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품으로 돌아가는 한국의 걸작들
대구시립미술관, 21점 기증 받아
전남도립미술관 "9월부터 전시회"
광주시립미술관엔 이중섭 희소작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들은 지방 공립 미술관까지 세심하게 챙겼다. 각 지역 특성과 대표 작가를 감안해 대구시립미술관에는 이인성(대구 출신), 전남도립미술관에는 천경자(전남 고흥 출신), 광주시립미술관에는 오지호(전남 화순 출신) 등의 작품을 보낸 것이다. 작품을 기증받은 미술관은 “지역 예술계는 물론 주민의 예술적 소양을 끌어올리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환호했다.
대구시립미술관은 8명의 작품 21점을 기증받았다. 대구를 대표하는 근대화가 이인성의 대표작 ‘노란 옷을 입은 여인상’, 마찬가지로 대구의 ‘간판 화가’인 이쾌대의 ‘항구’ 등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경북 울진이 고향인 한국 추상화의 거장 유영국의 ‘산’ 등 회화 다섯 점, 한국 추상 조각의 선구자인 김종영의 작품 ‘67-4’도 기증품에 포함됐다. 대구는 이 회장의 고향이기도 하다.
전남도립미술관도 전남 출신 한국 미술 거장의 작품 21점을 받았다. 김환기의 ‘무제’는 본격적인 전면점화(全面點畵) 작업을 시작하기 전 한국의 전통미를 표현한 작품이다. 천경자의 대표작인 ‘꽃과 나비’ ‘만선’도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오지호의 ‘풍경’과 ‘복사꽃이 있는 풍경’ 등에는 공기의 순환을 표현한 듯한 특유의 필치가 잘 드러나 있다. 이지호 관장은 “이번 기증으로 수준 높은 미술문화를 지역에서도 향유할 수 있게 됐다”며 “오는 9월부터 전시회를 열고 작품을 공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시립미술관에는 총 30점의 작품이 기증됐다. 김환기의 작품 5점과 오지호 작품 5점, 이응노 작품 11점 등이다. 이로써 광주시립미술관이 보유한 김환기 작품은 3점에서 단숨에 배 이상인 8점으로 뛰어올랐다. 앉아 있는 여성을 그린 임직순의 ‘포즈’도 눈에 띈다. 미술관 관계자는 “임직순 화백의 정물화와 풍경화만 보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의미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이중섭이 은색 담배 종이에 그린 ‘은지화(銀紙畵)’ 4점과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에게 보낸 ‘엽서화’ 4점도 광주에 왔다. 이중섭의 은지화 중 대부분이 1950년대 초반 작품인데, 이번에 기증받은 작품 4점 중 3점이 희소한 1940년대 작품이다. 이중섭의 ‘엽서화’는 1940∼1943년 연인에게 글자 없이 그림만 그려 보낸 작품으로, 현재 90여 점이 전해온다.기증품은 이중섭 초기 작품세계를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쓰이게 된다.
자전거만큼 인간을 능동적이게 만드는 도구가 또 있을까. 바람과 물살만으로도 흘러가는 배나 엔진으로 움직이는 자동차와 달리 자전거는 사람이 페달을 밟지 않으면 단 1㎝도 움직이지 않는다.자전거는 또 정직하다. 페달을 많이 밟으면 더 멀리, 빠르게 밟으면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간다. 자전거는 인간의 ‘성실함’도 시험한다. 한번 자전거를 타면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한다. 페달을 멈추는 순간 몸도 자전거도 쓰러지고 만다.20년 전만 해도 자전거는 우리에게 신문을 구독하면 주는 사은품 정도로만 인식됐던 게 사실이다. 산업화와 문명의 발전으로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다른 교통수단들에 밀렸던 탓이다.2010년대 들어 전국에 자전거도로가 확산되고, 전문 선수들이 타는 것으로 여겨지던 로드(도로용) 자전거가 일반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동네 한 바퀴 정도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무거운 철제 자전거는 점차 수백㎞를 단번에 다닐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진 카본 파이버(탄소섬유) 자전거로 변신했다. 