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의 자연 속에 그려진 화가의 삶과 사랑
[영화 속 그곳]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
뭔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고개는 비스듬히 돌려져 있다.

차마 정면으로 마주보기 어려운 것일까.

아직 피부는 노화의 기색이 없고 살짝 치켜뜬 눈엔 놀라움과 호기심이 가득하다.

하지만 조금 깊이 들여다보면 원망과 두려움의 눈빛으로도 보인다.

꽉 다문 입술로 그 모든 감정의 표출을 막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림 왼쪽)
또 하나의 얼굴(그림 오른쪽)이 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해골의 형상에 가깝다.

머리카락은 없고, 눈에는 초점이 사라졌다.

벌린 입에서는 신음 소리가 아니면 외마디 비명이 흘러나올 것 같다.

두 그림 모두 '핀란드의 뭉크'라고 불리는 화가 헬렌 쉐르벡(1862∼1946)의 자화상이다.

쉐르벡은 독특한 색감과 기법이 돋보이는 인물화로 유명한 모더니스트다.

첫 번째 그림은 쉐르벡이 50대에 막 접어든 때 그렸고, 두 번째는 죽음을 2년 앞둔 82세 때 작품이다.

무엇이 이렇듯 다른 두 얼굴을 만들어냈을까.

[영화 속 그곳]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
◇ 화가의 그림 같은 장면들
영화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은 화가 쉐르벡의 이야기를 담았다.

보기 드문 핀란드 영화다.

쉐르벡이 어머니와 실제로 머물렀던 핀란드 남부 휘빈캐(Hyvinkaa)의 아름다운 시골 풍광에 눈을 뗄 수 없다.

휘빈캐는 핀란드의 수도 헬싱키에서 북쪽으로 50㎞ 떨어져 지금은 위성도시로 발전했지만, 사계절 청정한 숲과 호수를 품고 있다.

영화 속 빛과 그늘이 섬세하게 어우러진 장면 장면은 수채화와 유화를 이어 붙인 듯하다.

화가의 인생을 그 화가가 그린 그림 같은 장면들로 꽉 채운 스크린을 감상하다 보면 어느새 스토리는 뒷전이다.

그래도 그의 삶이 그려가는 굴곡을 따라가는 건 그림과 영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누구든 그렇겠지만, 삶이 그림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쉐르벡은 가부장적인 시대에 태어나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

가정환경은 어려웠고, 몸 상태는 온전치 않았다.

딸을 차별하는 어머니, 동생의 그림으로 돈만 챙기려는 오빠가 있었다.

[영화 속 그곳]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
미술계는 나이 든 여성 화가의 급진적 작품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전시회를 열고 싶었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던 그는 자포자기 상태에서 시골 휘빈캐로 내려가 살았다.

어느 날 쉐르벡의 그림을 인정해주는 몇몇 사람들이 그를 찾아왔다.

덕분에 개인전도 열게 됐다.

가장 먼저 그림의 진가를 알아봐 준 남자는 아마추어 화가인 젊은 공무원 에이나르였다.

쉐르벡은 에이나르와 함께 그림을 그리며 그와 소울메이트가 됐다.

쉐르벡은 에이나르를 향한 감정이 사랑임을 알았지만 그 사랑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다시 혼자가 됐고 상처는 죽을 것처럼 컸지만, 쉐르벡은 다시 삶을 이어간다.

다시 그림을 그렸다.

[영화 속 그곳]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
◇ 자아 연출의 무대, 자화상
화가는 자화상을 통해 자신을 내보인다.

사실과는 다르게 과장, 미화, 왜곡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실 여부와는 관계없이 자화상은 화가 자신에 대한 일단의 진실을 드러낸다.

그 진실은 남들에게 보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자신을 속이려는 것일 수도, 자신의 은밀한 마음과 대면하는 것일 수도 있다.

자화상엔 화가의 자아가 어떤 방식으로든 연출되는 것이다.

쉐르벡의 50대 자화상에는 에이나르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경험하기 전, 자신의 재능을 펼칠 수 없었던 사회와 가정의 차별에 대응하는 쉐르벡의 감정이 읽힌다.

외부 세계에 대한 두려움, 경멸, 혐오가 있고 부당함에 대한 저항도 있다.

하지만 눈빛에는 대항할 수 없음으로 인한 거리두기와 도피의 심리도 보인다.

80대 초반, 죽음이 다가왔음을 알고 그는 자화상으로 표현했다.

생명과 에너지가 꺼져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렸다.

죽음을 의식했고, 그대로 그렸다.

삶과 죽음이 한 얼굴에서 결합한 자화상은 죽음을 매개로 삶을 바라봤다는 증거다.

[영화 속 그곳]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
그 두 자화상 사이에서 쉐르벡은 사랑을 한다.

일방적으로 상처만 준 사랑이지만 생각은 성숙해지고 그림은 생기를 얻는다.

그의 그림에는 비로소 전에 없던 온기와 깊이가 배어 나왔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쉐르벡은 혼잣말을 한다.

'꿈이 시간과 손을 잡고/ 우리에게서 한 걸음, 한 걸음 멀어져 가/ 꿈과 시간은 어느새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지/ 인생을 살면서 이루려고 애썼던 것들은 이내 잊히고/ 결국 남는 것은 새하얀 종이뿐이야/ 그리고 환희가 찾아오지'
꿈도 사랑도 사라졌지만, 쉐르벡은 캔버스 위에서 기쁨을 얻었다.

그의 자화상은 욕망이든, 좌절이든, 죽음이든, 자아의 파편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화가는 영원의 시간 속에서 자신을 바라봐 주길 간청하고 있다.

에드가 드가는 이렇게 멋진 말을 했다.

"서로를 바라보기 위해 태어난 것. 그것이 인간이 아니던가?" 사랑도 자화상도 결국은 인간을 마주하고 바라보는 일이다.

[영화 속 그곳] 헬렌: 내 영혼의 자화상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4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