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스사운드 제공
커스사운드 제공
“인간의 진짜 성격은 그의 놀이에서 나타난다(The real character of a man is found out by his amusements).”

18세기 영국의 화가 조슈아 레이놀즈가 남긴 말이다. 취미 활동이 한 사람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는 얘기다. 고단함이 묻어나는 직업과 달리 취미 활동은 그 사람의 성격과 관심사, 취향을 단번에 드러낸다. 이 세상엔 사람의 숫자만큼 다양한 취미가 존재한다. 한국경제신문은 ‘취미의 세계’를 통해 독자들에게 취향의 폭을 넓혀줄 색다른 취미를 소개할 계획이다.
“이런 코드로 멜로디 라인을 잡았다면 비트는 이렇게 바꿔보면 어떨까요.”

지난 5일 찾은 서울 합정동의 한 음악학원 레슨실에서는 강의가 한창이었다. 여느 음악학원과 다른 점은 강사와 수강생이 악기가 아니라 컴퓨터 모니터를 보면서 얘기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악기 연주가 아니라 작곡을 가르치는 학원이다.

“좋아하는 곡 직접 만들 수 있어”

서울 합정동 작곡 학원 커스사운드에서 직장인 김진욱 씨(왼쪽)가 김지용 부원장에게 수업을 듣고 있다.
서울 합정동 작곡 학원 커스사운드에서 직장인 김진욱 씨(왼쪽)가 김지용 부원장에게 수업을 듣고 있다.
‘작곡’이라는 단어가 주는 이미지는 책상 앞에 앉아 고뇌하는 베토벤 혹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일필휘지로 오선지를 채우는 모차르트의 모습일 것이다. ‘아무나 따라 할 수 없는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는 게 일반적인 인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발달해 곡을 쓰는 것부터 악기 연주, 믹싱, 마스터링 등 곡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작업을 아마추어도 할 수 있다.

작곡 전문 학원 커스사운드의 이광식 대표는 “곡을 작업할 수 있는 DAW(디지털 오디오 워크스테이션)가 잘 돼 있고 오디오 샘플, 가상악기 등을 가져다 쓸 수 있어 과거보다 작곡의 진입장벽이 낮아졌다”며 “취미로 학원에서 배우고 자작 앨범을 내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학원 수강생 가운데 40%가량이 취미로 작곡을 배우는 사람이다.

이 비율은 최근 2년간 두 배로 늘어난 것이다. 지방에서도 수업을 듣길 원하는 학생이 증가해 최근 비대면 강좌를 새로 마련했을 정도다. 이 대표는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5~6개월 정도면 작곡 툴을 익힐 수 있고 1년 정도면 원하는 곡을 완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작곡의 매력은 음악을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창작해볼 수 있다는 점이다. 제약회사에 다니는 직장인 김진욱 씨(38)는 3개월째 학원에 다니고 있다.

그는 여느 음악 마니아처럼 듣기를 좋아했다. 그러다 문득 ‘좋아하는 음악을 찾아 들을 게 아니라 내가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컴퓨터만 있으면 작곡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 학원에 다니며 배우기 시작했다”며 “꾸준히 연습해 올해 안에 내가 좋아하는 EDM(일렉트로닉 댄스 뮤직) 곡을 하나 완성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작곡 자체가 매력적인 ‘놀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연세대 미디작곡동아리 메이의 전형섭 회장(건축학과 2년)은 “곡에 어울리는 악기와 연주 샘플링 등을 조합해 성을 쌓듯 차곡차곡 곡을 완성해가는 행위 자체가 즐거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작곡하는 과정을 통해 음악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진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매력 포인트다.

컴퓨터 프로그램만 있으면 입문 가능

작곡을 시작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컴퓨터와 DAW다. 에이블톤 라이브와 큐베이스, 로직 프로X 등이 대표적인 DAW다. 이 프로그램의 가격은 통상 10만~20만원대다.

대부분 DAW는 1~3개월 정도 무료로 써볼 수 있는 체험판을 제공한다. 가상악기와 샘플링 등을 추가로 구매할 수도 있다. 이광식 대표는 “EDM 음악과 뉴에지이 음악에서 쓰이는 악기가 전혀 다른 만큼 자신이 주로 만들고 싶은 곡의 장르에 따라 악기 종류를 선택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월 1만~2만원을 내고 샘플링과 가상악기를 무제한 쓸 수 있는 구독형 상품도 많다. 애플 아이폰, 아이패드에 내장된 ‘개러지밴드’ 같은 프로그램으로 가볍게 입문해보는 방법도 있다.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전문가들이 권장하는 장비는 피아노 건반 모양 입력기인 마스터 키보드다. 컴퓨터 키보드를 이용해 가상악기를 연주할 수도 있지만, 마스터 키보드가 있으면 조금 더 섬세한 표현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 장비 역시 저렴한 제품은 10만원 이하로 구입할 수 있다.

이승우 기자 lees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