자전거 무게 1㎏을 줄이기 위해 수백만원을 쓰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전거는 더 이상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나 수영처럼 오직 내 힘으로 얼마나 더 빨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를 증명하게 해주는 고급 이동수단으로 변모했다.지난해 초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자전거의 인기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일상 활동에 제한을 받게 되자 사람들은 답답하고 북적거리는 실내 대신 탁 트인 야외 공간으로 떠나길 갈망했다. 그런 이유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선 이들은 “차를 탔을 때 무심코 지나치던 자연의 소소한 풍경들과 바람의 감촉을 느낄 수 있다. 목적지가 끝이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모든 과정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는 게 자전거의 매력”이라고 입을 모은다.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자전거를 사라. 살아 있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예찬했다. 기분이 울적하고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또 삶에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아보자. 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발을 구르며, 팔로 핸들을 지탱하며 느끼게 될 것이다. 자전거야말로 내가 진정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이동수단이라는 것을.은정진 기자
20년 전까지만 해도 자전거는 학생들의 통학 수단 또는 산악 스포츠용 도구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로드(도로용) 자전거가 일반인 사이에 급격히 보급되면서 달라졌다. 이제 전국 자전거 도로엔 시원하게 질주하는 로드 자전거족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그러나 여전히 ‘소수만 즐기는 값비싼 고급 자전거’라는 인식 때문에 로드 자전거를 시작하고 싶어도 어디에 가서 어떻게 사야 할지 막막해하는 사람이 많다. 자이언트코리아 GS 서포터로 활동 중인 직장인 김준호 씨(30)는 “우선 유명 자전거 투어 대회에서 유명 선수나 우승권 팀이 타는 자전거 브랜드부터 알아보라”며 “꾸준히 제품과 소재를 혁신해 온 검증된 브랜드들이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세계 톱3 브랜드부터 고려로드 자전거족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입 자전거 브랜드는 대만의 ‘자이언트’, 미국의 ‘트렉’ ‘스페셜라이즈드’, 이탈리아의 ‘피나렐로’ 등이 있다. 모두 투르 드 프랑스, 지로 디 이탈리아 같은 세계 메이저 자전거 투어 대회에서 프로 선수들에게 자전거를 후원하는 업체들이다.자이언트는 세계 자전거 시장 점유율, 매출, 생산대수 모두 1위인 자전거 브랜드다. 세계 최초로 탄소섬유인 ‘카본 파이버’(카본) 소재를 사용한 자전거 대량 생산에 성공하며 카본 자전거 가격을 크게 낮추는 데 기여했다. 트렉은 투르 드 프랑스 7연패의 주인공인 랜스 암스트롱의 자전거를 후원했던 회사로 유명하다. 두 회사와 함께 글로벌 자전거 브랜드 ‘빅3’로 꼽히는 스페셜라이즈드는 연구개발(R&D)에 활발히 투자하고 있다.브랜드를 골랐더라도 얼마짜리 자전거를 사야 할지 또 고민이 된다. 자이언트의 경우 최저 61만원(SCR2)부터 경차 한 대 값인 1240만원(프로펠 어드밴스SL0)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서울 신길동에서 자이언트 전문매장 타라바이크를 운영하는 양동각 대표는 “보통 60만~100만원대가 초보 라이더들에게 가장 인기 있고, 처음부터 300만~600만원대 중급 로드 자전거를 선택하는 이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 경량화 ‘업글’ 최대 경차 한 대 값로드 자전거를 취미로 시작한다면 보통 100만~300만원대 입문용 모델을 산 뒤 부품을 하나씩 바꾸는 게 일반적이다. 교체 이유는 오로지 ‘무게’ 때문이다. 자전거 차체가 더 가벼워지면 같은 거리라도 힘을 덜 들이고도 더 빨리 달릴 수 있다.7년차 라이더인 직장인 유형석 씨(38)도 그런 경우다. 