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국립발레단 '해적', 몰입감 키우는 '액션 로맨스 발레'
1막이 오른 직후부터 해적단을 연기하는 발레리노들의 강렬한 군무가 전개된다. 배 위에서 호쾌하게 칼을 휘두르는 안무 뒤로 웅장한 오케스트라 연주가 깔린다. 지루할 틈이 없다. 발레리나들의 춤과 2막의 생기발랄하고 사랑스러운 파드되(2인무)는 섬세한 면모의 ‘반전 매력’을 선사한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국립발레단이 공연 중인 ‘해적’이다.

해적단 두목인 콘라드가 섬 처녀 메도라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메도라와 친구들이 왕국에 납치되자 콘라드는 해적단을 이끌고 그들을 되찾아온다. 이 과정에서 해적단의 2인자 비르반토는 콘라드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반목한다. 시시때때로 벌어지는 전투에서는 발레리노들의 역동적이고 화려한 무용이 펼쳐진다. 특히 2막에서 해적단과 왕국 병사들이 보여주는 단체 칼싸움 군무는 백미다. 칼이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박진감 넘치는 음악이 분위기를 압도한다.

큰 동작이 많으면서도 섬세하고 기술적인 클래식 발레의 매력까지 갖췄다. 왕국 신전의 대사제 귈나라의 춤, 2막에서 콘라드와 메도라가 보여주는 파드되에서는 섬세하고 부드러운 무용과 감정 연기가 돋보인다.

자칫 단순하고 지루한 권선징악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악역인 비르반토가 발레극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콘라드는 해적단 두목이지만 선원들은 노예로 삼지 않는 선한 면모를 보여준다. 연인 메도라와 콘라드에 의해 자유를 얻은 알리도 전형적인 선한 역이다. 하지만 비르반토는 노예 해방에 반대하고 왕궁으로 침입하자는 제안에 불만을 표한다. 의리를 지키기 위해 콘라드를 따르지만 결국 붙잡히자 목숨을 건지기 위해 그를 배신한다. 비열하고 나약하지만 정에 이끌리는 입체적인 캐릭터다.

비르반토의 마임과 섬세한 표정 연기, 시선 처리가 관객들의 감정이입을 이끌어낸다. 예컨대 콘라드를 뒤에서 웃으며 바라보다가 고개를 홱 돌리는 동작은 비르반토의 애증과 복잡한 심경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액션 로맨스 발레’로 분류되는 이 작품은 초보자의 발레 입문작으로 안성맞춤이다. 안무가 송정빈이 작품 길이를 3막에서 2막으로 줄이면서 안무를 원작보다 강렬하게 바꿨다. 공연은 오는 28일까지, 관람료는 5000~8만원.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