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상처에 대한 공감과 치유…'빛고을 광주' 예술로 물들다
빛고을 광주가 예술로 물들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현대미술 축제인 제13회 광주비엔날레가 지난 1일 막을 올리면서다. 용봉동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을 중심으로 국립광주박물관, 호랑가시나무 아트폴리곤, 광주극장, 화정동의 옛 국군광주병원 등에서 40여 개국 작가 69명(팀)의 작품 450여 점을 동시다발적으로 선보이고 있다. 다음달 9일까지 39일간 광주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미술관이 되는 셈이다.

지난해 열릴 예정이었던 광주비엔날레는 코로나19로 두 차례 연기된 끝에 해를 넘겨 열렸다. 공동 예술감독인 데프네 아야스와 나타샤 진발라가 기획한 전시 주제는 ‘떠오르는 마음, 맞이하는 영혼’. 마음의 범위를 예술적·이론적으로 확장해 폭넓게 탐구한다는 취지에 전시장 곳곳에는 페미니즘, 샤머니즘, 생태주의 등 대안적 담론이 등장한다. 인도, 필리핀, 칠레, 북유럽 소수민족 등 다양한 문화권이 품고 있는 역사적 상처는 5·18민주화운동의 현장인 광주에서 만나 공감과 치유의 울림으로 공명한다.

주 전시장인 광주비엔날레 전시관은 5개 전시실에 50명이 넘는 작가의 작품을 한데 모아 거대한 서사를 만들어 낸다. 무료로 공개되는 1전시실은 이번 전시의 핵심을 한 번에 보여주는 ‘티저’ 공간이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북유럽 소수민족인 사미족 출신인 오우티 피에스키가 붉은 실을 엮어 만든 거대한 설치작품 ‘함께 떠오르기’가 관객을 맞는다. 기독교 문화에 의해 금지당했던 사미족의 전통의상은 작가의 설치·영상 작업을 통해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인도네시아 작가 티모테우스 앙가완 쿠스노의 설치작품 ‘보이지 않는 것의 그림자’도 눈길을 끈다. 은은한 조명 아래 하얀 천이 뒤덮인 채 놓여 있는 호랑이 사체를 까마귀 떼가 맴돌고 있다. 시신을 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죽음을 애도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한국 문화에서 호랑이는 길하고 강한 동물이지만 인도네시아에서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크다고 한다. 광주비엔날레 관계자는 “지역적 맥락에서 호랑이를 약자를 상징하는 존재로 활용한 점이 흥미롭다”고 설명했다.

군부 독재를 직설적으로 비판해온 민중미술 1세대 이상호와 칠레 독재정권을 비판해온 세실리아 비쿠냐의 작품은 서로 마주보며 배치돼 있다. 각국의 역사적 아픔을 공유하고 공감하는 듯하다. 발광다이오드(LED)로 춤추듯 휘날리는 치맛자락을 표현한 릴리안 린의 ‘전기신부’는 모계사회의 미래를 그렸다는 설명이다.

1965년 건립된 옛 국군광주병원은 1980년 당시 고문과 폭행으로 다친 300여 명의 시민을 치료했던 장소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 입구부터 낡은 건물을 포근하게 감싸 안은 듯한 담쟁이덩굴, 깨진 창문 사이로 가지를 뻗은 개나리 등 공간 자체가 설치작품처럼 압도적 감동을 선사한다.

이곳의 예배 공간이었던 장소는 일본 작가 시오타 지하루가 검은 실과 낱장의 성경으로 엮은 작품으로 새로 태어났다. 9개 언어로 번역된 성경은 낡은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들어오는 햇볕과 만나 따스한 위로를 전한다. 이불이 2019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선보였던 ‘오바드V’는 비무장지대 감시 초소에서 나온 철조망으로 만든 구조물이다. 임민욱의 ‘채의진과 천 개의 지팡이’는 세월의 손때가 묻은 지팡이들을 통해 역사 속 희생자를 기억하고 상처의 치유를 기원한다.

문선희의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_목소리’.
문선희의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_목소리’.
다소 고통스럽게 상처를 직시한 작품을 지나면 ‘꽃길’이 펼쳐진다. 5·18 당시 돌잡이였던 문선희 작가가 5000포기의 데이지 꽃으로 만든 설치작품 ‘묻고, 묻지 못한 이야기_목소리’다. 죽음과 삶이 오갔던 옛 병원의 중환자실은 이제 뿌리부터 꽃까지 모두 치료용 약재로 쓰인다는 데이지 꽃이 가득 채웠다. 문 작가는 “꽃을 다치지 않게 하려고 관객들은 조심조심 걷게 된다. 병원의 본질인 치유를 되새기고자 데이지 꽃길을 꾸몄다”고 설명했다. 옛 국군광주병원은 이번 전시를 끝으로 국가 폭력의 피해자를 위한 ‘국립 트라우마 치유센터’로 재탄생한다.

이번 광주비엔날레의 출품작과 전시 구성은 명쾌하지도 친절하지도 않다. 주제도 무겁다. 하지만 다양한 목소리와 시선이 담긴 만큼 각자 자유롭게 해석할 여지도 크다.

광주=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