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과 3의 예술'은 아름다운 음악과 뛰어난 그림을 남긴 예술가들의 삶을 담고 있습니다. 7과 3은 도레미파솔라시 7계음, 빨강 초록 파랑의 '빛의 3원색'을 의미하는데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는 작품은 모두 이 7계음과 3원색으로부터 탄생합니다. 이를 어떻게 조합할지 고민하고, 그 결과물을 펼쳐 보이는 게 곧 예술이죠.

'7과 3의 예술'은 화제가 되고 있는 공연이나 전시를 살펴보고 이들의 예술에 대한 고뇌, 철학을 경유합니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채워줄 작고 소중한 영감을 전합니다.
파가니니의 삶을 다룬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2013).

파가니니의 삶을 다룬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2013).

'악마'라는 단어를 들으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나쁘다, 사악하다 등 부정적인 느낌이 먼저 들죠. 그런데 악마를 자신의 브랜드로 삼은 음악가가 있습니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잘 알려진 니콜로 파가니니(1782~1840)입니다. 파가니니에겐 왜 이런 무시무시한 타이틀이 붙게 된 걸까요. 그는 왜 스스로 악마를 브랜드로 내세웠을까요.

이 타이틀은 파가니니의 뛰어난 연주 실력 때문에 생겼습니다. 그의 공연을 본 관객들은 깜짝 놀라며 "악마에게 영혼을 팔지 않는 이상 저런 연주를 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실제 많은 이들이 그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았거나, 악마 자체라 생각했다고 합니다. 파가니니는 이를 해명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악마의 이미지에 걸맞는 다양한 전략을 구사해 이름을 길이 남겼습니다.

그의 삶은 마치 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데요. 훗날 영화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국내 창작 뮤지컬 '파가니니' 등으로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대표작 '24개의 카프리스'를 함께 감상하며, 클래식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파가니니의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무반주 바이올린 솔로곡으로, 파가니니의 천재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입니다.


러시아 출신의 막심 벤게로프가 연주한 파가니니의 '24개의 카프리스'.

이탈리아 출신의 파가니니는 어렸을 때부터 바이올린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습니다. 5살에 상인이자 만돌린 연주자였던 아버지를 따라 먼저 만돌린을 익혔고, 7살이 되던 해부터 바이올린을 배웠죠.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성인 바이올리니스트들을 압도했고 10대 후반엔 유명 스타가 됐습니다.
[김희경의 7과 3의 예술]'악마'라는 브랜드를 가진 음악가, 파가니니


그의 천재성은 다양한 에피소드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바이올린의 네개 현 중 하나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연주를 하는가 하면, 현이 끊어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완성도 높은 연주를 선보였습니다. 재능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일부러 곧 끊어질 것 같은 닳은 현으로 연주를 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주로 즉흥곡을 선보이기도 했죠. 관객들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듯한 그의 연주를 넋을 잃고 감상했다고 합니다.

파가니니의 신비로운 연주의 비결은 손에 있습니다. 그의 손은 매우 길고 가늘었을 뿐 아니라, 엄지 손가락을 손등 위로 구부려 새끼 손가락과 맞닿게 할 수 있을 만큼 유연했습니다. 희귀 유전 질환인 '엘러스-단로스 증후군' 이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하네요.

하지만 신체 조건보다 중요한 건 역시 피나는 노력이죠. 파가니니는 10대 때부터 하루에 10시간이 넘는 연습을 하며 독창적인 연주 기법을 만들어 냈습니다. 음을 하나씩 짧게 끊어 연주하는 '스타카토', 활을 사용하지 않고 현을 손으로 퉁겨 소리를 내는 '피치카토' 등 다양한 기법을 고안했습니다. 파가니니는 특히 왼손으로 피치카토를 선보여 감탄을 자아냈죠.

이런 초절정 기교로 화려한 연주를 하는 사람을 '비르투오소'라고 하는데요. 파가니니는 대표 비르투오소로 꼽힙니다. 요하네스 브람스, 프란츠 리스트 등 음악 대가들이 그의 작품을 좋아하고 편곡하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도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협주곡 2번' 주제를 기반으로 만들어졌죠. 파가니니의 연주를 본 리스트는 이런 결심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죽어도 저 사람의 실력을 따라가지 못한다. 그러나 그가 바이올린을 한다면, 나는 피아노의 파가니니가 되겠다."
파가니니의 연주회를 알리는 포스터. (1831)

파가니니의 연주회를 알리는 포스터. (1831)

오늘날 연주자들에게도 파가니니의 곡은 정말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키는데요.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가 2015년 '파가니니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1위를 차지하며 많은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파가니니의 삶은 뜨거운 인기에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너무 어린 나이에 성공한 탓일까요. 젊은 시절 도박에 빠져 많은 돈을 잃었습니다. 20대 후반부턴 열심히 모았지만, 54세에 이르러 자신의 이름을 딴 카지노를 만들겠다는 사람들의 유혹에 빠져 투자했다가 또 돈을 잃었죠. 건강도 줄곧 좋지 않았습니다. 30대부터 매독, 류머티즘, 후두염 등에 시달리다 58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파가니니의 사후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자주 회자되고 있는데요. 그가 평생 동안 노력해 자신의 브랜드로 만든 '악마' 때문입니다. 파가니니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그가 악마와 계약을 맺었다는 소문을 믿는 사람들도 늘어났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이 소문은 사라지지 않았죠. 이를 이유로 교회 묘지 안장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높았습니다.

여기엔 파가니니의 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임종 직전, 그는 생애 마지막 성사인 종부성사를 하러 온 사제에게 "바이올린에 악마가 있다"고 말했죠. 결국 그는 교회 묘지가 아닌 지하 납골당에 안치됐습니다. 이후 아들의 끈질긴 요청으로 36년이 흘러서야 교회 묘지에 묻혔습니다. 어쩌면 파가니니는 자신의 사후보다, 경이로운 천재 음악가의 이미지를 지키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아닐까요. 그 바람대로 파가니니는 영원한 비르투오소로서 사람들의 가슴 속에 남았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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