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의 1951년작 ‘한국에서의 학살’. 피카소의 반전 작품 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전쟁을 묘사해 ‘냉전 시대의 게르니카’로 불린다.
피카소의 1951년작 ‘한국에서의 학살’. 피카소의 반전 작품 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전쟁을 묘사해 ‘냉전 시대의 게르니카’로 불린다.
심장이 없는 로봇의 모습을 한 군인들이 여성과 어린이들에게 총칼을 겨누고 있다. 세 명의 성인 여성과 소녀, 네 명의 어린아이가 겁에 질린 채 총구 앞에 알몸으로 서 있다. 공포로 오열하며 아이를 끌어안는 여인도,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눈을 감아버린 여성도 보인다. 자신이 처한 상황도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앉아서 노는 어린아이의 모습이 서글픔을 더한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화가 파블로 피카소(1881~1973)가 6·25전쟁을 모티브로 반전(反戰)의 메시지를 표현한 ‘한국에서의 학살’(1951년)이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피카소 탄생 140주년 특별전’에서 이 작품을 비롯해 그의 예술 세계 전반을 보여주는 걸작 110여 점을 만날 수 있다. 대한항공이 프랑스 파리의 국립 피카소미술관에서 화물기 2대, 여객기 2대로 네 차례에 걸쳐 공수해온 작품들이다. 1000억원으로 추정되는 ‘한국에서의 학살’을 비롯한 전시 작품의 총평가액은 2조원, 무게는 25t에 달한다. 피카소미술관이 보유한 300여 점의 회화 중 10% 이상(34점)이 외부 전시에 나온 건 이례적이다.

‘마리 테레즈의 초상’(1937).
‘마리 테레즈의 초상’(1937).
피카소가 예술사에 남긴 가장 위대한 업적은 크게 두 가지로 정리된다. 입체주의(큐비즘)의 발명과 미술을 통해 사회 참여를 본격화한 것이다. 그의 입체주의 그림은 14~16세기 르네상스 시대 미술계 최대 발명으로 꼽히는 원근법을 깡그리 무시했다. 당시 미술가들에게 경전과도 같았던 기존의 틀을 깨부수면서 근대 서양 미술의 주요 사조인 모더니즘이 시작됐다.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큐비즘 회화 대표작 중 하나인 ‘마리 테레스의 초상’(1937년) 등을 감상할 수 있다.

국내에서 처음 전시되는 ‘한국에서의 학살’은 스페인 내전의 비극을 담은 ‘게르니카’(1937년), 제2차 세계대전을 그린 ‘시체 구덩이’(1944~1946년)와 더불어 피카소의 반전 예술 3대 걸작으로 꼽힌다. 피카소가 공산 진영의 허위 선전에 영향을 받아 그리긴 했지만, 특정 세력을 비판하기보다 전쟁의 참상과 비극을 고발하는 작품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피카소도 생전 이 작품에 대해 “전쟁의 모습을 표현할 때 나는 오로지 잔혹성만을 생각한다. 미국이나 다른 나라 군인들의 군모와 군복 같은 것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그의 반전 예술로 인해 미술은 단순히 아름다운 장식품에서 사회 참여의 도구로 한 단계 도약했다는 평가다.

전시는 피카소의 20대 청년 시절 회화부터 80대 만년의 대작까지를 망라한다. 피카소의 초기작 중에서는 ‘인물에 둘러싸여 누워있는 누드’(1908년)가 눈에 띈다. 2차원과 3차원 요소를 혼합한 구성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그의 초기 입체주의 연구를 들여다볼 수 있다. 반면 만년의 대작 ‘칸느 해안’(1958년)은 프랑스 칸의 평화로운 풍경을 밝고 힘 있는 필치로 묘사한 작품이다.

회화뿐 아니라 도자기(29점), 판화(30점) 조각(17점) 등에서도 기존 미술의 판도를 완전히 바꾼 피카소의 천재성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기타와 배스병’은 나무판 위에 목재와 신문지 조각 등을 붙인 작품이다. 회화와 조각이 뒤섞여 있어 장르를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 1961년 제작된 ‘두 팔을 벌린 여인’은 피카소가 1957년부터 1965년까지 철판을 절단하고 구부려 만든 100여 점의 조각 중 하나다. 그가 즐겨 만들었던 도자기 작품들도 조각과 회화를 넘나드는 파격적 형식이 인상적이다.

입장료 성인 2만원, 청소년 1만3000원, 어린이 1만1000원. 전시는 오는 8월 29일까지.

성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