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미유 생상스, 죽음을 희극적으로 표현
김연아의 쇼트 프로그램 배경 음악으로 친숙
흑사병의 공포, 춤과 음악으로 승화
한경DB

한경DB

"죽음의 무도가 시작된다. 해골이 수의를 펄럭이며 껑충껑충 뛰어간다."
-앙리 카자리스(Henri Cazalis)의 시 <<착각>>에 수록된 <평등, 형제애> 中 한 구절
한국을 대표하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 김연아를 떠올릴 때, 아마 국민 대다수는 질끈 묶은 머리에 손가락을 쫙 펴고 양옆을 째려보는 눈빛이 그려지실 겁니다. 2008년 김연아가 처음 선보인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쇼트 프로그램은 전례 없는 센세이션을 일으키면서 피겨 여왕의 탄생을 알렸죠.

그렇다면 당시 사용됐던 음악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가 전 세계를 2년째 고통 속으로 밀어 넣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알고 계실까요. 오늘은 코로나19 이전 최악의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 흑사병을 풍자한 대표적인 음악, 카미유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를 가까이 들여다보겠습니다.
한국경제신문 2009년 2월6일자 1면 기사. 당시 김연아 선수는 '죽음의 무도' 프로그램으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 자료=한경DB

한국경제신문 2009년 2월6일자 1면 기사. 당시 김연아 선수는 '죽음의 무도' 프로그램으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 자료=한경DB

죽음의 무도, 최악의 전염병 '흑사병'에서 꽃 피우다
우선 작곡가 카미유 생상스(Camille Saint Saens, 1835~1921)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보겠습니다. 생상스는 19세기 낭만주의 시대를 대표하는 프랑스 작곡가로, 모차르트에 비견될 정도의 천재였다고 알려집니다. 절대음감을 가져 만 2세 때부터 피아노를 치고 작곡도 이른 나이에 시작했죠. 실제로 생상스가 만 3세가 되던 1839년 최초로 작곡한 '피아노를 위한 작은 단편'은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이토록 음악적 재능이 뛰어났던 생상스가 처음으로 청중의 열광을 직접 느낄 수 있었던 작품이 바로 '죽음의 무도'입니다. 1875년 파리에서 초연을 한 이 곡은 그의 여러 작품 가운데 가장 뜨거운 환호와 성공적인 평가를 받은 작품입니다. 생상스 서거 100주기를 맞은 오늘날까지도 '죽음의 무도'와 '동물의 사육제'는 그를 기리기 위해 연주되는 대표적인 곡으로 꼽힙니다.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의 '아슈도드에 번진 흑사병'. 작품 소장=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니콜라 푸생(Nicolas Poussin)의 '아슈도드에 번진 흑사병'. 작품 소장=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

그렇다면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영감의 원천은 어디였을까요. 바로 유럽 인구 3분의 1 이상의 목숨을 앗아간 중세 시대 최악의 전염병 흑사병입니다. 생상스는 전염병으로 모든 이들의 삶에 만연했던 죽음을 희극적으로 풍자하고자 이 작품을 작곡했습니다.

흑사병 창궐 이후 중세인들이 느낀 죽음에 대한 공포는 극심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당시 시체가 길거리에 쌓여있는 그림을 보면 당시 상황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간접적으로나마 전해집니다. 이들이 유일하게 의존할 수 있었던 창구는 미신이었습니다. 지금과 같은 전염병에 대한 예방조치, 명확한 치료 체계가 없었기 때문이죠.

이중 가장 강력했던 미신이 묘지에서 신들린 듯이 춤을 추면 죽은 사람, 악마 등과 교감을 통해 죽음을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 추후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라는 예술 소재로 발전된 주제입니다.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는 이 미신을 토대로 쓰인 프랑스의 시인 앙리 카자리스(HenriCazalis)의 시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깊은 밤 악마와 죽은 영혼, 산 사람이 함께 광란의 춤을 추면서 죽음의 공포를 떨치는 모습을 머릿속에 두고 음악으로 들어가 보죠.
이 시국에 김연아 '죽음의 무도' 다시보기 [김수현의 THE클래식]

악마와 해골이 펼치는 광란의 춤…'죽음' 해학적 승화
'땡…땡…땡…'.

지휘자의 손이 움직이면 적막 속에서 하프의 12개 음이 차례로 연주됩니다. 밤 12시 영혼과 악마를 부르는 소리로, 동일한 음이 같은 속도로 12번 울리죠. 묘지 앞 오래된 시계탑에서 홀로 종이 울리는 형상을 연상토록 하는 도입부입니다.

이내 죽음의 악마를 표현하는 바이올린의 독주가 등장합니다. 두 개의 주제 선율이 겹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면, 현악기 관악기가 교차되면서 짧은 음으로 이루어진 선율을 연주합니다.

음악 전체에 다수의 스타카토(음을 짧게 끊어서 연주하는 기법)를 사용해 딸깍거린다는 인식을 주기 쉬운데, 이 또한 의도한 것입니다. 해골이 무덤에서 나오는 소리를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삐걱거리거나 딱딱한 것들이 부딪히는 형상을 악기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형상을 더 명확히 전달하기 위해 생상스는 당시 오케스트라에 쓰이지 않았던 실로폰을 무대에 올렸는데, 이 시도가 곡의 생동감을 한층 더 살렸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곡 중반을 지나서는 반음계를 주로 사용하는 주제가 펼쳐지며 음산한 분위기가 드리우기도 하지만, 이 또한 왈츠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용도일 뿐 죽음의 어두운 단면을 부각시키는 요소로 사용되지 않습니다. 조금 더 자세히는 앙리 카자리스 시 구절인 '해골이 수의를 펄럭인다' '죽음이 자신의 악기를 할퀴며 연주한다' 등의 형상을 빠르게 진행되는 음계로 부각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이후 음악이 점차 빨라지면서 축제의 열기가 오를 무렵, 오보에가 수탉의 울음소리를 나타내는 음계를 홀로 연주합니다. 죽음의 무도의 끝을 알리는 것이죠. 이에 악마와 해골이 성급히 춤을 멈추고 묘지 안으로 몸을 숨기는 형상이 현악기에 의해 조용히 표현되면서 작품은 막을 내립니다.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 곡 전반에 스페인풍 왈츠 리듬을 흐르도록 해 청중으로 하여금 음산한 분위기보다는 경쾌한 음악을 기억할 수 있도록 한 점을 가장 큰 특징으로 꼽을 수 있습니다. 죽음을 말하면서도 이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해학적으로 승화시킨 작품 '죽음의 무도'.

2년째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19 사태로 심신이 모두 지친 이들에게, 오랜 격리와 죽음의 공포, 신체적 고통을 견디는 수많은 이들에게 잠시라도 아픔을 비웃도록 하는 창구가 되어주길. 다 함께 김연아의 몸짓과 노래를 따라 하며 웃었던 그때의 우리가 서둘러 돌아오길. 코로나19라는 어두운 밤을 맞은 시대에 음악이 그러한 따뜻한 빛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김수현 한경닷컴 기자 ksoohyun@hankyung.com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