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과 3의 예술'은 아름다운 음악과 뛰어난 그림을 남긴 예술가들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7과 3은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의 3원색'을 의미하는데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작품은 모두 이 7계음과 3원색으로부터 탄생합니다. 이를 어떻게 조합할지 고민하고, 그 결과물을 펼쳐 보이는 게 곧 예술이죠.

'7과 3의 예술'은 화제가 되고 있는 공연이나 전시를 살펴보고 이들의 예술에 대한 고뇌, 철학을 경유합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채워줄 작고 소중한 영감을 전합니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소풍'(2001).

페르난도 보테로의 '소풍'(2001).

"아, 뚱뚱한 사람 그리는 화가!" 콜롬비아 출신의 화가 페르난도 보테로의 얘기가 나오면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합니다. 당연한 반응입니다. 보테로의 작품엔 항상 뚱뚱한 사람들이 등장하니까요. 그런데 보테로는 이를 부인합니다. “나는 뚱뚱한 사람을 그리지 않는다. 볼륨을 그릴 뿐이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그 의미를 알아보기 전에, 보테로의 작품이 주는 느낌에 대해 얘기해 볼까요. 그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푸근해지는 것 같습니다. 즐겁고 행복한 기분도 들죠. 그래서인지 보테로의 작품들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국내에서도 인기가 높습니다. 여러 차례 전시가 열렸으며, 지난해엔 영화 '보테로'가 국내 개봉하기도 했습니다. 오는 27일 열리는 서울옥션 경매에도 보테로의 작품이 출품됩니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춤추는 사람들'(2000).

페르난도 보테로의 '춤추는 사람들'(2000).

하지만 보테로의 그림에서 한 가지 놀라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요. 관람객들은 그의 작품을 보며 웃게 되지만, 정작 작품 속 인물들 대부분은 웃고 있지 않다는 겁니다. 오히려 무표정에 가깝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이 사람들에게 따뜻함과 행복함을 선사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그 비결은 보테로가 말한 '볼륨'에 있습니다. 보테로의 삶과 철학을 살펴보며 그가 선사하는 볼륨의 마법에 함께 빠져 보실까요.
[김희경의 7과 3의 예술]뚱뚱함을 그린다?···볼륨으로 행복을 주는 화가, 보테로

보테로는 1932년 콜롬비아 메데인에서 태어났습니다. 외판원이었던 아버지를 4살에 여의고 가난하게 자랐죠. 그의 삼촌은 보테로를 투우사 학교에 보냈는데요. 그는 투우사가 되는 것보다 황소를 그리는 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16살에 지역 신문사 삽화가로 일하며 돈을 벌었습니다. 그 돈으로 그림을 그리고, 또 그림을 팔아 공부를 했습니다.

19살이 되던 해, 그는 미술전람회에 출품해 받은 상금으로 새로운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 등으로 가 다양한 그림을 접하고 배웠죠. 이때 벨라스케스, 고야와 같은 거장들의 작품을 두루 보게 됐습니다. 보테로는 그중에서도 고전 미술에 빠져 들었습니다. 당시 유럽엔 추상주의 미술이 유행하고 있었는데요. 보테로의 작업들은 이 같은 트렌드에 역행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인상주의 이후부터 작가들이 바탕 작업을 하지 않은 캔버스에 직접 그리거나, 1분도 안 걸리는 그림을 그린다"며 "이런 경향 때문에 미술의 쇠퇴기가 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보테로의 주장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았죠. 하지만 그는 고전 미술에 라틴 아메리카 미술의 특색을 곁들여 자신만의 화풍을 만들어 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1503~1506)와 페르난도 보테로의 '12살의 모나리자'(1959).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1503~1506)와 페르난도 보테로의 '12살의 모나리자'(1959).

그런 보테로에게 1961년엔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옵니다. 뉴욕 현대미술관(MOMA)이 보테로의 '12살의 모나리자'라는 작품을 산 겁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패러디 한 이 작품을 보면 그의 재기 발랄함이 느껴집니다. 원작보다 가볍고 유쾌하면서도, 한결 풍요로운 느낌을 줍니다. 이 작품으로 보테로는 단숨에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는 이 작품 이외에도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의 결혼' 등 유럽 대가들의 작품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탄생 시켰습니다.

보테로는 이후 그만의 볼륨이 담긴 작품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보테로가 사람들의 몸집을 크게 그리는 것은 양감과 색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인데요. 색을 최대한 넓게 칠하려면 그만큼의 공간이 있어야 하죠. 그 공간을 몸의 부피를 키워서 확보하는 것입니다. 그는 이를 통해 '색채의 마술사'라는 별명도 얻었습니다. 이런 작업은 보테로의 정신적 뿌리인 라틴 아메리카와도 연결됩니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풍만함은 풍요, 부유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의 볼륨이 주는 매력은 일상 속 사람들을 그린 작품에서 더욱 돋보입니다. '소풍'(2001), '춤추는 사람들'(2000), '발레리나'(2001) 등이 대표적입니다. 보테로는 라틴 아메리카의 일상과 그 안에 살아 숨 쉬는 뜨거운 열정을 화폭에 담았습니다.
페르난도 보테로의 '죽마를 탄 광대들'(2007).

페르난도 보테로의 '죽마를 탄 광대들'(2007).

그런데 그 모습을 행복하게만 그리진 않았습니다. 보테로의 작품 속 인물들이 대부분 무표정하다는 사실을 다시 떠올려 볼까요. 이는 현실을 그대로 반영했기 때문입니다. '죽마를 탄 광대들'(2007)를 봐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무표정한 광대들의 모습은 서커스를 하느라 다소 지치고 힘들어 보입니다.

보테로는 이뿐 아니라 콜롬비아의 부정부패, 폭력, 마약 문제 등 사회 문제에도 꾸준히 관심을 갖고 화폭에 담았습니다. 이렇게 보테로의 시선은 차가운 현실을 바라봤지만, 그 결과물인 그림은 무겁지 않고 편안하게 다가옵니다. 그 이유는 둥글둥글한 양감과 따뜻한 색채 덕분이죠. 따뜻하지만 이성적인, 행복하지만 슬프기도 한 양면성. 이를 누구보다 잘 살리는 보테로의 재능에 감탄하게 됩니다.

마법 같은 그림으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보테로는 내년에 90살이 되는데요. 살아있는 거장의 아름답고 유쾌한 작업이 더 오랫동안 이어지길 바랍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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