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트 에바 에거의 심리 치유서 '마음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

1944년, 헝가리의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발레리나를 꿈꾸던 16살 소녀는 가족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보내졌다.

부모가 살해된 지 몇 시간 후 소녀는 부모를 죽인 나치 장교 앞에서 생존을 위해 춤을 추며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강제수용소에서 풀려났을 때 그녀의 몸무게는 31㎏. 시체 더미에서 숨만 간신히 붙은 채 가까스로 구출됐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더없이 먼 미국으로 탈출했지만, 오히려 역사적 사건의 생존자라는 죄책감을 떠안고 과거로부터 숨어버리기로 결심했다.

이런 그녀를 진정으로 구해준 이는 또 다른 생존자인 빅터 프랭클(1905~1997)이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의 저자인 프랭클 박사는 신경학자이자 정신의학자로서 마음의 외상을 입은 사람들을 치료해줬는데,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의 집필자인 에디트 에바 에거도 그 수혜자 중 한 사람이었다.

올해 93세인 에디트 에바 에거는 초고령임에도 현역 임상 심리치료사로서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샌디에이고에 있는 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고, 미국 전역과 세계 각지를 돌며 강연도 진행한다.

'오프라 윈프리 쇼', '아우슈비츠 해방 70주년 기념 CNN 특집방송' 등 다수의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키도 했다.

첫 저서인 '마음의 감옥에서 탈출했습니다'는 70년이 넘는 세월을 되살려 과거의 기억을 생생히 기록해나간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에서 심리치료사가 되기까지 자신이 겪었던 비극을 어떻게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치유하기 위한 삶의 여정으로 탈바꿈시킬 수 있었는지 찬찬히 들려준다.

이 책의 특징과 미덕은 육신의 감옥을 넘어 마음의 감옥에서 어떻게 탈출할 수 있는지를 자신의 긴박하면서도 절실한 생존 이야기와 자신을 치유한 이야기 등을 바탕으로 풀어놓는다는 점이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마음 감옥에 갇히기 쉽다.

이에 저자는 우리 스스로가 자신에게 가해자가 될 수 있지만 해방자가 될 수도 있음을 일깨워준다.

저자는 평범한 사람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난을 용케 헤쳐왔으나 그 역시도 때때로 과거의 상처에 갇히곤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지금의 경험이 얼마나 고통스럽든,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선택권은 언제나 자신에게 있다며 스스로를 다독거리고 부추겨왔다.

어떤 상황에서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음을 깨닫는다면 삶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비참할 수도, 희망찰 수도 있다.

나는 우울할 수도, 행복할 수도 있다.

우리는 항상 이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
"이제 나는 '왜 내가 살았을까?'라고 질문하지 않는다.

'내게 주어진 삶을 가지고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고 질문한다.

"
책에는 저자의 이야기뿐 아니라 자신이 상담해온 내담자의 이야기도 함께 실려 있다.

거식증에 걸린 소녀, 바람피운 아내를 두고 괴로워하는 대위, 어린 시절 부모의 방치로 학대받은 여성, 암 선고를 받은 사람, 아이의 자살로 힘들어하는 부모, 선배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 등등이다.

저자는 이들 내담자가 어떻게 치유해갔는지 그 과정을 상세히 일러준다.

그러면서 '자신을 희생자로 만드는 건 그 사건이 아닌, 스스로 지지해온 희생자라는 믿음'이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굳이 한자식으로 표현하면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고나 할까.

그만큼 자기 심리치료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저자의 말처럼 우리의 선택들은 우리를 트라우마에서 승리로, 어둠에서 빛으로, 감옥에서 자유로 이끌어줄 수 있다.

안진희 옮김. 위즈덤하우스. 484쪽. 1만7천500원.
"최악의 감옥은 나치의 감옥이 아니라 마음의 감옥이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