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현대 21일 개막…주요 작품 재재작·사후 첫 공개
돌로 성찰하는 인간과 자연…박현기 개인전 '아임 낫 어 스톤'
한국에 비디오아트 작가가 백남준만 있는 것은 아니다.

1970년대부터 국내에서 비디오아트를 시도한 작가들이 있었고, 그중에 빠지지 않는 이름이 박현기(1942-2000)다.

주로 국내 무대에서 활동한데다 한국적 재료와 정서를 사용해 '토종 비디오아트 선구자'로 불린 박현기는 영상 작업 외에도 조각, 설치, 판화, 퍼포먼스, 회화 등 다양한 매체를 다뤘다.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21일 개막하는 박현기 개인전 '아임 낫 어 스톤(I'm Not a Stone)'은 비디오 아티스트라는 수식에 가려진 작가의 방대한 예술세계에 주목한다.

출품작 10점은 1978년부터 1997년까지 박현기의 작품세계를 아우른다.

1978년 서울화랑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돌탑 작품을 처음 발표한 이후, 작가는 평생 돌을 주재료로 활용했다.

박현기에게 돌은 태고의 시간과 공간을 포용하는 자연이며, 선조들의 미의식을 간직한 정신적 산물이었다.

동시에 세상을 비추고 투영하는 창이었다.

전시장 바닥에 작은 돌탑 세 개가 자리 잡았다.

옛 마을 어귀에 있던 돌탑처럼 넓적하고 둥그스름한 돌을 어른 허리 높이 정도로 층층이 쌓았다.

박현기는 실제 돌 사이에 핑크빛과 노란빛 인공 돌을 섞어 자연과 인공, 진짜와 가짜, 물질과 비물질, 사물과 사물 사이의 경계와 관계를 탐구했다.

강가의 돌을 옮겨와 전시장 바닥에 펼쳐놓은 '무제'(1983)는 인간과 예술, 자연의 관계를 시적으로 성찰한 작품이다.

전시장에는 외부의 도심 소리가 들리고, 천장에서 돌들 사이로 내려온 마이크를 통해 관람객의 발소리가 울려 퍼진다.

돌로 성찰하는 인간과 자연…박현기 개인전 '아임 낫 어 스톤'
박현기는 홍익대 서양화과에 입학한 이후 건축학과로 전과했다.

졸업 후 생계를 위해 인테리어 사업을 하면서 실험적인 미술 작업을 계속했다.

공간은 늘 그의 연구 대상이었다.

그는 1980년대 중반부터 비디오를 배제하고 벽돌과 나무 등 건축 자재만 사용한 공간 설치 작업에 몰두했다.

1986년 발표한 '무제(ART)'는 목재를 조립해 만든 설치 작품이다.

전시장에는 2m가 넘는 높이의 건축 자재용 나무판으로 만든 세 개의 구조물이 놓여있다.

구조물은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각각 알파벳 A, R, T 모양이지만, 구조물 사이를 오가며 작품을 대하는 관람객들은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기 어렵다.

이밖에 종교적 도상과 포르노그래피 영상을 한 이미지로 조각하듯 결합한 말년 대표작 '만다라'(1997), 'TV 돌탑' 연작 중 높이가 4m에 가까운 거대한 규모의 '무제'(1988) 등이 유족과 미술평론가, 전문가로 구성된 '박현기 에스테이트'의 자문과 감수를 거쳐 재제작됐다.

주요 작품은 작가 사후 최초로 공개된다.

작가의 동료였던 미술평론가 신용덕은 "박현기는 미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작업에 매진해 생각한 것은 끝내 이루는 사람이었다"라고 돌아보면서 "영상 작업뿐만 아니라 동양적인 정신세계를 담은 설치작업에 대해서도 재조명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전시는 5월 30일까지.
돌로 성찰하는 인간과 자연…박현기 개인전 '아임 낫 어 스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