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네, 달리, 피카소…. 미술에 관심이 전혀 없어도 누구나 아는 미술사의 거장들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 유족의 미술품 기증에 세계의 이목이 쏠린 이유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28일(현지시간) 보도한 기사 제목이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삼성 일가가 피카소와 모네 작품을 방출하기로 했다.”
쟁쟁한 기증품 중 후기 인상주의를 대표하는 작가 폴 고갱이 1875년 그린 ‘무제’가 눈에 띈다. 이 작품은 고갱이 전업 화가로 활동하기 전 회화연구소에서 그림을 배울 때 그렸다. 현실과 상상을 접목한 종합주의 화풍을 창안하기 전 초기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마르크 샤갈의 ‘붉은 꽃다발과 연인들’은 몽환적인 분위기와 밝고 강렬한 색채 등 샤갈 특유의 스타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근대 최고의 풍경화가 중 한 명인 카미유 피사로의 ‘퐁투아즈 시장’은 말 그대로 프랑스 북부 마을의 시장 풍경을 그린 작품이다. 물건을 판매하는 상인과 구경하는 사람들을 빼곡히 묘사해 생생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책 읽는 여인’은 자연광의 색감을 특유의 화풍으로 아름답게 표현했다. 이 밖에 아직 모습이 공개되지 않은 피카소의 도예 작품 112점에도 관심이 쏠린다.
기증품에는 한국 근대미술을 대표하는 ‘국민 화가’ 이중섭과 박수근의 작품도 다수 포함됐다. 이 중 일부는 지방에 있는 작가 미술관으로 향했다. 강원 양구의 박수근미술관에는 유화 4점과 드로잉 14점 등 총 18점이 왔다. 이곳은 홍라희 여사가 건립 과정을 돕는 등 삼성가와 인연이 깊은 미술관이다. 이번 기증으로 미술관은 ‘아기 업은 소녀’와 ‘한일’(閑日·한가한 날) 등 박수근의 대표작들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두 작품 모두 수요가 높아 ‘돈이 있어도 살 수 없는’ 작품이다.
제주 서귀포 이중섭미술관에는 이중섭의 작품 12점이 기증됐다. 6·25전쟁으로 제주에 피란 왔을 당시인 1951년 가족과 함께 서귀포에 살며 그렸던 ‘섶섬이 보이는 풍경’ 등 유화 6점, ‘게(蟹)’와 가족, 물고기, 아이들을 모티브로 제작한 은지화 2점, 수채화 1점 등이다.
이중섭 화가의 짧은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서귀포 시절, 가장 사랑했던 가족과의 추억을 담은 걸작들이다.
문재인 대통령(사진)이 삼성일가가 기증하기로 한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미술품 2만3000여점을 전시할 수 있는 별도의 공간 마련 검토를 지시했다. 29일 청와대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전날 내부회의에서 "기증한 정신을 잘 살려서 국민들이 좋은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별도의 전시실을 마련하거나 특별관을 설치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지난 2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홍라희 여사 등 상속인들은 이 회장 소장품 2만3000여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에 기증했다. 이와 관련 문화체육관광부는 기증 미술품 전시를 위해 미술관·박물관·수장고 건립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내부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현대미술관 등에 '이건희관' 설치가 유력하게 접쳐진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수장고도 부족하고, 이번 기증을 계기로 문화재 기증이 가속화할 가능성도 있다. 