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한 이불의 ‘장엄한 광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1997년 뉴욕현대미술관에 전시한 이불의 ‘장엄한 광채’.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젊은 여성이 팔다리 모양의 촉수가 덜렁덜렁한 괴물 의상을 입고 일본 도쿄 시내를 활보한다. 놀라고 황당해하는 시민 반응이 사진과 영상에 찍힌다.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이불(57)의 퍼포먼스 작품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사진)이다.

'장엄한 광채' '수난유감'…다시 보는 퍼포먼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이불은 베니스비엔날레 등 최정상급 무대에 단골로 오르는 작가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계기는 1997년 뉴욕현대미술관(MoMA) 전시에 출품한 ‘장엄한 광채’였다. 날생선 몸통에 수를 놓고 이를 유리상자 안에 넣어 썩은 냄새가 진동하게 만든 설치작품이다. 미술관은 악취를 견디다 못해 작품을 철거했지만, 세계적인 큐레이터 하랄트 제만이 이 작품을 리옹비엔날레에 전시키로 하면서 세계 미술계의 화제가 됐다.

이불의 초기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이불 시작전’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이불이 30여 년 전 발표한 파격적인 작품을 만날 수 있다. 1980~1990년대 발표됐지만 지금 봐도 충격적인 작품이 많다. 전시장 입구에는 작가의 전신이 그려진 10m짜리 거대 풍선 설치작품 ‘히드라’가 있다. 1997년 발표된 이 작품은 관람객이 펌프를 발로 수만 번 밟으면 온전한 형체로 부푼다. ‘히드라’를 통해 이불은 여성에 대한 편견과 오리엔탈리즘 등 사회의 여러 고정 관념에 정면으로 저항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퉁퉁 부어오른 팔다리를 얼기설기 붙이고 붉은색을 칠한 설치 작품이 관객을 맞이한다. 한지와 천, 솜 등으로 만든 ‘소프트 조각’이다. 관람객과 바지를 바꿔 입는 퍼포먼스 ‘웃음’을 비롯해 1988~1996년에 작가가 벌인 12개의 퍼포먼스 기록 영상도 대형 스크린으로 감상할 수 있다.

이불의 최근작은 상대적으로 무난한 편이다. 주로 흰 머리카락과 자개, 꽃 등을 이용한 평면 작업. 알루미늄과 거울, 철 등을 활용한 조형 작업이다. 2011년 소더비 경매에 출품된 이불의 ‘Sternbau No.25’(2010)는 13만5000달러(약 1억5100만원)에 낙찰됐다. 미술계 관계자는 “해외에서는 스테인리스 강선을 소재로 한 이불의 설치작업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기행에 가까운 초기 퍼포먼스 작품과 최근 작품을 비교하며 작가의 내면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헤아려 보는 것도 재미있다. 전시는 5월 16일까지.

성수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