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석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 거론엔 "그런 자리 안 맡을 것"
정명훈 "피아노는 첫사랑…항상 옆에 있는 걸 원했다"
"피아니스트로 활동을 안 한 지 30년이 넘어요.

한 가지 잃지 않는 건 첫사랑이 피아노였고, 아직도 사랑한다는 거예요.

연주는 안 했지만, 항상 피아노가 옆에 있는 걸 원했어요.

"
정명훈은 22일 서울 서초구 코스모스아트홀에서 열린 새 피아노 앨범 '하이든·베토벤·브람스 후기 피아노 작품집' 발매 및 공연 기자간담회에서 피아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의 피아노 앨범은 2013년 12월 '정명훈, 피아노'에 이어 두 번째다.

세계 무대에서 주로 지휘자로 활동해온 그에게 피아노는 특별한 존재다.

피아니스트를 꿈꾸며 5살에 음악을 시작했고, 21살 때인 1974년 러시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2위를 차지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이후 지휘계로 눈을 돌리면서 정통 피아니스트의 삶과는 거리를 뒀다.

하지만 늘 피아노를 곁에 두고 지냈다는 그는 2014년 10월 생애 첫 리사이틀을 열었고, 약 7년 만인 이달 다시 리사이틀 무대에 오른다.

대구(23일)와 군포(24일), 수원(27일), 서울(28일·30일) 등이다.

정명훈은 "어렸을 땐 사랑하는 게 피아노와 초콜릿 2가지였다"며 "이제 초콜릿은 (사랑하는 대상에서) 없어지고 피아노보다 앞자리에 가족이 있다.

그다음이 피아노"라고 말했다.

정명훈 "피아노는 첫사랑…항상 옆에 있는 걸 원했다"
다만 그는 피아노 앨범을 내고 리사이틀을 하는 건 피아니스트로서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지휘자는 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에 완벽한 음악가는 아닌데, 자신이 사랑하는 악기를 통해 마음속 감정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전했다.

정명훈은 "피아노로 다시 돌아왔다거나 내가 피아니스트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휘를 하기 전 피아니스트 시절 예민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며 "지금 피아노를 다시 하는 건 무리"라고도 했다.

실력이 뛰어난 피아니스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자신이 연주하는 게 창피하다며, 다른 피아니스트들에게 미안하다는 말도 했다.

그는 앨범에 관한 이야기도 꺼냈다.

하이든의 '피아노 소나타 60번'과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0번', 브람스의 '네 개의 피아노 소품' 등 3곡이 담겼는데,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오페라극장 '라 페니체'에서 녹음했다고 한다.

앞서 그는 "작곡가들이 인생 말년에 완성한 피아노 작품을 통해 인생이라는 아름다운 여정과 영혼의 자유로움을 경험한다"며 "음악을 통해 삶의 여러 단면을 표현하고 싶은 개인적 열망이 있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어렸을 때 피아노로 연주한 하이든의 협주곡을 떠올리며 하이든으로 앨범을 시작하려고 했고, 베토벤은 거장이기 때문에 포함하고자 했으며, 브람스는 후기 작품들이 조용하고 아름다운 느낌이 담겨 선곡했다고 설명했다.

정명훈 "피아노는 첫사랑…항상 옆에 있는 걸 원했다"
그는 국내에서 향후 상임지휘자 등으로 복귀해 활동할 수 있는지에 대해선 "그런 자리는 안 맡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와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를 지낸 바 있는 그는 현재 공석인 KBS교향악단 상임지휘자 후보 중 한 명으로 일각에서 거론되고 있다.

정명훈은 "책임을 맡으면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오케스트라를 발전시켜야 하는데 굉장히 힘든 일"이라며 "(객원으로) 연주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또 "발전시킬 자신이 없거나 마음이 없으면 자리를 맡지 말아야 한다.

이제 (발전시킬) 그런 마음은 없다"고 강조했다.

다음 앨범 계획에 관해서는 슈만의 '환상곡'을 꼽았다.

그는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단서를 달면서도 "연주는 안 하더라도 앨범으로 녹음할 생각은 있다.

아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곡"이라고 말하며 즉석에서 선보이기도 했다.

정명훈은 음악에 관한 자신의 신념도 이야기했다.

재능과 노력, 시간 등 3가지가 필요한데, 쉽지는 않지만 모두 합쳐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경험들이 합쳐졌을 때 음악 속에 묻어난다고도 했다.

그는 "사람이 한 번 사는데 (나이에 따라) 단계가 확실히 다른 걸 느낄 수 있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과거에 이해하지 못한 게 저절로 이해된다.

나이가 많아지는 걸 굉장히 좋아하는데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고 1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