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첫 직업은 머슴이었다'

"아버지의 오른쪽 종아리에는 큰 상처가 남아있다.

1950년대 농촌에서는 비료 대신 똥을 사용했는데, 아버지는 머슴살이할 때 똥장군을 날라야 했다.

똥장군은 성인이 짊어지기에도 무거웠다.

"
50대의 '보통' 아들은 여든 살 아버지의 삶을 돌아보며 아버지의 첫 사회생활인 머슴살이를 떠올린다.

아버지가 14살 때 지게가 앞으로 쓰러져 똥장군이 발등을 짓누르면서 생긴 상처를 보며 눈물이 났다고 한다.

출판인 교육기관인 서울출판예비학교(SBI)의 한대웅(53) 교수는 아버지 한일순(80)의 구술을 바탕으로 자신의 경험 및 생각을 정리해 최근 '아버지의 첫 직업은 머슴이었다'(페이퍼로드)를 펴냈다.

책에는 5년 넘게 머슴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이후 둑 공사, 냉차 장사, 산판일(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파는 일), 품팔이 등을 거쳐 창호지 공장, 중동 근로자 파견, 생선 장사, 닭 장사 등 평생 걸어온 삶의 여정이 담겼다.

저자는 아버지가 전북 임실에서 처음 머슴살이하던 때를 언급하며 "추운 겨울 무명 저고리 하나만 걸친 채 장작용 소나무를 베러 가야 했다"고 말한다.

또 "어린 소년은 미련할 정도로 성실했지만 1년에 쌀 한 가마를 받는 일꾼이 될 때까지도 제대로 우는 법을 몰랐다"고 덧붙인다.

책은 아버지가 머슴살이를 그만두고 선택한 다른 일도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창호지 공장은 새마을운동과 함께 벽돌집이 등장하며 문을 닫았고, 서울에서는 다섯 식구가 오랫동안 봉천동 달동네에서 단칸방 신세를 졌다고 회상한다.

머슴, 중동 근로, 닭 장사…50대 아들이 쓴 여든 살 아버지의 삶
저자는 아버지 인생의 전환점이 된 건 1970년부터 시작된 중동 특수였다고 이야기한다.

아버지는 리비아와 사우디아라비아에 근로자로 두 차례 다녀왔는데, 그때 번 돈으로 생선 장사와 닭 장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아버지가 새벽마다 경매장에 가는 건 체력적으로 쉽지 않은데다가 가게 계약 만료 등 이유로 생선 장사를 그만두고 시작한 닭 장사는 18년 6개월간 이어졌다고 한다.

저자는 평소 생닭과 튀긴 닭을 하루에 100여 마리 팔았고, 추석이나 설 등 대목에는 500여 마리를 팔기도 했다고 말한다.

책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닭 장사를 밑천으로 돈을 모았고 집과 가게를 마련했다"며 "삼 남매 모두 학교에 보냈고 노년에는 다른 사람에게 신세 지지 않고 살 수 있을 만큼이 됐다"고 전한다.

저자는 어릴 때 아버지가 부끄러워 야유회에 가지 않았던 것, 학교와 사회에서 무학력인 아버지에 대해 쉽게 말하는 사람들로 인해 상처를 받은 것 등도 고백한다.

저자는 당시 심정을 "더 멀리 도망치고 싶었다"고 표현한다.

책은 "아버지는 국민학교(현 초등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했고, 입대 전에는 당신이 아는 거라곤 이름 석 자와 사는 곳의 주소에 불과했다"며 "내세울 게 하나 있다면 팔십 평생을 성실하게 살았다는 것"이라고 돌아본다.

또 "아버지의 인생을 글로 옮기는 건 내게 깊게 팬 콤플렉스를 긁어내는 과정이었다"며 "아버지는 대화하는 내내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인터뷰를 거의 마칠 무렵 아버지를 더 많이 이해하게 됐다"고 강조한다.

260쪽. 1만5천800원.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