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마고도에 비견되는 석탄수송 고도…구름이 양탄자처럼 깔려
[걷고 싶은 길] 해발 1천100m 고지와 능선을 잇는 운탄고도

차와 말을 교역하던 높고 험준한 중국의 옛길 차마고도(茶馬高道)에 비견되는 강원도 운탄고도(運炭高道).
석탄을 실어나르던 이 길은 우리나라에서 포장도로가 놓여 자동차를 타고 갈 수 있는 고개 가운데 고도가 가장 높은 만항재에서 함백역으로 이어진다.

◇ 운탄고도(運炭高道)와 운탄고도(雲坦高道)
1957년 함백역이 개통된 뒤 탄광에서 역까지 석탄을 실어나르기 위해 2천여 명의 국토건설단이 삽과 곡괭이로 만들었다.

운탄고도 중 하이원리조트에 있는 구간 5㎞는 도보 여행자들이 편하고 안전하게 걸을 수 있도록 다시 정비된 널찍하고 평평한 산길이다.

가족이 얘기를 나누면서 함께 걷기에 알맞다.

아이들이 걷기에도 힘들지 않다.

[걷고 싶은 길] 해발 1천100m 고지와 능선을 잇는 운탄고도

길을 걷는 내내 멀리 태백산맥 능선이 수려하게 이어진다.

산봉우리들이 끝없이 펼쳐져 파노라마 사진을 보는 듯하다.

시야에 가득 들어오는 푸른 하늘은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운탄고도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해발 1천100m가 넘는 곳에 있는 고지와 능선을 이어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발아래 구름이 양탄자처럼 깔려 운탄고도(雲坦高道)라고도 불린다.

석탄 산업이 활황이었던 시절, 석탄을 실은 제무시(GMC) 트럭들이 검은 먼지를 날리며 다니던 길을 지금은 구름을 밟고 하늘을 걷는 기분으로 걷게 된 것이다.

도보여행길로 탈바꿈한 운탄고도는 산업화가 남긴 뒤안길인 듯 호젓했다.

오늘은 암도 다치지 않았어 조금만 더 참읍시다
그러고는 하늘 높이 기운차게 나를 안아올립니다
그러면 나는 우리 아빠 가슴에 안겨
탄가루 자욱한 얼굴을 자꾸만 자꾸만 문지르고
이윽고 검은 눈물이 아빠의 뺨을 타고 방울져 내립니다.

(김남주의 시 '검은 눈물' 중에서)

운탄고도에서는 석탄산업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석탄이 섞인 검은 흙과 돌, 폐광에서 스며 나오는 듯한 붉은빛의 지하수, 토양 오염 방지를 위한 갱내수 정화시설, 옛 갱도 등을 몇 군데서 볼 수 있다.

그러나 운탄고도에서 여행자를 압도하는 것은 머리 위와 발아래로 펼쳐지는 창공과 무한히 이어지는 '산의 바다'였다.

청량하면서도 우렁찬 소리를 내며 계곡으로 몰아치는 바람은 태고의 신비를 가득 품은 듯하다.

그래서 이 길은 '運炭高道'가 아니라 '雲坦高道'라는 이름이 더 어울린다는 느낌이 길을 걸을수록 강해진다.

[걷고 싶은 길] 해발 1천100m 고지와 능선을 잇는 운탄고도

하이원리조트가 조성한 하늘길 트레킹 코스 중 하나인 운탄고도는 하이원팰리스호텔&컨트리클럽 뒤쪽에서 시작된다.

하이원팰리스호텔&컨트리클럽∼전망대∼1177갱∼도롱이·아롱이 연못∼화절령으로 이어진다.

거리는 5㎞가량 된다.

약간의 오르막길이 있지만 힘들 정도는 아니다.

옛날 트럭이 지나다니던 임도였던 데다 지금은 잘 정비돼 있어 도보여행자에겐 널찍한 탄탄대로라 할만하다.

우리는 하이원팰리스호텔 쪽에서 걷기 시작해 도롱이 연못에 도착한 뒤 꽃꺽이재로도 불리는 화절령으로 가지 않고 하이원탑으로 올라갔다.

하이원탑에서는 스키장 곤돌라를 타고 하산할 수 있다.

도롱이연못에서 하이원탑까지 거리는 1.5㎞가량 된다.

오르막길이 꽤 가파르기도 했으나 멀지 않은 길이어서 쉬엄쉬엄 올라가니 별로 힘들지 않았다.

운탄고도는 중간쯤에서 하늘길 트레킹 코스 중 하나인 둘레길과 만나기도 한다.

운탄고도를 걷다가 둘레길로 빠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하늘길 트레킹 코스에는 운탄고도 외에도 둘레길 1·2코스(9.2㎞), 무릉도원길 1·2코스(7㎞), 고원숲길 1·2·3코스(6.2㎞) 등이 있다.

경사가 완만하면서 다양한 야생화와 나무 군락지를 만날 수 있는 코스, 테일러스 지형과 같은 자연의 신비를 느낄 수 있는 길 등 다양한 트레킹 코스가 있다.

하이원리조트는 스키장과 카지노로 유명하지만, 가족끼리 트레킹을 즐기려는 고객도 많이 찾는다는 게 리조트 운영 기업인 강원랜드 관계자의 전언이다.

[걷고 싶은 길] 해발 1천100m 고지와 능선을 잇는 운탄고도

올해는 꽃샘추위가 별로 없어 봄꽃이 일찍 개화했다.