미술관과 수장고 건립은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이 과정에서 '근현대 미술관' 형태로 할지, 기증자 컬렉션으로 할지는 즉답하기 어렵다. 앞으로 검토하고 방향을 정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고인의 훌륭한 뜻이 한국을 찾는 관광객과 많은 사람에게 공감되고 향유되도록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 회장의 기증품은 1970년 구입한 첫 수집품 '인왕제색도'를 비롯해 국보·보물만 60점에 달하고, 고미술품부터 김환기와 이중섭, 모네와 피카소 작품 등 전체 감정가 2~3조원, 시가로는 10조원으로 추정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보배 한경닷컴 객원기자 newsinfo@hankyung.com
자전거만큼 인간을 능동적이게 만드는 도구가 또 있을까. 바람과 물살만으로도 흘러가는 배나 엔진으로 움직이는 자동차와 달리 자전거는 사람이 페달을 밟지 않으면 단 1㎝도 움직이지 않는다.자전거는 또 정직하다. 페달을 많이 밟으면 더 멀리, 빠르게 밟으면 더 빨리 앞으로 나아간다. 자전거는 인간의 ‘성실함’도 시험한다. 한번 자전거를 타면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 한다. 페달을 멈추는 순간 몸도 자전거도 쓰러지고 만다.20년 전만 해도 자전거는 우리에게 신문을 구독하면 주는 사은품 정도로만 인식됐던 게 사실이다. 산업화와 문명의 발전으로 더 빨리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다른 교통수단들에 밀렸던 탓이다.2010년대 들어 전국에 자전거도로가 확산되고, 전문 선수들이 타는 것으로 여겨지던 로드(도로용) 자전거가 일반에 본격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했다. 기껏해야 동네 한 바퀴 정도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무거운 철제 자전거는 점차 수백㎞를 단번에 다닐 수 있을 만큼 가벼워진 카본 파이버(탄소섬유) 자전거로 변신했다. 자전거 무게 1㎏을 줄이기 위해 수백만원을 쓰는 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자전거는 더 이상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마라톤이나 수영처럼 오직 내 힘으로 얼마나 더 빨리, 더 멀리 나아갈 수 있는지를 증명하게 해주는 고급 이동수단으로 변모했다.지난해 초 시작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자전거의 인기에 다시금 불을 지폈다. 일상 활동에 제한을 받게 되자 사람들은 답답하고 북적거리는 실내 대신 탁 트인 야외 공간으로 떠나길 갈망했다. 그런 이유로 자전거를 타고 길을 나선 이들은 “차를 탔을 때 무심코 지나치던 자연의 소소한 풍경들과 바람의 감촉을 느낄 수 있다. 목적지가 끝이 아니라 거기까지 가는 모든 과정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는 게 자전거의 매력”이라고 입을 모은다.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자전거를 사라. 살아 있다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예찬했다. 기분이 울적하고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 또 삶에 희망이 없다고 느낄 때 자전거에 올라 페달을 밟아보자. 땀을 흘리며, 가쁜 숨을 몰아쉬며, 발을 구르며, 팔로 핸들을 지탱하며 느끼게 될 것이다. 자전거야말로 내가 진정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유일한 이동수단이라는 것을.은정진 기자
