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사진은 숲속의 나무를 찍는 것과 같아

'요코하마 참사'
경기 결과를 한마디로 표현하는 큼지막한 헤드라인.
경기를 마친 뒤 고개 숙인 한국 축구대표팀 선수들과 그 옆으로 주먹을 들어 올리며 승리를 자축하는 일본대표팀 선수의 사진 한 장.
10년 전(2011년) 0-3으로 패했던 '삿포로 참사'까지 소환하며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행에 대한 불안감을 내비치는 기사.
[신문 속 사진 읽기] 세상은 넓고 사진은 많다

지난 3월 25일 일본 요코하마의 닛산 스타디움에서 열린 축구대표팀 A매치 한일전을 보도한 국내 중앙일간지 스포츠면의 지면 내용이다.

친선경기는 그렇게 무기력한 경기를 펼친 한국대표팀의 완패로 막을 내렸다.

'80번째 한일전'이라는 표현이 말해주듯 이번 경기도 단순한 친선경기에 머물지 않았다.

그 속에는 1954년 첫 번째 한일전(일본 도쿄에서 열린 스위스 월드컵 극동아시아 지역 예선, 일명 도쿄대첩의 시작)에서 비장한 각오로 뛴 우리 선수들이 5-1 대승을 거두며 출발했던 극적인 역사와 라이벌 의식 등의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이 내재되어 있다.

"일본을 이기지 못하면 선수단 모두가 현해탄에 몸을 던지겠다"며 67년 전 첫 '도쿄대첩'에 참가했던 이유형 감독과 선수들의 투혼은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지는 이야기다.

◇ 숲속에서 나무를 찍는 일
축구를 포함한 스포츠 사진은 여러 종류의 나무(선수)들이 군락을 이룬 숲(운동장)에서 개별적인 나무를 찍는 것과도 같다.

그렇다고 나무만 쳐다보아서는 안 된다.

숲을 보아야 한다.

경기의 흐름을 알아야 개별 선수들의 플레이를 잘 찍을 수 있다.

사진기자는 전후반 90분 동안 카메라의 뷰파인더를 통해 선수들의 역동적인 플레이를 쫓는다.

축구공을 쫓아다닌다는 말이 더 정확할 것 같다.

손흥민처럼 난다 긴다 하는 선수들의 플레이 사진도 공이 빠지면 그 값어치가 떨어진다.

시쳇말로 맥아리 없는 사진이 되고 만다.

이는 대부분의 스포츠 사진이 갖는 공통점이다.

셔틀콕, 야구공, 럭비공, 테니스공도 마찬가지다.

사진 속에서는 빠져서는 안 될 감칠맛 나는 조연이다.

[신문 속 사진 읽기] 세상은 넓고 사진은 많다

물론 예외도 있다.

골프의 경우, 경기 특성상 골프채로 조그만 공을 쳐 내는 데 집중해야 하는 선수의 플레이를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 때문에 카메라 셔터는 선수가 공을 쳐 낸 뒤에 누르는 게 예의다.

셔터 소리로 선수의 집중력을 흩뜨리지 않기 위함이다.

그렇다 보니 골프 선수들의 사진에서 골프공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 일희일비를 넘어서
모든 일상적인 생활을 꽁꽁 틀어막고 있는 코로나로 인해 이번 원정경기의 정상적인 취재도 여의치 않았다.

모든 한국 언론사 기자가 현지로 출장을 가지 못했다.

연합뉴스 또한 현지 특파원의 손발을 빌렸다.

현지 통신사(교도통신)와 상주 외신(AP, AFP, 로이터 등) 사진에 의존해야 했다.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사진기자는 경기가 열리는 90분 동안 수십 장의 사진을 찍어 데스크로 전송했다.

그중에서 다음날 스포츠면에는 단 한 장의 사진이 게재됐다.

지면에는 '참사', '굴욕'을 단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한 장의 사진이 필요했을 것이다.

경기를 마친 선수들의 고개 숙인 장면이다.

최선을 다한 선수들의 지친 모습이지만, 전반적인 경기의 흐름 속에서 사진 기자가 포착해야 하는 나무 중의 하나다.

참사(慘事)의 사전적 뜻은 '비참하고 끔찍한 일'이다.

이웃 나라와의 친선경기 패배가 '요코하마의 비참하고 끔찍한 일'은 아니지 않은가.

80번의 경기가 치러지는 동안 우리는 너무나 '일희일비(一喜一悲)'의 감정선에 파묻혀 지낸 것은 아닐까.

참사라는 감정선을 표현하려는 언론은 비슷한 사진과 기사를 천편일률적으로 찍어낼 수밖에 없다.

지면에는 한 장의 사진만이 쓰였지만, 사진기자가 찍은 사진은 고개 숙인 장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신문 속 사진 읽기] 세상은 넓고 사진은 많다

경기장에서 치열하게 상대 문전을 향해 내달리고, 상대의 공격을 빈틈없이 막으려는 선수들의 땀이 배어 있는 모습 등 사진기자가 포착한 사진은 많다.

과도한 라이벌 의식과 이를 부추기는 보도는 지양하는 게 좋겠다.

선택된 단 한 장의 사진은 매우 중요하다.

나무가 잘 자라야 건강한 숲이 된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5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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