고도가 낮은 지역에서는 개나리, 진달래, 벚꽃이 지고 있던 4월 중순이었지만 운탄고도에는 막 봄이 시작하고 있었다.

운탄고도 일대에는 참나무 중 서식지의 고도가 가장 높은 신갈나무, 가을이면 황금빛으로 변하는 침엽수인 일본잎갈나무가 많았다.

1960∼1970년대 광산이 호황을 누리던 시절, 갱목 재료로 쓰였던 일본잎갈나무는 곳곳에 대량으로 인공 조림돼 있었다.

가지를 옆으로 뻗지 않고 하늘을 향해 쭉쭉 자라 수형이 좋은 일본잎갈나무와 키 큰 신갈나무는 아직 새싹을 틔우지 못하고 헐벗은 채 서 있었다.

운탄고도의 대표적 야생화인 얼레지꽃은 겨우 한두 송이만 만날 수 있었다.

숲 해설사로 활동 중인 유명선 강원랜드 마케팅기획팀 차장은 비탈에 홀로 곱게 핀 얼레지꽃을 찾아낸 뒤 "올해 처음 본다"며 환호했다.

운탄고도 중간에 있는 1177갱은 민영 탄광으로는 최대 생산량을 기록했던 ㈜동원탄좌 사북광업소가 개발한 최초의 갱도였다.

이 갱이 개발되면서 화절령 주변에 10여 개의 군소 탄광이 생겼다.

강원랜드는 체험 교육장으로 활용되길 기대하면서 이 갱의 일부를 복원했다.

도시락을 들고 퇴근하면서 어린 딸을 보고 환하게 웃는 광부의 동상이 갱 입구에 서 있다.

[걷고 싶은 길] 해발 1천100m 고지와 능선을 잇는 운탄고도

1177갱을 지나면 도롱이 연못이 나온다.

이 연못은 탄광 갱도가 침하하면서 생겼다.

화절령 일대에 사는 광부의 아내들은 이 연못에서 남편의 무사고를 기원했다.

연못에 사는 도롱뇽이 생존하는 한 탄광에서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연못에서 마침 도롱뇽알을 볼 수 있었다.

도롱뇽은 산개구리가 알을 먹지 못하게 초봄에 산개구리보다 먼저 알을 낳는다.

도롱이 연못에서 멀지 않은 곳에 광산촌 초등학교였던 운락국민학교 옛터와 아롱이 연못이 있다.

이 학교는 1967년 개교해 1973년 다른 곳으로 이전했다.

쓸쓸한 학교 터는 석탄산업의 부침을 말해주고 있었다.

◇ 천상의 야생화 화원
운탄고도와 하늘길 트레킹 코스 일대에는 흔히 볼 수 없는 야생화와 나무, 야생동물이 많다.

야생화는 350여 종이 자생한다.

'자작나무 삼형제'로 불리는 자작나무, 사스래나무, 거제수나무를 비롯해 물푸레나무, 주목, 두릅나무, 개두릅이라고 불리는 엄나무 등이 자란다.

다람쥐, 청설모, 노루, 고라니, 멧돼지가 뛰논다.

수많은 야생화는 주로 4월 말부터 6월까지 차례로 피어난다.

트레킹 코스 주변에는 엘레지, 샤스타데이지, 원추리, 박새 등의 군락지가 있다.

우리는 하이원탑 근처에서 갓 피어난 꿩의 바람꽃, 괭이눈 등의 군락을 볼 수 있었다.

노란색 산괴불주머니, 보랏빛 현오색, 노란 양지꽃, 민들레, 제비꽃 등도 만날 수 있었다.

노루귀, 홀아비바람꽃, 처녀치마, 복수초, 피나물, 태백제비꽃, 족도리, 연령초 등도 이 일대에서 볼 수 있는 봄꽃들이다.

나무 군락지로는 무릉도원길 옆에 있는 자작나무숲, 둘레길 2의 주목 군락지, 둘레길 3의 적송 군락지가 탐방객의 인기를 끈다.

[걷고 싶은 길] 해발 1천100m 고지와 능선을 잇는 운탄고도

하이원탑으로 올라가는 고원숲길 중간에 크지 않은 규모의 사스래나무 군락지가 있다.

사스래나무는 자작나무처럼 수피가 회백색이다.

나무줄기의 껍질이 종이처럼 얇게 벗겨져 너덜거리는 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은빛의 거친 나무껍질이 수많은 조각으로 찢어진 듯, 바람에 나풀거리는 모습이 신비로울 따름이었다.

사스래나무는 자작나무 형제 중 가장 높은 고도에서 자란다.

우리가 마주친 사스래나무 군락지의 고도는 해발 1천360m였다.

전래동화 '선녀와 나무꾼'에서 선녀가 날개옷을 걸어둔 나무가 사스래나무라는 얘기도 전해진다.

멧돼지를 피하는 요령을 적어놓은 푯말, 멧돼지를 쫓는 나무통과 방망이가 몇 군데 세워져 있었다.

이 나무통을 방망이로 두드릴 때, 멧돼지가 가까운 곳에 있다면 그 소리를 듣고 사람을 피한다고 한다.

나무통 근처에서 만난 주민들은 사람이 해치지 않으면 멧돼지들도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피해 간다며 "오랫동안 인간과 함께 살아온 멧돼지들이 터득한 습성"이라고 말했다.

천적이 별로 없어 개체 수가 증가하는 멧돼지와 사람의 공존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걱정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5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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