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가 쓴 신간 '번역과 중국의 근대'
16세기 이후 중국사회 균열 일으킨 번역서 100권은
청나라 말기 고증학자인 왕궈웨이(王國維, 1877∼1927)는 1898년 보낸 한 편지에서 "만약 중국이 서양 서적의 번역을 금지한다면 그것은 생명을 잃는 것이요, 영원한 노예가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라고 했다.

아편전쟁 이후 중국에서는 자국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이 뿌리부터 흔들렸다.

유럽은 중국에 앞서는 무력과 기술로 팽창 정책을 추진했다.

이 무렵 중국은 비단 문물뿐 아니라 사상 측면에서도 서구 영향을 받았다.

중국 지식인들은 서양에서 편찬된 책을 번역해 유통했고, 이를 통해 꽃핀 서학(西學)은 조선에도 퍼졌다.

역사학자인 쩌우전환(鄒振環) 중국 푸단대 교수가 쓴 '번역과 중국의 근대'(궁리 펴냄)는 명나라와 청나라 왕조가 교체될 즈음인 16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중국에서 나온 번역서 중 영향력이 컸다고 판단한 100권을 골라 소개한 책이다.

저자는 번역서를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이해하는 최선의 창구로 본다.

문화 교류는 사람의 이동으로 촉발하기도 하지만, 지식의 결정체인 책을 통해 이뤄지기도 한다.

게다가 번역서는 원서보다 빨리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저자가 선별한 중국 번역서 중에는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이 읽는 고전이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성경, 사회계약론, 국부론, 리어왕, 종의 기원,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공산당선언은 사상사 측면에서 중요한 저작으로 평가된다.

그는 성경 번역서와 관련해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1894년 상하이 '미화서관'(美華書館)이 간행한 '구세성경'(救世聖經)이 단 한 권만 출판됐는데, 이 책 장정이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그 이유는 전국 여성 신도들이 서태후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모은 자금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16세기 이후 중국사회 균열 일으킨 번역서 100권은
중국에서 수백 년 전 출판된 번역서 중에는 현재 명저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킨 책도 있었다.

예컨대 저자가 '최고로 진부한 찌꺼기 혹은 최고 인기 서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태서신사람요'(泰西新史攬要)는 1880년 영국에서 간행된 '19세기 역사'라는 책의 번역본이다.

19세기 유럽과 미국 자본주의 역사를 국가별로 서술한 '19세기 역사'는 현지에서 역사적 감각이 결여됐고 관점이 편협하다는 비판을 받았지만, 중국에서는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스펜서의 진화론 사상이 중국 지식인에게 신선하게 다가왔기에 인기 서적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이 사실이 한편으로는 씁쓸하지만 불합리하지만은 않다고 주장한다.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 소설 '가인지기우'(佳人之奇遇)도 량치차오(梁啓超)가 번역해 중국에서 반응이 좋았던 책이다.

저자는 소설 내용이 민족주의 고취와 서구 열강에 대한 저항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정치소설 번역의 필요성을 역설한 량치차오의 문학적 실천이며, 정치소설 번역의 서막을 연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한성구 옮김. 900쪽. 4만5천원.
16세기 이후 중국사회 균열 일으킨 번역서 100권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