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섭 화백, 별에서 나온 억조창생의 생명…화폭에 담다
황호섭 화백 개인전 'Stardust'
생명·물질의 기원은 별의 잔해
물감방울 말리고 칠하기 반복
갤러리BHAK 내달 12일까지
생명·물질의 기원은 별의 잔해
물감방울 말리고 칠하기 반복
갤러리BHAK 내달 12일까지

황 화백의 추상화 49점을 소개하는 개인전이 26일 서울 한남동 갤러리 BHAK(옛 박영덕화랑)에서 개막했다. 작가는 캔버스에 떨군 물감 방울들이 마르기를 기다렸다가 물로 씻어낸다. 테두리만 남은 방울들의 원형 위에 다시 물감을 얹고 말리고 씻어내기를 반복한다. 작품에 즉흥성과 영감을 가미하면서도 섬세함을 살리기 위한 작업이다.
인쇄물이나 컴퓨터 화면으로 보면 일반적인 단색화처럼 보이지만, 작품의 진가인 역동성은 실제로 봤을 때 드러난다. 켜켜이 쌓인 물감의 미묘한 질감은 색채에 따라 세상의 전혀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검붉은 색조의 그림에서는 수십억 년 전 뜨거웠던 지구에서 처음 생겨 퍼져나가는 최초의 생명체들이, 코발트블루 색조의 작품에서는 푸른 대양 위 영원히 부글거리는 물거품이 떠오른다.

황 화백은 경력과 국제적인 명성에 비해 국내에선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다. 화가 인생 거의 전부를 프랑스 파리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가난한 20대 유학생이던 1984년 파리 국립고등장식미술학교 졸업전에서 당시 유럽 최고 갤러리스트였던 장 프루니에의 눈에 들면서 프랑스 예술계의 주요 작가 중 한 명으로 발돋움했다. 1980~1990년대에는 프랑스 최고 화랑인 장푸르니에갤러리 전속작가로 활동하며 파리 뉴욕 도쿄 서울 등 국내외 유수의 화랑에서 100회에 가까운 개인전과 그룹전을 열었다. 프랑스 문화부가 지원하는 작업실도 제공받았다. 황 화백은 이 같은 영향력을 기반으로 다른 한국 화가들을 세계 예술계에 알리는 데 도움을 주기도 했다.
작품성을 높이 평가한 김환기 화백의 부인 김향안 여사를 비롯해 박명자 갤러리 현대 회장, 정기용 원화랑 회장, 윤영달 크라운해태홀딩스 회장 등이 그를 파격적으로 지원했던 건 전설적인 에피소드다. 1995년 뉴욕 전시 때는 고(故) 백남준 선생이 뇌졸중으로 투병 중인데도 휠체어를 타고 나와 그를 격려했다. 현재 그의 작품은 파리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까르띠에재단, 국립현대미술관진흥재단, BNP파리바은행, 휴렛팩커드재단과 서울의 국립현대미술관, 환기재단, 서울·대구시립미술관 등 다양한 기관에 소장돼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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