는 것은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반면 창작 당시 분위기를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이들은 현대적 시선을 적용해 예술 작품을 바라보는 것이 예술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반박한다.

트위터 아이디 'c*********'은 "고전에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며 "시대적 배경이 현대 사회와 다를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는 글을 게시했다.

고전을 현대의 입맛에 맞게 각색하거나 현대의 시각에 근거해 윤리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작품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SNS세상]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전 공연 수정 놓고 갑론을박
◇"비판·이해 양자택일 아닌 입체적 자세 가져야"
전문가들은 이러한 논의가 이뤄지는 것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두 가지 자세가 모두 예술 작품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분석이다.

방민호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현대는 과거에 비해 인권이나 젠더 문제 등에 대해 발전한 인식 기준을 갖게 됐다"며 "이 기준에서 과거 작품은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인식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방 교수는 "이런 작품을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거나 인정하기보다 입체적으로 읽어야 한다"며 "당시 배경을 이해하면서도 잘못된 것은 비판하는 태도로 작품을 수용하는 것이 올바른 자세일 것"이라고 당부했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도 "시대별로 가치관은 달라지므로 새롭게 형성된 가치관에 입각해 비판을 하는 것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며 "그렇지만 그런 고전들도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당시 시대에 입각해 이해하는 태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 평론가는 "과거에는 당연히 행해졌던 차별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인권 감수성이 예민해지는 것은 긍정적인 방향"이라며 "이러한 공론장을 통해 지속적인 논의가 일어나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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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