유씨는 2015년 스페셜라이즈드 중 기본형 로드 자전거로 알려진 ‘타막 스포츠’를 240만원에 구입했다. 이후 앞뒤 바퀴 뼈대인 ‘휠셋’을 최고급 브랜드인 ‘콜’의 카본 제품으로 바꾸는 데 120만원을 쓰며 본격적으로 부품 ‘업글’(업그레이드)을 시작했다.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구동계와 안장, 핸들바, 타이어까지 모두 최고급 부품으로 바꿨다.여기에 자전거의 중심인 프레임까지 독일 브랜드 ‘포커스’의 200만원짜리 초경량 카본 프레임으로 교체했다. 구매 당시 9.5㎏이던 자전거 무게는 6.5㎏까지 줄어들었다. 3㎏을 줄이는 데 유씨가 들인 비용은 500만원이 넘었다. 최근엔 디스크 브레이크 전용 프레임인 ‘에스웍스 타막’으로 바꾸는 데 추가로 470만원을 들였다. 유씨가 자전거 업글에 쓴 총 비용은 대략 1100만원. 경차 한 대 값이다. 경량화의 핵심은 ‘카본’ 소재로드 자전거의 일반적인 경량화 업글 순서는 보통 휠셋으로 시작해 안장, 핸들바, 페달, 스템(핸들과 프레임을 연결하는 부분), 타이어 순으로 이어진다. 업글의 핵심은 카본 파이버(탄소섬유) 소재 부품을 쓰느냐다. 휠셋의 경우 저가형 알루미늄 제품은 10만원에서 비싼 것은 70만~80만원이지만 카본 휠셋으로 넘어가면 100만원대에서 500만원까지 가격이 크게 뛴다.양 대표는 “자이언트 TCR어드밴스1(289만원)를 기준으로 1㎏가량 줄이기 위해 자이언트 최고가 카본 소재 휠과 안장으로 업글할 경우 375만원이 들어간다”며 “카본 부품은 비싸지만 경량화뿐 아니라 금속 재료들이 갖고 있지 않은 탄성이 높아 한층 더 부드러운 승차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했다.올해 5년차 라이더인 직장인 강서림 씨(40)도 5년 동안 업글에 230만원을 쓰는 등 총 700만원 정도를 자전거에 지출했다. 강씨는 “업글은 마치 기성품 옷을 산 뒤 수선집에 가서 내 몸에 맞게 계속 수선하듯 내 체격과 주행 성향에 자전거를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했다.은정진/민경진 기자
축구나 야구와 달리 한국에서 사이클 중계를 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가끔씩 해외 스포츠 채널에서 중계해도 규칙이나 코스 정보가 부족해 흥미가 반감된다.누구나 타는 자전거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은 우리나라에서 수년 전부터 세계적 사이클대회 해설과 자전거 및 장비 트렌드를 알려온 이가 있다. 사이클 해설위원 이경훈 씨(36·사진)다.그의 블로그에는 각종 대회 결과 및 전망, 첨단 사이클 장비 리뷰가 가득하다. 이 때문에 자전거 덕후 중 ‘피기’(이 위원의 블로그 닉네임)를 모르면 진짜 자전거 덕후가 아니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그는 2006년부터 로드 사이클을 본격적으로 타면서 비전문 동호인 대회까지 출전하기 시작했다. 마침 전문 선수 출신 감독이 동호회를 지도하면서 사이클 경기 전술인 치고 나가기, 추격 등을 배웠다.인터넷 방송으로 해설을 시작한 뒤 그의 이름은 자전거 동호인 사이에 널리 알려졌다. 이후 투르 드 프랑스, 투르 드 코리아 등 각종 유명 대회에 해설위원으로 나섰다.해설가인 동시에 열성 사이클리스트답게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등 자전거 성지로 불리는 유럽의 코스들을 직접 달렸다. 그가 꼽은 최고의 코스는 프랑스 남동부 갈리비에다. 해발 고도가 2642m로 3주 동안 열리는 투르 드 프랑스에서 종합우승의 향배를 가늠하는 코스로 유명하다. 이곳은 보통 대회 후반에 편성된다. 보름 이상의 레이스로 지친 선수들 체력과 인내심의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서다. 이 위원은 “수목한계선보다 위로 올라가 마주친 황량하면서도 뻥 뚫린 풍경을 잊을 수 없다”며 “체력이 고갈되는 고통 속에서 맛본 해방감은 사이클로만 얻을 수 있는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해외를 가지 않더라도 국내에서 얼마든지 자전거 여행의 매력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 이 위원의 설명이다. 그는 “기차, 비행기, 자동차 같은 이동수단을 이용하면 출발지와 도착지가 그저 점으로 이어지지만 자전거를 타면 목적지까지의 모든 풍경을 마음에 담아둘 수 있다”고 말했다.박상익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