20년 전까지만 해도 자전거는 학생들의 통학 수단 또는 산악 스포츠용 도구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로드(도로용) 자전거가 일반인 사이에 급격히 보급되면서 달라졌다. 이제 전국 자전거 도로엔 시원하게 질주하는 로드 자전거족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그러나 여전히 ‘소수만 즐기는 값비싼 고급 자전거’라는 인식 때문에 로드 자전거를 시작하고 싶어도 어디에 가서 어떻게 사야 할지 막막해하는 사람이 많다. 자이언트코리아 GS 서포터로 활동 중인 직장인 김준호 씨(30)는 “우선 유명 자전거 투어 대회에서 유명 선수나 우승권 팀이 타는 자전거 브랜드부터 알아보라”며 “꾸준히 제품과 소재를 혁신해 온 검증된 브랜드들이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세계 톱3 브랜드부터 고려로드 자전거족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수입 자전거 브랜드는 대만의 ‘자이언트’, 미국의 ‘트렉’ ‘스페셜라이즈드’, 이탈리아의 ‘피나렐로’ 등이 있다. 모두 투르 드 프랑스, 지로 디 이탈리아 같은 세계 메이저 자전거 투어 대회에서 프로 선수들에게 자전거를 후원하는 업체들이다.자이언트는 세계 자전거 시장 점유율, 매출, 생산대수 모두 1위인 자전거 브랜드다. 세계 최초로 탄소섬유인 ‘카본 파이버’(카본) 소재를 사용한 자전거 대량 생산에 성공하며 카본 자전거 가격을 크게 낮추는 데 기여했다. 트렉은 투르 드 프랑스 7연패의 주인공인 랜스 암스트롱의 자전거를 후원했던 회사로 유명하다. 두 회사와 함께 글로벌 자전거 브랜드 ‘빅3’로 꼽히는 스페셜라이즈드는 연구개발(R&D)에 활발히 투자하고 있다.브랜드를 골랐더라도 얼마짜리 자전거를 사야 할지 또 고민이 된다. 자이언트의 경우 최저 61만원(SCR2)부터 경차 한 대 값인 1240만원(프로펠 어드밴스SL0)까지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서울 신길동에서 자이언트 전문매장 타라바이크를 운영하는 양동각 대표는 “보통 60만~100만원대가 초보 라이더들에게 가장 인기 있고, 처음부터 300만~600만원대 중급 로드 자전거를 선택하는 이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자전거 경량화 ‘업글’ 최대 경차 한 대 값로드 자전거를 취미로 시작한다면 보통 100만~300만원대 입문용 모델을 산 뒤 부품을 하나씩 바꾸는 게 일반적이다. 교체 이유는 오로지 ‘무게’ 때문이다. 자전거 차체가 더 가벼워지면 같은 거리라도 힘을 덜 들이고도 더 빨리 달릴 수 있다.7년차 라이더인 직장인 유형석 씨(38)도 그런 경우다. 유씨는 2015년 스페셜라이즈드 중 기본형 로드 자전거로 알려진 ‘타막 스포츠’를 240만원에 구입했다. 이후 앞뒤 바퀴 뼈대인 ‘휠셋’을 최고급 브랜드인 ‘콜’의 카본 제품으로 바꾸는 데 120만원을 쓰며 본격적으로 부품 ‘업글’(업그레이드)을 시작했다. 여윳돈이 생길 때마다 구동계와 안장, 핸들바, 타이어까지 모두 최고급 부품으로 바꿨다.여기에 자전거의 중심인 프레임까지 독일 브랜드 ‘포커스’의 200만원짜리 초경량 카본 프레임으로 교체했다. 구매 당시 9.5㎏이던 자전거 무게는 6.5㎏까지 줄어들었다. 3㎏을 줄이는 데 유씨가 들인 비용은 500만원이 넘었다. 최근엔 디스크 브레이크 전용 프레임인 ‘에스웍스 타막’으로 바꾸는 데 추가로 470만원을 들였다. 유씨가 자전거 업글에 쓴 총 비용은 대략 1100만원. 경차 한 대 값이다. 경량화의 핵심은 ‘카본’ 소재로드 자전거의 일반적인 경량화 업글 순서는 보통 휠셋으로 시작해 안장, 핸들바, 페달, 스템(핸들과 프레임을 연결하는 부분), 타이어 순으로 이어진다. 업글의 핵심은 카본 파이버(탄소섬유) 소재 부품을 쓰느냐다. 휠셋의 경우 저가형 알루미늄 제품은 10만원에서 비싼 것은 70만~80만원이지만 카본 휠셋으로 넘어가면 100만원대에서 500만원까지 가격이 크게 뛴다.양 대표는 “자이언트 TCR어드밴스1(289만원)를 기준으로 1㎏가량 줄이기 위해 자이언트 최고가 카본 소재 휠과 안장으로 업글할 경우 375만원이 들어간다”며 “카본 부품은 비싸지만 경량화뿐 아니라 금속 재료들이 갖고 있지 않은 탄성이 높아 한층 더 부드러운 승차감을 느끼게 해준다”고 했다.올해 5년차 라이더인 직장인 강서림 씨(40)도 5년 동안 업글에 230만원을 쓰는 등 총 700만원 정도를 자전거에 지출했다. 강씨는 “업글은 마치 기성품 옷을 산 뒤 수선집에 가서 내 몸에 맞게 계속 수선하듯 내 체격과 주행 성향에 자전거를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했다.은정진/민경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