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선화랑 내달 8일까지
한국화가 이영지 개인전…선명한 직관적 아름다움, 2030 마음을 사로잡다

한국화가 이영지(46)의 그림은 직관적인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보통의 현대미술 작품과 달리 작가의 심오한 뜻을 이해하려고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컴퓨터 일러스트 못지않게 선명한 색채를 뿜어내는 나뭇잎이다. 나무 주위를 노니는 아기자기한 하얀 새들도 미소를 자아낸다. 하지만 그림을 보다 보면 밀도있는 배경이 주는 깊이와 은은한 분위기에 더욱 마음을 빼앗기게 된다.

서울 인사동 선화랑에서 그의 작품 52점을 소개하는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보기엔 편안한 그림들이지만 작업이 쉽지 않다. 먼저 한지를 여러 겹 겹치고 아교 녹인 물을 칠한 뒤 말리는 ‘반수 처리’를 한다. 해충을 막고 색을 더 선명하게 내기 위해서다. 이후 원하는 색과 질감이 나올 때까지 밑색을 여러 번 덧칠하며 흐린 먹으로 무늬를 입힌다. 작품을 만드는 시간의 절반이 이 같은 배경 작업에 투입된다.

회벽 같은 질감의 배경이 완성되면 비로소 작가는 한지에 수를 놓듯 그림을 그린다. 나뭇잎을 그릴 때는 먹으로 미세하게 테두리를 그린 뒤 안에 다양한 색의 분채(조개 등 자연재료로 만든 물감)로 속을 채운다. 이런 작업을 무수히 반복해 완성된 그림에서는 선명한 나뭇잎 빛깔이 톡톡 튀는 매력을, 오랜 시간의 흐름이 담긴 듯한 배경이 한국화의 편안함과 깊이를 선사한다.

“대학원생 시절 어머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2년 뒤 아버지께서 심장마비로 돌아가셨어요. 그 충격 때문에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붓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15년 전 처음 나무 그림을 그릴 때는 허공에 홀로 붕 뜬 나무를 그렸어요. 하지만 나뭇잎을 하나하나 그려넣으면서 자기치유를 경험하게 됐고, 그림도 더 풍성해졌습니다. 좋았던 과거만큼이나 현재와 미래도 소중하고, 흘러간 시간의 흔적은 우리 주위에 남아 있다는 사실을 나무와 새 그림을 통해 전하고 싶어요.”

그의 작품은 지친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한다는 평가를 받으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지난 3월 화랑미술제에 선보인 작품들은 정식 개막 전에 모두 팔렸다. 이번 전시에서도 90% 이상이 걸리자마자 팔려나갔다. ‘그대 있음에’(2020·사진)는 조만간 한 대기업 건물 로비에 걸려 임직원의 마음을 위로할 예정이다.

특히 2030세대가 이 작가의 작품에서 큰 위안을 받는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화랑에서 열리는 전시의 관객은 대부분 기존 고객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관객의 80%, 구매자의 70%가량이 처음 화랑을 찾은 2030세대였다. 원혜경 선화랑 대표는 “별다른 홍보를 하지 않았는데도 인스타그램 등 SNS를 보고 작품을 보러 온 젊은 층이 많았다”고 했다. 전시는 6월 8일까지.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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