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 추기경, 강론 중 감정 복받쳐…"정 추기경, 병자성사 때 하느님 만세" 일화 소개
'최고의 목자 정진석 추기경님' 머리글자 딴 추모글 올리기도
선배와 작별에 울먹인 염수정…'천상의 식탁' 와인 권한 제자(종합)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고(故) 정진석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에 결국 눈물을 보였다.

염 추기경은 2012년 정 추기경의 뒤를 이어 후임 서울대교구장을 맡았고, 선배 사제 퇴임 후에는 지근거리에서 그를 지켜봐 왔다.

그는 정 추기경보다 12살 아래다.

지난 2월 22일에는 병세가 위중했던 정 추기경에게 '병자성사(病者聖事)'를 드렸다.

지난달 27일 정 추기경이 입원 65일 만에 선종하자 명동성당에 빈소를 마련해 조문객을 받으며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조문 마지막 날인 4월 30일 종교 지도자들이 참배차 명동성당에 들렀을 때도 애써 밝은 표정을 지었으나 1일 주교단과 공동 집전한 장례미사에서는 강론 도중 가슴 한쪽이 저민 듯 울먹거리며 말을 잇지 못했다.

강론에 나선 그는 "교회의 큰 사제이자 우리 사회의 큰 어른을 떠나보낸다는 것이 참 슬프고 어려운 일"이라며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이제 의지하고 기댈 분이 없어 참 허전하다'고 하시던 정 추기경님의 말씀을 저도 깊이 더 실감하게 된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저도 마음으로 정 추기경님을 많이 의지했던 것 같다.

힘들고 어려울 때 찾아뵙는 것만으로 마음이 편했다"고 돌아봤다.

염 추기경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 했으나 감정은 쉽게 조절되지 않는듯했다.

강론 내용을 적어온 A4용지를 잡은 손이 떨렸고, 눈은 제대 앞에 한곳을 멍하니 응시했다.

한동안 울먹거리는 숨소리만 들릴 뿐 말은 나오지 않았다.

선배와 작별에 울먹인 염수정…'천상의 식탁' 와인 권한 제자(종합)
그는 코끝에 눈물이 맺힌 듯 손으로 훔친 뒤에야 다시 강론문을 읽어나갔다.

염 추기경은 "정 추기경님께서는 당신의 사목표어인 '모든 이에게 모든 것'(옴니부스 옴니아·Omnibus Omnia)처럼 인생을 사셨다"며 "정 추기경님은 진정한 행복에 대해서 늘 강조하셨고 마지막 말씀에서도 행복하게 사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하셨다"고 했다.

이어 "모든 것을 버릴 때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다는 역사를 우리에게 당신의 삶으로 보여 주셨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이고 하느님의 뜻인지 분명히 알려주셨다"며 또렷이 기억 속에 살아있는 정 추기경을 떠올렸다.

염 추기경은 "병자성사 때 정 추기경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내어 드리겠다는 의지로 '하느님 만세'를 외치기도 했다"면서 "그 자리에 있던 신부님들, 의료진들이 지켜보다가 다들 너무 놀랐다"고 병석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사제와 신자 대표들은 추모사를 통해 교회의 어른이자 스승이었던 정 추기경의 안식을 기원했다.

평신도 대표인 한국천주교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손병선 회장은 "생전에 '국민들을 위한 밤하늘의 작은 별이 되고 싶다'는 말씀처럼 예수님의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어 사시다가 봄 하늘의 별이 되어 주님 품에 안기셨으니 이제 편히 쉬십시오"라고 영면을 바랐다.

그는 '최고의 목자 정진석 추기경님'이라는 열두 머리 자를 따서 열두 줄 추모의 글로 대신하겠다며 '최'자(字)부터 시작해 '님'자까지 추모글을 낭독했다.

고인의 소신학교 제자였던 백남용 신부는 "한잔의 와인을 사랑하시는 스승님, 하늘나라에 가시면 예수님 직영공장에서 나오는 가나표 와인이 맛이 기가 막히다"며 "이젠 매년 책 한 권씩 쓰시던 수고 내려놓으시고, 천상의 주님 식탁에서 편히 음미해보십시오"라고 권했다.

선배와 작별에 울먹인 염수정…'천상의 식탁' 와인 권한 제자(종합)
지난달 27일 노환으로 선종한 정 추기경은 이날 장례미사를 마지막으로 모든 장례 일정을 마치고 영면에 들어갔다.

그의 묘소는 고(故) 김수환 추기경과 김옥균 주교가 잠든 천주교 용인공원묘원 내 성직자묘역의 작은 공간에 마련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