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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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일본에서 귀국한 내고(乃古) 박생광(1904~1985)에게 한국 화단은 냉랭했다. 오랜 유학 생활과 현지에서의 활발한 작품 활동 때문에 왜색풍 화가라는 오명이 따라다녔다. 모란과 달 같은 한국적 소재를 그렸지만 반응은 마찬가지였다. 박생광은 말년인 1970년대 후반에 이르러 극적인 변신을 이뤄냈다. 민화와 불화, 무속화 등에서 발견한 토속적 이미지를 강렬한 오방색으로 화폭에 담아낸 것. 그가 개척한 한국 고유의 채색화풍에 화단은 ‘색채화의 거장’이라는 찬사를 보냈다.

무속적인 이미지를 주로 다룬 탓에 저평가됐던 박생광이 최근 재조명받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한국 근대 미술의 핵심 작가로 대우받기 시작했다. 지난 2월 서울옥션 경매에는 박생광의 작품 7점이 출품돼 모두 낙찰됐다. 굿하는 모습을 그린 ‘무당’은 2억2000만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2018년 ‘토함산 해돋이’가 그의 작품 중 최고가 낙찰 기록(3억1000만원)을 세우고, 2019년 대구미술관이 박생광의 작품세계를 재조명하는 대규모 회고전을 연 게 본격적인 재평가의 계기가 됐다.

"강렬한 오방색"…재조명받는 '한국의 피카소' 박생광
박생광 작품은 전통 색채인 오방색의 대비가 거친 생명력을 과시한다. 작품을 가득 메운 청·녹·적·황·흑에 흰색이 일부 가미돼 시선을 집중시킨다. 부적과 무당 등 무속적 소재를 비롯해 민속문화에서는 탈, 불교에서는 석굴암 본존불 등을 끌어와 굵은 선으로 표현했다.

더없이 한국적인 그의 작품세계는 해외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1985년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Grand Palais) ‘르 살롱전’ 특별전에 출품한 그에게 비평가들은 ‘한국의 피카소’란 별명을 붙여 줬다. 사후인 2003년에는 바르셀로나의 성 아우구스틴성당에 그의 작품 ‘명성황후’가 전시됐다.

박생광은 작고하기 전 이런 말을 남겼다. “역사를 떠난 민족은 없다. 전통을 떠난 민족은 없다. 모든 민족예술에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 있다.” 웅갤러리는 오는 10일까지 ‘박생광전’을 통해 이런 철학이 담긴 그의 작품 11점을 전시한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는 이달 26일까지 박생광의 말년 작품 10점을 소개하는 전시 ‘무속’을 열고 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