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 펄떡이는 동막해변
병인양요 역사 서린 정족산성

지역문인과 떠나는 여행
함민복 시인과 강화
함민복 시인이 강화도에 처음 정착했던 곳이 동막해변 인근 마을이다. 함 시인은 동막해변에 관한 여러 편의 시와 에세이를 썼다.

함민복 시인이 강화도에 처음 정착했던 곳이 동막해변 인근 마을이다. 함 시인은 동막해변에 관한 여러 편의 시와 에세이를 썼다.

시인은 ‘낯익은 사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관찰자’라고 합니다. 뻔해 보이는데도 시인의 감성은 전혀 다른 질감의 세상을 창조해냅니다. 강화도에 사는 중견 시인 함민복과 여행을 떠난 것도 뻔하게 아는 것 같은 강화도를 새롭게 바라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시인은 삼랑성 성곽길을 걸으며 실감 나는 역사를 이야기했고, 그의 시비가 있는 동막해변에서는 갯벌이 가진 힘을 깨닫게 해줬지요. 시인의 안내에 따라 전혀 새로운 강화도로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요? 낯선 즐거움이 함께할 겁니다.
삼랑섬 성곽길 남문쪽으로 내려가다보면 전등사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삼랑섬 성곽길 남문쪽으로 내려가다보면 전등사 전경이 한눈에 보인다.

-시인의 PICK 1 삼랑성 성곽길-
강화의 알려지지 않은 명소를 소개해달라고 하자 함민복 시인은 일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강화에서 뿌리 박고 산 지 어느새 25년. 강화의 속살까지 훤하지만 워낙 곳곳이 잘 알려진 관광지여서 숨겨진 명소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운지도 모른다. 한참을 고민하던 함 시인은 삼랑성에 가자고 했다. 그는 삼랑성의 성곽길을 걸으면 단시간에 강화를 가장 깊숙이 들여다볼 수 있다고 했다.

삼랑성은 강화도 남동쪽 정족산(해발 222m)과 주변의 산봉우리를 이어 축조한 산성이다. 단군의 세 아들인 부소, 부우, 부여가 쌓았다고 해서 삼랑성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가마솥을 엎어놓은 것처럼 산봉우리 세 개가 다리 모양으로 우뚝하다 하여 정족산성(鼎足山城)이라고도 불린다. 전등사 북문을 따라 성곽 위로 올라서니 강화읍 방향으로 드넓은 땅들이 펼쳐진다. 남쪽으로는 영종도와 신시모도·장봉도가, 북쪽으로는 진강산·고려산 봉우리가 보인다. 함 시인은 “정족산성이 병인양요(1866년) 당시 양헌수 장군이 이끄는 500여 명의 조선군이 프랑스군과 전투를 벌여 물리친 곳”이라고 설명했다.

성곽길을 따라 내리막이 보인다. 남문 쪽으로 내려가면 전등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길을 내려가던 중 시인은 발길을 멈췄다. 수목장을 지낸 시인의 스승이 묻힌 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나무를 붙잡고 시인은 잠시 상념에 잠겼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스치고 지나갔다.
-시인의 PICK 2 동막해변-
동막해변은 강화에서 가장 큰 모래톱을 자랑한다. 활처럼 휘어진 백사장과 울창한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동막해변은 세계 5대 갯벌로 손꼽히는 강화갯벌을 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동막해변 중간쯤에는 함 시인의 시가 평평한 원형 돌판에 새겨져 있다. ‘딱딱하게 발기만 하는 문명에게’ 전문이다.

‘거대한 반죽 뻘은 큰 말씀이다/쉽게 만들 것은/아무것도 없다는/물컹물컹한 말씀이다/수천 수만 년 밤낮으로/조금 무쉬 한물 두물 사리/소금물 다시 잡으며/반죽을 개고 또 개는/무엇을 만드는 법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함부로 만들지 않는 법을 펼쳐 보여주는/물컹물컹 깊은 말씀이다’

워낙 이름 내세우기를 싫어해서 시비 제작을 극구 사양했지만 강화라이온스클럽에서 함 시인과 실랑이 끝에 수직이 아니라 수평 형태의 시비를 제작했다. 사실 동막해변은 함 시인이 인생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다. 강화도에 처음 자리잡고 13년이나 살았던 동네도 동막해변 인근이다. 눈만 뜨면 보이는 것이 바다였고 갯벌이었다. 그는 동막해변 갯벌에 관한 시와 산문을 여러 편 썼다.

갯벌에는 칠게, 가무락, 고동 등 다양한 갯벌 생물이 서식한다. 시인은 “온갖 생명을 품고 있는 펄의 말랑말랑한 힘이 도시의 수직성과 문명의 딱딱함을 어루만져 조화를 이루게 한다”고 했다. 동막해변을 찾은 시인의 눈은 어느새 깊어졌다. 먼바다 끝에서 파도가 일렁였다.
-시인의 PICK 3 강화 독립책방-
강화도에 5년 전부터 독립서점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했다. 제주의 독립서점이 유명하지만 강화도에도 그 못지않게 개성 있는 독립서점이 10여 군데나 있다. 그중에서 잘 알려진 곳이 우공책방이다. 사자성어 ‘우공이산(愚公移山·어리석은 사람이 산을 옮긴다)’에서 이름을 딴 서점은 북스테이도 운영해 1층은 도서 공간과 주방으로 이뤄져 있다. 문학세계에 ‘도끼발’이라는 시로 등단한 김시언 시인이 주인이다. 책방 옆 나무 공방에서는 빵 도마, 버터 칼, 펜던트 만들기 체험도 운영 중이다.

내가면 구하리에 있는 이루라책방은 동화작가 김영선 씨가 운영하는 북스테이 전문 책방이다. 아동서부터 소설·경제·문학 등 다양한 책이 3층 높이의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1시간당 1팀, 4인 이하로만 예약을 받아 방문객이 책방 전체를 온전히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숙박 공간을 글램핑장처럼 꾸며놓아 가족 단위 방문객이 많다고 한다.

책방은 아니지만 강화미술도서관도 이채롭다. 미술, 사진과 관련된 서적과 도록 1000여 권을 갖추고 있다. 20여 년간 미술 전문 기획자로 활동한 최유진 관장은 “미술에 관해 공부하고 싶지만 체계적으로 정리된 전문 공간이 없는 현실에 도움을 주고 싶어 미술관을 개관하게 됐다”고 했다. 미술관 한쪽에 전시된 미국의 전설적인 사진작가 만 레이의 오리지널 작품과 은판 사진도 감상할 수 있다.
익숙한듯 낯선 매력 '찐' 강화 만나다

■ 함민복 시인은

1988년 세계의문학을 통해 ‘성선설’로 등단한 중견 시인이다. 김수영문학상, 박용래문학상, 윤동주 문학대상, 애지문학상을 받았다.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말랑말랑한 힘》 등의 시집과 《눈물은 왜짠가》 《섬이 쓰고 바다가 그려주다》 등의 산문집을 썼다.

강화=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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