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농약 투입해 고사·원형교차로 철거…결국 사고 다발지역으로

지난 6일 제주대 입구에서 발생한 대형 인명사고는 차량 흐름만을 고려해 옛 '외솔나무 회전 교차로'를 제거하고 직선 도로로 조성한 제주시의 교통행정과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60여명 사상 교통사고 제주대 입구에 인명 지키던 고목 있었다
3명이 숨지고 60여 명이 부상한 사고 장소 부근 제주대 입구 사거리에는 과거 가지가 우거진 수령 130여 년의 '외솔나무'(소나무)가 있어 차량의 속도를 줄이게 하는 등 교통사고 예방 효과를 낳아 인명을 지켜주고 있었다.

9일 제주시에 따르면 2007년 제주대 입구 사거리 중앙의 회전교차로에 있던 외솔나무가 고사하자 나무를 잘라내고 회전교차로를 없애 직선 도로로 구조를 변경했다.

시는 앞서 2년 전인 2005년 옛 목석원에서 산천단 구간 도로를 확장하면서 외솔나무를 살리자는 여론을 따라 외솔나무를 그대로 두고 원형 교차로를 조성했었다.

당시 외솔나무는 흉고 직경 96㎝, 높이 20m가 넘는 고목으로, 수령이 130년가량 된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원활한 차량 흐름을 위해 원형교차로를 없애고 직선 도로로 만들자는 의견이 서서히 나오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이 외솔나무를 제거할 것인지, 보존할 것인지를 두고 제주 사회에서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5년 당시 도로 개설 초기 제주대 학보사인 제주대신문에서 제주대 재학생과 교직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소나무 제거를 전제로 한 회전형 교차로를 없애자는 방안에 대해 22%만 찬성했을 뿐 과반이 넘는 54%가 반대했다.

그런데 외솔나무 제거 여부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던 2006년 11월에서 12월 사이 누군가 의도적으로 이 외솔나무에 농약을 투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환경단체의 신고로 경찰 수사까지 진행됐지만, 범인을 잡지는 못했다.

결국 외솔나무는 잎부터 누렇게 변해가더니 농약 투입 사건 8개월여 만인 2007년 7월 고사했다.

제주시는 소나무재선충병 등이 우려된다면서 베어낸 나무들을 제재소로 옮겨 파쇄했다.

이어 원형교차로가 철거돼 현재와 같은 직선 형태의 도로로 변경됐다.

60여명 사상 교통사고 제주대 입구에 인명 지키던 고목 있었다
당시 외솔나무 보존을 위해 활동했던 이영웅 제주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도로를 개설하기 이전부터 그 장소에 외솔나무 고목이 있었고 도민들에게 상징적인 나무였다"며 "외솔나무의 보존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외솔나무로 인해 조성된 원형 교차로로 운전자들이 차량 속도를 줄여 교통사고 예방에도 도움이 됐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서귀포시 도시우회도로 녹지공원화를 바라는 시민들' 모임도 8일 입장문을 내 "사실 이번 사고는 이미 16년 전부터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2005년에 제주시 당국이 제주대 입구 소나무 회전형 교차로를 없애고, 사거리 신호 교차로로 바꾸는 계획을 추진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당시 130년 수령의 소나무는 제주시로 진입하며 만나는 첫 관문의 위치에서 제주대 설립 이전부터 수많은 사람과의 관계성을 품고 있었다"면서 "속도를 내며 달려오던 차량이 소나무가 있는 회전형교차로를 만나며 점차 속도를 줄였으므로, 회전교차로가 있던 동안 사망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 6일 오후 5시 59분께 제주대 입구 사거리에서 4.5t 트럭이 다른 1t 트럭과 버스 2대를 추돌했다.

이 사고로 3명이 숨지고 50여 명이 부상했다.

경찰은 사고 원인을 트럭이 내리막의 직선 도로를 내려오다가 브레이크 과열에 따른 페이드(내리막길에서 연속적인 브레이크 사용으로 인한 제동력 상실) 현상에 의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0여명 사상 교통사고 제주대 입구에 인명 지키던 고목 있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