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 화가 황재형 개인전 '회천'

한국 리얼리즘의 대표 화가
'식사' '백두대간' 등 65점 전시
국립현대미술관 8월22일까지
‘광부 화가’ 황재형의 1985년 작품 ‘식사’.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광부 화가’ 황재형의 1985년 작품 ‘식사’.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어두운 막장 안에서 광부들이 쭈그려 앉은 채 서로의 헤드랜턴 불빛에 의지해 도시락을 먹는다. 흰밥 위에 탄가루가 내려앉아 점점이 박혀 있다. 그런데 이들의 모습이 그저 비참하지만은 않다. 비록 자세는 구부정하지만 광부들의 신체는 강건하고, 서로의 밥을 비추는 헤드랜턴의 곧은 불빛에서는 이들의 신뢰와 미래를 개척하려는 의지가 엿보인다. 황재형(69)의 ‘식사’(1985)다.

한국 리얼리즘 미술의 대표 화가로 꼽히는 황재형의 작품 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전시 ‘회천(回天)’이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가 1980년대 이후 40여 년간 때로는 붓으로 캔버스에, 때로는 흙으로 나무에 그려온 작품 65점을 시대별로 만날 수 있다.

황재형의 별명은 ‘광부 화가’다. 스물일곱 살이던 1982년 아내와 갓 태어난 아들을 데리고 강원 태백으로 가 광부가 됐다. 스스로 약자의 삶을 선택한 덕분에 탄광촌의 삶을 화폭에 그대로 옮길 수 있었다. 이때 그린 그림이 중앙미술대전에서 상을 받은 그의 초기 대표작 ‘황지330’(1982)이다. 걸려 있는 낡은 작업복은 1980년 황지탄광에서 매몰돼 사망한 광부의 것이다. 작업복에 새겨진 ‘황지330’ 명찰은 죽은 이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익명의 존재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광부 생활은 길지 않았다. 당시 안경 낀 사람은 갱에 들어갈 수 없었다. 황재형은 심각한 근시를 숨기기 위해 콘택트렌즈를 끼고 일했다. 하지만 안구와 렌즈 사이에 탄가루가 끼면서 극심한 결막염을 앓았고, 급기야 시력을 상실할 정도로 증세가 심각해졌다.

그가 일을 그만둔 뒤 석탄산업은 하루가 다르게 쇠퇴해갔다. 1989년에는 ‘석탄산업 합리화 정책’이 시행되면서 폐광이 걷잡을 수 없이 늘기 시작했다. ‘탄천의 노을’(1990)은 탄가루와 오물이 섞여 흐르는 사북의 탄천 위에 황금빛 노을이 비치는 광경을 묘사해 삶의 터전이 사라지는 허무함을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는 이를 고쳐 그린 ‘작은 탄천의 노을’(2008)이 나왔다.

1993년 시작해 2004년 완성한 대작 ‘백두대간’도 이 시기 작품이다. 눈 쌓인 산줄기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 가로 5m에 달하는 캔버스를 가득 메우고 있다. 11년간 산에 수없이 올라 다양한 모습을 관찰하며 세세한 부분까지 고쳐 그렸다는 설명이다.

2010년대부터 황재형은 보다 보편적인 풍경과 인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극사실주의 기법으로 표현한 ‘아버지의 자리’(2011~2013)가 대표적이다. 진폐증에 걸려 요양원에 있는 늙은 광부의 모습을 담은 작품이다. 눈물을 머금은 광부의 눈동자와 깊은 주름은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아버지가 흘리는 피와 땀, 눈물이라는 보편성을 연상케 한다.

머리카락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도 이때다. 머리카락이 그 사람의 생명력과 삶의 궤적을 담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드러난 얼굴’(2017)은 2002년 그린 유화 ‘광부초상’을 머리카락으로 다시 그린 작품이다.

전시 제목인 회천은 ‘형세나 국면을 바꿔 쇠퇴한 세력을 회복하다’란 뜻이다. 작가는 “막장이란 갱도의 막다른 곳으로 인간이 절망하는 장소고, 1980년대 태백뿐 아니라 지금의 서울에도 도처에 존재한다”며 “인간성을 상실할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도 회복을 꿈꾸는 사람과 그들의 희망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전시는 8월 22일까지.

성수영 기자

ⓒ 한경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