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나가야 마사아키의 책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

오늘날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이 된 배경에 한 전쟁 영웅을 괴롭힌 질병 '편두통'이 있었다고 하면 선뜻 믿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놀랍게도 사실이란다.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북군 총사령관 율리시스 심프슨 그랜트(1822~1885) 장군 이야기다.

60만 명의 사망자를 내며 4년 동안 진행된 남북전쟁은 엄청난 물량 공세와 압도적 화력에 힘입은 북군의 승리로 끝났다.

남군사령관 로버트 리 장군은 '무자비한 학살자'라는 별명을 가진 그랜트 장군에게 사자를 보내 항복의 뜻을 전했다.

물론 상당한 대가를 치르리라 각오했다.

그런데 예상 밖의 일이 벌어졌다.

그랜트 장군은 "전쟁은 끝났소. 반란군이 다시 우리 국민으로 돌아왔소"라며 남군 장병을 포로로 삼지 않고 식량까지 챙겨주며 귀향케 했다.

장군이 이처럼 관대한 처분을 내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일본의 뇌신경내과 전문의인 고나가야 마사아키 박사는 그랜트 장군의 결단 이면에는 극심한 두통 직후의 '정신적 변화'가 있었다고 밝힌다.

그랜트 장군은 격전 중에 심한 두통에 시달렸으나 리 장군의 사자가 도착했을 때 씻은 듯 통증이 사라졌고, 이 예기치 않은 상황이 심경에 변화를 일으켜 이튿날 회담장에서 리 장군을 만나 관대한 처분을 선언했다.

한 전쟁영웅을 괴롭힌 뇌질환이 세계사의 물줄기를 극적으로 바꿨다는 것이다.

고나가야 박사의 신간 '세계사를 바꾼 21인의 위험한 뇌'는 위인과 리더의 뇌에 침투한 질병이 만든 아슬아슬하고 위험천만한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측두엽 뇌전증, 뇌하수체 종양, 고혈압뇌출혈, 파킨슨병 등의 질환이 막시미누스 트락스 로마 황제, 잔 다르크, 도스토옙스키, 링컨 대통령, 그랜트 장군, 루스벨트 대통령, 히틀러, 마오쩌둥 주석, 브레즈네프 서기장 등 21명의 역사 인물의 뇌에 침투해 세계사를 결정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예컨대, 제1차 세계대전의 영웅이었던 독일의 파울 폰 힌덴부르크(1847~1934)가 '치매'로 분별력을 잃지 않았다면 히틀러와 나치스도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만한 권력을 갖지 못했을 수 있다.

승전 공로로 두 번이나 바이마르 공화국의 대통령이 된 힌덴부르크는 뜻밖의 치매로 지각 능력을 잃어 최측근 3인방의 꼭두각시가 되고 만다.

그들의 국정 농단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세력이 히틀러와 나치스였다.

이들은 권력을 찬탈해 유대인 600만 명을 학살하고 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수천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지적 능력과 함께 책임감도 곤두박질친 힌덴부르크 대통령은 음흉한 자들이 준비해 제시한 중요 안건 서류를 그저 시키는 대로 서명함으로써 히틀러와 나치스의 등장과 준동을 초래했다.

미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4선 대통령'이자 뉴딜정책으로 대공황을 극복한 영웅이며 2차 세계대전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끈 주역 중 한 명인 프랭클린 루스벨트(1882~1945)도 한때 미국인들 사이에서 '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질시를 당했다.

그 이면에 '고혈압뇌출혈'이라는 고질병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얄타회담 당시 그의 혈압은 300/170mmHg이라는 매우 심각한 지경까지 치솟았다.

1945년 2월 4일부터 열린 이 회담에서 중요한 조약이 일주일에 걸쳐 체결됐는데, 대부분 소련에 유리한 방향이었다.

이 중요한 자리에서 서방측 총수 격인 루스벨트 대통령이 건강 문제로 회의에 집중하지 못하는 바람에 미국과 영국이 소련에 크게 밀리는 결과를 빚었을 뿐 아니라 전 지구적 역학 관계도 바꿔놨다는 것이다.

이밖에 측두엽 간질은 잔 다르크와 도스토옙스키의 뇌를 지배해 세계 문학사를 바꿨고, 마오쩌둥은 루게릭병이라고 하는 근위축성 측삭 경화증을 앓았으며, 브레즈네프의 지능 저하를 가져온 뇌혈관성 치매는 소련의 붕괴를 앞당겼다고 한다.

역사의 야릇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서수지 옮김. 사람과나무사이. 316쪽. 1만7천원.
위인과 리더의 뇌에 침투한 질병이 만든 세계사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