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현대 전력산업사 1898~1961

분단과 전쟁 등으로 고투한 전력 60년
개별산업 파고들어 초기史 공백 복원

오진석 지음
푸른역사
524쪽│3만5000원
1941년부터 가동에 들어간 70만㎾ 규모의 압록강 수풍수력발전소. 푸른역사·한국전력 전기박물관 제공

1941년부터 가동에 들어간 70만㎾ 규모의 압록강 수풍수력발전소. 푸른역사·한국전력 전기박물관 제공

출발은 그다지 뒤처지지 않았다. 1887년 경복궁 내 건청궁에 백열전등 750등 규모의 전등소가 설치돼 점등이 이뤄졌다. 세계적으로도 매우 이른 전등 도입이었다. 1899년 5월 4일 열렸던 서울 서대문 경교(京橋)~동대문 간 전차 본선 구간 개통식에는 백의를 입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동대문 일대가 하얗게 물들었다. 1881년 독일 베를린 교외 리히터펠데에서 세계 최초로 전차 상업 운행이 시작됐고, 미국도 1888년에야 버지니아주 리치먼드에서 전차가 처음 등장한 것을 고려하면 나쁘지 않은 시작이었다. 외견만 그럴싸했다는 게 문제긴 했지만…. 한국 전력산업 얘기다.

[책마을] 힘겨웠던 '스위치 켜기'…굴곡진 韓 전력산업을 되짚다

《한국 근현대 전력산업사 1898~1961》(푸른역사)는 1898년 대한제국이 설립한 한성전기회사부터 해방 후 경성전기, 남선전기, 조선전업의 세 회사가 1961년 한국전력으로 통합될 때까지 60여 년간의 전력산업사를 정리한 책이다. ‘수탈론’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거대 담론 위주로 진행된 한국 경제사 연구에서 취약했던 개별 산업사를 파고든 드문 결과물이다. 전력산업이 하나의 산업으로 형성돼 궤도에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한 자료를 바탕으로 재구성했다.

현대 산업의 근간이자 근대적 생활 양식에서 필수적 존재인 전기는 날로 그 중요성이 더해지고 있다. 하지만 첫출발부터 전력산업 운영과 확장은 체계적으로 이뤄지지 못했다. 전력산업이 뿌리를 내리려고 할 때마다 러일전쟁과 일본에 의한 국권 상실, 6·25전쟁과 전후의 정치 혼란 같은 ‘외풍’이 닥쳤다. 구한말엔 대한제국과 미국인 전기사업자 및 일본 간 알력으로, 식민지 시기엔 ‘민영파’와 ‘국영파’ 간 대립으로, 해방 후엔 남북 간 전쟁과 한국과 미국 간 시각차 탓에 전력사업은 이리저리 표류했다. 재정난은 만성적이었고 시장 규모는 박약했다.

자생적 기반 없이 위로부터 이식된 전력산업은 출발부터 살아남기 위해 고투했다. 한성전기를 개편한 한미전기가 자생력을 갖추기 위해 새로 설치되는 전등 1개마다 신청금 5원씩을 받고, 전주·전선 등 기타 재료 비용을 신청자에게 전가하는 모습은 오늘날 봐도 낯설지 않다.

간신히 착근하는 듯했던 전력산업을 일제가 장악하는 과정은 집요했다. 이토 히로부미, 시부사와 에이치 등 일본 정·재계 거물들이 한국의 전력 기반을 장악하는 데 앞장섰다. 김광균의 시 ‘와사등(瓦斯燈)’으로 익숙한 가스(gas)의 옛 표현 ‘와사’가 사명에 들어간 도쿄와사를 이끌었던 시부사와는 일한와사(훗날의 경성전기)라는 회사를 설립한 뒤 미국인이 경영하던 한미전기를 사들였다.

한국을 병합한 뒤 일제는 만성적인 전력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전원 개발에 몰두했다. 눈길을 돌린 곳은 수력발전이었다. 1910년대 말부터 추진된 유역변경식 수력발전은 하천의 낙차가 작고, 여름철에 강우량이 몰리는 취약점을 극복할 길을 열었다. 1929~1932년 함경남도 부전강 유역에 당시 한반도 영업용 발전력(5만㎾)의 4배가 넘는 20만㎾급 대규모 발전 시설이 들어섰다. 여기서 생산한 전기로 조선질소비료 흥남공장을 돌렸다. 이어 조선총독부가 만주국과 공동으로 압록강 7개 지점에 댐을 세워 1941년부터 운영한 수풍 수력발전소는 일제 전력정책의 하이라이트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로 치달을 무렵엔 군수산업 지원·육성을 위해 전력산업에 대한 지원과 통제가 강화됐다. 하지만 이 시기에 이미 한반도의 발전원은 남쪽은 화력, 북쪽은 수력으로 분리됐고, 전력 불균형은 정상 수준을 한참 벗어나 있었다.

해방과 함께 이뤄진 분단은 전력산업의 불균형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해방 당시 북한의 발전능력은 152만3913㎾로 한반도 전체 발전량의 88.5%를 차지했다. 게다가 남한(19만8782㎾)의 전력시설은 일제강점기 예비용·수력 보조용으로 만든 화력발전소였던 탓에 효율이 크게 떨어졌다. 이런 상황에서 1948년 북한의 ‘5·14 단전’은 남한 산업에 결정타가 됐다. 강원 삼척의 공장지대가 휴업에 들어갔고 인천공업지대는 모두 멈춰 섰다. 서울 지역 주요 공장 생산량은 평소의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곧이어 발발한 전쟁은 얼마 안 되는 전력시설마저 거의 완전히 파괴했다. 미국이 보낸 낡은 발전선 등에 의존하는 와중에도 전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각급 규모 발전소 건설이 추진됐다. 이승만 정권에서 민주당 정권, 군사정권까지 잇따른 정권 교체에도 불구하고 발전소 건설 계획은 단절 없이 이어졌다.

전력산업사는 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큰 관심을 끌지 못했다. 25년 가까이 전력산업의 초기사를 천착해온 저자 덕에 공백으로 남아 있던 부분이 오롯이 복원됐다. 탈원전과 친환경 에너지 등 각종 논란으로 시끄러운 오늘날 전력산업의 근원을 되돌아보고, 넓은 시야에서 에너지 문제를 바라보는 데도 도움이 된다. 다만 특수 분야를 건조하게 서술한 학술서인 까닭에 일반 독자의 흥미를 끌기엔 부족한 면도 없지 않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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