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픽션 '피에 젖은 땅'·'생존자 카페' 번역 출간

20세기 중반 유럽 중앙부에서 약 1천400만 명의 사람을 죽이는 대량학살이 벌어졌다.

1933년부터 1945년까지, 겨우 12년 동안 살육당한 1천400만 명은 전쟁이 아닌, 히틀러와 스탈린의 정책으로 목숨을 잃었다.

'유럽의 킬링필드'는 아우슈비츠 외에도 폴란드, 러시아 서부,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발트연안국 등에 이른다.

이런 나치 독일과 소련의 '인종청소'에 죽어가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수집한 연구서와 홀로코스트 생존자 2세가 쓴 트라우마 유산에 대한 논픽션이 출판사 글항아리에서 번역 출간됐다.

◇ 히틀러와 스탈린 체제가 학살한 1천400만명의 목소리를 수집하다
미국 예일대 역사학과 교수인 티머시 스나이더가 쓴 '피에 젖은 땅'(원제 : Bloodlands)'은 독일, 폴란드, 우크라이나, 러시아, 영국, 미국의 기록보관소 16곳에서 10개 언어로 쓰인 자료 등을 토대로 1천400만명이 어디서, 어떻게, 왜 죽었는지 기록한 방대한 연구서다.

히틀러·스탈린에 살육당한 사람들의 역사와 트라우마 유산

책에 따르면 스탈린주의와 국가사회주의가 세력을 굳히던 시기(1933∼38), 독소의 합공 폴란드 침공(1939∼41), 독소 전쟁(1941∼45) 동안 사상 초유의 학살이 유럽 대륙의 중앙부에서 벌어졌다.

사망자들은 주로 유대인, 벨라루스인, 우크라이나인, 폴란드인, 러시아인, 발트연안국인들로 그 땅에 살고 있던 주민들이었다.

'블러드랜드'로 이름 붙인 이 지역에서는 사상 최악의 살육전인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군인의 절반이 쓰러졌다.

그러나 이 책이 기록한 1천400만명 가운데 전사한 병사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는다.

대부분 여성, 어린이, 노인이었다.

아무도 무장하지 않은 채였고, 대게 모든 재산을, 몸에 걸칠 것조차 빼앗긴 상태에서 숨을 거뒀다.

본문만 700쪽이 넘는 이 책은 스탈린이 우크라이나를 의도적으로 기아의 늪에 빠뜨려 죽인 300만명과 스탈린의 대숙청 기간에 살해당한 70만명, 2차 세계대전 시작 무렵 폴란드를 동시 침공한 소련군과 나치 독일군에 목숨을 잃은 폴란드인 20만명, 히틀러가 스탈린을 배신하고 포위한 레닌그라드에서 농성 끝에 굶어 죽은 400만명, 독일군이 가스나 총탄으로 죽인 유대인 500만명 등의 역사를 기록했다.

저자는 "스탈린의 죄악은 흔히 러시아에 지은 죄악으로 여겨지며, 히틀러의 죄악 역시 독일에 대한 죄악으로 불린다"며 "그러나 소련의 가장 심한 만행은 비러시아 변경지대에서 저질러졌고, 나치 역시 독일 바깥에서 살육의 대부분을 자행했다"고 강조한다.

책은 아우슈비츠에 집중된 관심을 '블러드랜드' 전체로 확장했다는 점과 희생자들을 숫자가 아닌 사람으로 보려 했다는 점에서 다른 역사서들과 차별된다.

히틀러·스탈린에 살육당한 사람들의 역사와 트라우마 유산

특히 스탈린이 1928∼32년 실시한 산업화와 집단화 정책으로 발생한 1933년 우크라이나 대규모 기아 사태인 '홀로도모르'를 다룬 장은 사실이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처참한 모습을 상세히 기술한다.

"굶주림을 눈앞에 두고 많은 가족이 산산조각이 났다.

부모는 자식을 나 몰라라 했고, 자식들은 서로 먹을거리를 놓고 싸웠다.

국가 경찰 기구인 OGPU의 기록에서 부정할 수 없도록 드러났다시피, 소련령 우크라이나에서는 '가족이 그 가장 약한 식구를 잡아먹었다.

보통 어린애들이었다'. 자기 자식을 죽이고 먹은 부모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어떤 어머니는 자신과 딸의 식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잡아서 요리했다.

친척들에 의해 목숨을 건진 여섯 살짜리 소녀는 자기를 죽이려고 칼을 갈고 있는 모습이 마지막으로 본 아빠의 모습이었다.

"
이처럼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상세하게 기술하고서 '인간성에 대한 질문'이란 제목의 결론에서는 "희생자들의 죽음만 볼 게 아니라 그들의 삶을 봐야 한다"고 강조한다.

희생자들의 죽음을 내세우며 어떤 정책을 미화하거나 자신과 희생자를 동일시하는 일은 쉽고, 범죄자들이 저지른 행동을 이해하는 일은 매력이 없지만, 도덕적 위험은 누군가가 희생자가 될 때보다 범죄자나 방관자가 될 때 발생하기 때문에 범죄자를 이해하는 일이 도덕적으로는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을 이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것은 이해를 포기하는 일, 다시 말해 역사를 버리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살육자는 숫자들 뒤에 숨어 있다.

막대한 죽음의 숫자를 읊조리는 것은 익명성의 흐름에 숨어버리는 일이다.

개별적인 삶을 부수적으로 다루는 숫자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은 개인을 말살하는 일이다"라며 "죽은 이의 숫자를 셀 뿐 아니라 죽은 이 한 명 한 명을 개인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 "피해자의 호소에 귀 기울이듯 가해자의 사연에도 귀 기울여야"
홀로코스트 생존자 부부의 딸인 미국 문학인 엘리자베스 로즈너가 쓴 '생존자 카페'(원제 : Survivor Cafe)는 아버지와 함께 집단수용소 해방 70주년을 맞아 독일 부헨발트에서 열린 기념식에 참석한 일화로 시작하는 논픽션이다.

히틀러·스탈린에 살육당한 사람들의 역사와 트라우마 유산

저자는 부모 세대의 기억이 망각되는 것이 두려워 독일의 노쇠한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한다.

부모의 트라우마를 물려받아 자기 몸속에도 불안과 두려움이 삶의 순간순간마다 불쑥불쑥 튀어나와 괴롭혀왔다는 것을 자각하며 2세로서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기 위해 글을 썼다고 한다.

책은 홀로코스트부터 전쟁, 핵폭탄 등 다양한 잔혹 행위의 유산이 세대를 거쳐 대물림되는 경로를 탐색하고 이런 파멸적 유산을 품어낼 방법은 무엇인지 설명한다.

특히 저자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을 만나는 와중에도 "우리는 가해자를 비판하려는 본능을 되도록 억제해야 한다"면서 "피해자의 호소에 귀 기울이듯 가해자의 사연에도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가해자와 부역자의 이야기를 끌어안아야만 인간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고 무슨 짓까지 저지를 수 있는지에 관해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로즈너의 이런 시각은 '피에 젖은 땅'의 결론과도 궤를 같이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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