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서 코로나 예방접종 '백신관광' 봇물
유럽 이어 미국 러시아 백신관광 상품화
원정 백신접종 인정 "국가 간 협약 필요"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1년여 만에 '백신관광' 상품이 등장했다. 다른 국가나 도시를 방문해 백신을 접종하고 돌아오는 '원정' 예방접종 여행상품이다.

코로나 백신이 충분하고 접종률이 높은 국가와 도시에선 백신관광을 전략적으로 여행 상품화하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백신접종이 더딘 지역에선 상품 관련 문의와 예약이 쇄도하고 있다.

지역별로 백신수급이 다른 상황에서 "코로나 시대에 꼭 필요한 여행"이라는 평가와 "지구촌의 '웃픈'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는 평가가 엇갈린다.
○유럽에서 시작된 '코로나 백신관광'
백신관광 상품화 시도는 영국, 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백신접종이 더딘 유럽에서 시작됐다. 독일 여행사 피트라이젠(Fit Reisen)은 지난 2월 백신관광 상품 개발에 나섰다. 휴가와 예방접종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도록 해달라는 고객 요청에 따라 상품기획에 나선 여행사는 독일 내 백신접종이 시작되면서 상품 출시를 보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유럽 현지 매체들은 "코로나 상황에서 백신관광은 여행사들에게 여전히 유효한 카드"라고 평가했다.

첫 백신관광 상품은 노르웨이와 오스트리아에서 출시됐다. 지난달 노르웨이 여행사와 월드비지터(World Visitor)는 러시아산 스푸토니크 브이(V) 백신접종이 포함된 러시아 백신관광 상품판매를 시작했다.

패키지는 21일 간격으로 두 번 모스크바를 방문하는 1599유로(약 220만원) 단기여행과 23일간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 소치를 여행하는 2599유로(약 350만원)짜리 '러시아 웰빙여행' 등 두 가지. 항공편과 숙소, 현지 교통편 뿐만 아니라 통역 서비스도 포함돼 있다. 모스크바 사설병원에서 예방접종만 받는 2일짜리 상품도 399유로에 판매한다.

오스트리아에선 백신관광 여행사이트도 등장했다. 임프라이젠(Impfreisen)은 코로나 예방접종과 숙박, 관광 등이 포함된 올인클루시브 패키지를 내놨다. 합법적인 절차에 따라 백신접종이 어려운 사람에게 무료 여행의 기회를 제공하는 이벤트도 내걸었다.

러시아 스푸토니크 백신을 제공하려던 임프라이젠은 지난 3월 EU(유럽연합)가 스푸토니크를 인증 백신 명단에서 제외시키면서 상품 판매를 잠정 보류했다. 임프라이젠은 최근 두바이와 이집트, 세르비아로 가는 3000~4000유로(약 400만~540만원)짜리 백신관광 상품 개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르웨이 여행사 '월드비지터(World Visitor)'의 러시아 백신관광 홈페이지

노르웨이 여행사 '월드비지터(World Visitor)'의 러시아 백신관광 홈페이지

○美 알래스카·뉴욕 등 관광객에 백신 제공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이 백신을 접종한 미국에서도 백신관광이 등장했다. 알래스카주는 오는 6월 1일부터 관광객에게 백신을 무료로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화이자와 모더나 백신을 확보한 알래스카주는 "주민들을 위한 백신은 물량이 충분한 상태"라며 "지역의 침체된 관광산업을 살리기 위해 남은 백신을 관광객에게 무료로 공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연간 관광수입이 600억 달러(약 67조3300억원)에 달하는 뉴욕시도 관광객 유치를 위해 무료 백신접종 카드를 꺼내들었다. 타임스퀘어와 센트럴파크, 브루클린 브릿지 등 주요 명소에 승합차를 개조한 이동식 접종소를 설치하고 백신은 한 번만 접종하면 되는 존슨앤드존슨의 얀센 백신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빌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6일 언론 브리핑을 통해 "주 보건 당국의 승인을 기다리는 중"이라며 관광객 대상 백신접종이 뉴욕은 안전하고 좋은 곳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될 것으로 기대했다.

인도양의 인기 휴양지 몰디브는 방문(visit), 백신(vaccine), 휴가(vacation)로 이어지는 '3V' 백신관광 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50만 전체 인구의 절반 가량이 백신 1차 접종을 마친 몰디브는 현재 공항 등 국경 근로자의 90%가 접종을 마친 상태다.
압둘라 마우솜 관광부 장관은 지난 6일 "합리적이면서 안전한 여행 환경을 제공하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러시아도 백신관광 도입을 검토 중이다. 유로뉴스는 지난달 러시아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7월부터 외국인 관광객에게 백신접종 기회를 제공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러시아산 스푸트니크 백신은 세계보건기구(WHO)의 인증을 받았지만 유럽에선 정식 인증을 받지 못했다. 러시아 정부가 코로나 감염예방 효과가 90% 이상이라고 주장하는 스푸트니크 백신은 현재 러시아 외에 헝가리와 세르비아,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 등 29개 나라에 공급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AZ·화이자 백신도 해외접종은 불인정
백신관광은 트래블버블(비격리 여행권역), 백신여권 도입이 가시화되면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여러 국가와 도시에서 백신 접종자에 한해 입국 시 의무격리를 면제하는 등 방역완화 조치를 검토하고 있어서다. 특히 백신 접종률이 낮은 동남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에서 백신관광 상품이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태국에선 지난 6일 미국행 백신관광 상품 판매가 시작됐다. 방콕에 있는 유니타이트립 여행사는 존슨앤드존슨과 화이자 백신 접종이 포함된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LA), 뉴욕 백신관광 상품을 내놨다. 가격도 패키지 종류에 따라 2400~6400달러(약 270만~720만원)로 다양하다.

로이터통신은 6월 백신접종을 시작하는 태국에서 존슨앤드존슨 백신접종이 포함된 샌프란시스코 10일짜리 패키지가 출시 일주일만에 모집정원을 채울 정도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고 소개했다. 락폴얌생 유니타이트립 대표는 "2차 접종까지 20일이 걸리는 화이자 백신접종 문의가 90%에 달한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도 원정 백신접종 여행상품 이용이 가능할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로서는 이용이 불가능하다.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등 일부 도시는 음성진단 여부만 확인하면 입국 시 격리를 면제받을 수 있지만 출국을 위해 비자를 받아야 한다. 노르웨이와 오스트리아, 태국 등 백신관광 상품을 판매하는 국가들도 작년 4월 이후 사증면제협정이 중단된 상태다.

더 큰 걸림돌은 해외에서 맞은 백신을 국내에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러시아산 스푸토니크 백신은 아직 국내에서 인증을 받지 못했다.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와 같은 국내에 공급된 백신도 해외 접종은 인정받지 못한다. 현재 국내 접종에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사전 승인을 받은 것만 사용이 가능하기 있기 때문이다. 비자발급, 입국 시 의무격리 등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 해외에서 백신을 맞고 돌아오더라도 접종 사실을 인정받을 수 없다는 얘기다.

최근 미국 현지에서 백신접종을 마친 한국 교민들이 국내 입국 시 2주간 의무격리 조치를 면제해달라고 요청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해외 백신접종을 인정하려면 나라별로 다른 백신승인 기준과 접종사실 증명 등에 대한 상호 검증과 협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며 "공식적인 정부 간 협약이 체결되지 않는 이상 백신관광 상품을 이용해 예방접종을 해도 국내에선 효력을 인정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는 외교부 등 관계부처를 중심으로 백신여권 등 국내외 백신 접종자에 대한 방역조치 완화를 위한 방안을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선우 기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