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맵

대니얼 예긴 지음
우진하 옮김 / 리더스북
632쪽, 2만9000원

탄소 감축 움직임…국제질서 재편 넘어
전기차·자율차 등 산업계까지 지각변동

힘 합친 러시아·중국, 美와 신냉전 양상
석유왕국 '중동'은 미래 먹거리 찾아나서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는 자서전에서 20세기를 뒤흔든 주요 사건들을 회상하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세계 경제가 그처럼 빠르게 성장할 거라고 예상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했다. 참혹했던 전쟁의 결과 세계 경제가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거라는 게 당시 대부분의 정치 지도자와 석학들의 예측이었다.

하지만 드러커의 지인 가운데 전후 세계 경제의 폭발적인 성장을 정확히 내다본 이가 있었다. 건축가이자 미래학자인 리처드 풀러였다. 그가 세계적인 호황을 예측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 하나, 에너지였다. 그는 자신이 그려낸 기하급수 곡선을 통해 석유 에너지로의 대대적인 전환과 에너지 공급의 급증이 세계 경제의 급성장을 이끌 것으로 예측했다. 에너지야말로 인류의 번영과 생존을 가름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걸 잘 보여주는 사례다.

[책마을] 脫석유 시대…'에너지 패권 지도'가 확 바뀐다

미국의 에너지·국제관계 전문가 대니얼 예긴의 신작 《뉴맵》은 에너지 패권을 둘러싼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강대국들의 치열한 각축전을 깊이 있게 분석하고, 이 같은 경쟁이 앞으로 세계를 어느 방향으로 이끌지 설명하는 에너지 지정학 책이다. 기후 변화에 대해 점점 높아지는 위기의식, 신재생에너지의 급속한 확산, 전기차·자율주행차의 폭넓은 보급으로 절대적 에너지원인 석유 의존도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는 지금과 어떻게 다를 것인지도 설명한다.

책은 모두 여섯 장으로 이뤄져 있다. 1~4장에서는 각각 미국, 러시아, 중국, 중동 국가들의 에너지 전략을 다룬다. 5장에서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보급이 현재의 에너지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나갈지를, 마지막 장에서는 2015년 파리기후변화협약으로 본격화한 ‘탄소 순배출 제로’라는 목표를 향한 세계 각국의 움직임이 기존 국제 질서에 어떤 균열을 불러올지를 그려낸다.

저자에 따르면 현재의 에너지 지정학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은 2008년부터 본격화한 미국의 ‘셰일 혁명’이다. 2005년까지만 해도 미국은 석유 소비량의 60%를 해외에 의존한 에너지 수입국이었다. 1차 오일 쇼크가 발생한 1973년 당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은 ‘앞으로 에너지 독립을 이뤄내겠다’고 선언했지만 수입 의존도는 오히려 35%에서 60%로 급등했다.

예긴은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북쪽으로 128㎞ 떨어진 인구 407명의 작은 마을 디시에 자리 잡은 ‘SH 그리핀 4번 천연가스정’에서 시작된 셰일 혁명이야말로 “전 세계에서 미국의 위상을 뒤바꾸고 에너지 시장의 판도를 완전히 뒤집으며 세계 지정학을 새롭게 정립했다”고 단언한다. 셰일 암석층 사이에 잠자고 있던 천문학적 규모의 석유와 천연가스를 채굴하는 데 성공하면서 미국은 불과 몇 년 만에 에너지 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완전히 탈바꿈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더 이상 국제 문제에서 미국의 활동을 제약할 수 있는 요인이 사라졌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에너지 문제에서 수세에 처하면 패권 경쟁에서도 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건 함께 손잡고 미국과 신(新)냉전을 벌이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도 마찬가지다. 저자는 에너지 수출국 러시아와 수입국 중국이 각자의 전략적 목표를 위해 어떻게 협력해 나가고 있는지를 찬찬히 풀어낸다.

러시아의 크림반도 합병으로 인해 러시아와 서방 측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던 2014년 5월 러시아와 중국이 체결한 막대한 규모의 천연가스 공급 계약이 대표적이다. 이를 통해 러시아는 향후 30년 동안 4000억달러(약 449조원) 규모의 천연가스를 중국에 수출할 수 있게 됐다. 러시아와 중국은 에너지 수출과 수입에서 서방 국가 의존도를 대폭 낮출 수 있게 됐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저자는 “모스크바와 베이징이 함께 ‘절대적 주권’을 행사하며 미국의 ‘패권주의’를 반대하고 나섰다”고 평가한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코로나19 사태와 기술의 발전이 기존 에너지 생산·유통 체제에 불러올 거대한 변화에 대해서 다룬다. 오랫동안 석유 수요를 굳건하게 보장해온 자동차산업에서 전기차, 자동차 공유 서비스, 자율주행차라는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산유국들은 이제 석유 수요 감소라는 전혀 새로운 문제와 맞닥뜨리게 됐다. 각종 첨단 기술산업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는 등 중동 산유국들이 이 같은 위기에 대처하는 전략에 대해서도 저자는 깊이 있게 설명한다.

홍선표 기자 ricke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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