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과 3의 예술'은 아름다운 음악과 뛰어난 그림을 남긴 예술가들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7과 3은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의 3원색'을 의미하는데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작품은 모두 이 7계음과 3원색으로부터 탄생합니다. 이를 어떻게 조합할지 고민하고, 그 결과물을 펼쳐 보이는 게 곧 예술이죠.

'7과 3의 예술'은 화제가 되고 있는 공연이나 전시를 살펴보고 이들의 예술에 대한 고뇌, 철학을 경유합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채워줄 작고 소중한 영감을 전합니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에 나오는 아리아 '축배의 노래'. /메트로폴리탄오페라 유튜브

"즐기자, 술잔과 노래와 웃음이 밤을 아름답게 꾸민다. 이 낙원 속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날이 밝아온다."

오페라를 즐겨 보시나요. 오페라를 잘 보지 못했거나 낯선 분에게도 이 아리아는 가깝게 느껴지실 것 같습니다. 영상에 담긴 '축배의 노래'는 누구나 들어보셨을 겁니다. 귀족들이 한바탕 화려한 파티를 열며 향락을 즐기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곡입니다. 마성의 멜로디로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요. 덕분에 많은 광고에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축배의 노래'가 나오는 작품 제목도 익숙하실 것 같습니다. 제목은 '라 트라비아타'입니다. 우리에게 '춘희'로도 잘 알려진 작품입니다. 1948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오페라이자, 세계에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오페라이죠. 24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도 '라 트라비아타'의 주요 아리아를 부르는 콘서트 오페라를 선보인다고 합니다.
[김희경의 7과 3의 예술]'아,이 노래!'친근한 멜로디의 주인공…'오페라의 왕' 베르디

작품을 만든 작곡가는 이탈리아 출신의 주세페 베르디(1813~1901)입니다. 베르디는 조아키노 로시니, 자코모 푸치니와 함께 이탈리아 오페라의 3대 거장으로 꼽힙니다. 그는 '라 트라비아타'를 비롯해 '리골레토' '아이다' '일 트로바토레' 등 26편에 달하는 오페라를 만들었습니다. 그중 많은 작품들이 오랫동안 전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고 있죠. '오페라의 왕'이라고도 불리는 베르디의 삶과 작품 세계로 함께 빠져 보실까요.

그는 이탈리아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부모님은 여관이자 주점을 운영하고 있었는데요.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그가 음악 공부를 이어가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가까스로 후원자 안토니오 바레치의 도움을 받아 18세가 되던 해 밀라노 음악원에 입학하려 했지만, 입학 연령보다 나이가 많고 음악도 서툴다는 이유로 떨어지기도 했죠.

그러나 베르디는 열심히 도전했고 밀라노에 있는 라스칼라 극장의 연주자로부터 개인 교습을 받게 됐습니다. 이후 부세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자리에도 올랐습니다. 그의 첫 오페라인 '산 보나파초의 백작 오베르토'도 호응을 얻었죠.

하지만 그의 비극은 다시 시작됐습니다. 후원자였던 바레치의 딸 마르게리타와 결혼을 하고 두 자녀를 낳았는데요. 결혼 4년 만에 부인이 뇌수막염으로 사망했으며, 두 자녀도 부인에 앞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는 큰 실의에 빠졌죠.

안드레아 보첼리가 부른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아리아 '여자의 마음'. /안드레아 보첼리 유튜브

그러나 베르디는 주변 사람들의 격려로 '나부코'라는 오페라를 만들었고, 재기에 성공합니다. 그는 이를 발판으로 많은 작품을 만들게 됩니다. 37세에 작곡한 '리골레토'는 그에게 아주 큰 성공을 가져다줬죠.

이 작품은 광대 리골레토를 통해 왕의 부도덕성과 횡포를 드러내는데요. 프랑스의 문호 빅토르 위고의 '왕의 환락'을 원작으로 하고, 여기에 베르디가 곡을 붙였습니다. 공연을 본 위고가 "이 작품을 내가 썼다는 게 놀라울 정도"라며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리골레토'에 나오는 아리아 '여자의 마음'도 들어 보시면, '아, 이 노래!' 하고 금방 아실 겁니다. 이 곡 역시 광고에 나왔죠. 많은 분들이 "시간 좀 내주오. 갈 데가 있소"라는 광고 음악 속 가사로 기억하실 것 같습니다.

베르디가 주로 활동했던 1840~1850년대엔 이탈리아 북부 지역의 주권을 오스트리아에 빼앗긴 상태였는데요. 그러다 보니 그의 오페라엔 전쟁 장면이 많이 나왔습니다. 이를 통해 독립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려는 시도였죠. 하지만 앞서 영상으로 본 '라 트라비아타'는 전혀 다른 작품입니다.

이 제목의 의미는 '길을 잃은 버려진 여인'이란 뜻입니다. 베르디는 알렉산더 뒤마 2세의 소설 '춘희'를 보고 감동을 받아 오페라로 만들었습니다. 내용은 파리 상류층 남성들을 상대하던 고급 매춘부 비올레타가 귀족 청년 알프레도를 만나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알프레도는 진정한 사랑을 외치지만 아버지로 인해 비올레타를 오해하게 되는데요. 그 오해는 풀리게 되지만 비올레타는 폐결핵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베르디가 이 작품을 오페라로 만든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당시 많은 시골 여성들이 대도시로 왔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를 얻지 못하고 매춘부가 되는 현실을 고발한 것이었습니다. '축배의 노래'가 나오는 장면처럼 향락을 즐기는 귀족들의 태도를 비판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또 다른 의미는 그가 새롭게 만나게 된 여성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에 대한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소프라노였던 스트레포니는 가족을 잃어 슬픔에 빠진 베르디의 곁을 지켰고, 두 사람은 깊이 사랑하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겐 아버지를 모르는 아이들이 있어 가족의 반대와 세상의 편견에 시달렸죠. 베르디는 '라 트라비아타'로 그런 시선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둘은 끝까지 서로를 지켰고, 만난 지 12년 만에 결혼하게 됐습니다.

베르디는 오페라 작곡가이기도 했지만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습니다. 그가 독립과 민족을 위해 목소리를 내왔던 것을 다시 떠올려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오랜 전쟁 끝에 1860년 통일 이탈리아가 탄생했고, 베르디는 통일 이탈리아의 국회의원이 됐습니다.

그는 음악인들을 위한 '안식의 집'도 지었습니다. 베르디는 어릴 땐 가난했지만 나중엔 큰 부를 얻었는데요. 성공 이후에도 초심을 잃지 않고 어려운 동료들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했습니다. 베르디는 이 집을 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운이 없어 성공하지 못한 채 나이를 먹었거나, 젊어서 돈을 모으지 못한 음악가들을 위해 지은 이 집이 내 작품 중 가장 마음에 든다."

아름답고도 대중적인 오페라에 자신만의 철학과 메시지를 담고, 민족과 동료에 대한 마음을 끝까지 지켰던 베르디.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큰 울림을 줍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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