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드러낸 "살아감의 수고스러움"
'시간' 연작은 코로나19로 터져나온 사상 초유의 사태를 기록한 신문이 타들어가는 과정을 그렸다. 신천지발 대구 집단감염, 유럽 봉쇄 등의 뉴스가 재와 함께 그의 그림에 남았다. 총 7점의 작품은 시계방향으로 점차 타들어가는 신문을 보여주며 시간이 가진 절대적 운명성과 극적인 연속성을 드러낸다. 철책을 배경으로 만찬장의 한 장면을 담은 '오랜 기다림' 연작 남북정상회담에서 열렸던 만찬장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주인공들이 떠나고 홀로남은 식기와 테이블에서는 당장이라도 남북관계가 해결될 것 같던 설렘, 하지만 또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좌절까지 롤러코스터를 타던 남북관계가 남긴 쓸쓸함이 배어난다.
이번 전시는 2017년 현대갤러리 전시 이후 4년만에 갖는 개인전이다. 한지와 수묵으로 물성을 탐구하던 그의 작업은 한층 더 깊고 다채로워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수묵 대신 채색을 선택했다. 6겹으로 배접한 한지 위에 전통 채색화 안료인 호분과 서양화 물감인 구아슈를 섞어 발랐다. 물감이 빨아들이는 한지덕에 그의 작품은 담백하며내서도 묵직한 힘을 뿝는다.
이 위를 철로 된 솔로 긋기와 드로잉을 반복한다. 그의 손길을 거치며 종이의 섬유질은 생명을 얻고 기세를 뿜어낸다. 힘찬 터치와 거친 마티에르는 팬데믹으로 무기력함에 빠진 우리 내면의 우울함을 드라마틱하게 전달한다. 유근택은 "공간과 내가 만나는 순간을 회화적으로 풀어내는데 있어 표현의 폭이 더 넓히고 싶다"고 말했다. 전시는 5월 23일까지.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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