램지어 반박문도 대부분 일본자료 인용…피해자 증언·학술연구 번역 시급
[왜곡의 국제화] 논문엔 논문으로…日왜곡 맞설 '연구 국제화' 절실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위안부 망언' 논문이 일으킨 파도는 우리의 대응이 안이했다는 자성도 함께 불러오고 있다.

일본 전범기업 미쓰비시의 돈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고 명문대 교수직을 무기로 우익의 주장을 재생하고 이를 국제 학술지에 싣는 체계적인 역사 수정작업의 실체가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새삼 중요성을 깨닫게 된 것은 학문의 힘이다.

아무리 국내 여론이 들끓고 언론이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결국 외국 학자들이 나서서 반박하지 않았더라면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을지 모른다.

미흡하기는 하지만 문제의 논문을 싣기로 한 국제법경제리뷰(IRLE)가 '우려 표명'의 글과 반론을 함께 펴내기로 한 것이나, 램지어 교수의 또 다른 왜곡 논문을 펴내려던 영국 케임브리지대 측이 상당 부분 수정하기로 한 것도 학자들의 노력 덕분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위안부 문제의 당사자이자 다방면으로 많은 연구를 축적해놓은 우리 학계의 역할은 크지 않았다.

연합뉴스가 22일(현지시간) 램지어 교수의 위안부 논문과 관련해 IRLE 측에 제출된 국제 역사학자들의 공개 반박문 3편을 분석한 결과 한국 학자들의 연구 결과나 저서가 인용된 사례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알렉시스 더든 코네티컷대 교수의 반박문에는 한국 자료의 인용이 전혀 없었고, 에이미 스탠리 노스웨스턴대 교수를 비롯한 글로벌 역사학자 5명의 공동 반박문 1차 인용문헌은 거의 일본에서 이뤄진 연구 결과물이다.

2차 인용문헌에 한국 또는 한국계 학자의 저서 4편이 있을 뿐이며 일본 측 문헌은 이보다 많은 6편이다.

[왜곡의 국제화] 논문엔 논문으로…日왜곡 맞설 '연구 국제화' 절실

앤드루 고든·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교수의 성명서에도 일본 측 연구 3편, 한국 측 연구 1편이 각각 인용돼 있다.

즉, 일본 우익의 시각에서 쓴 논문을 반박하는 데에도 한국의 연구보다는 일본의 연구가 더 많이 참고로 활용됐다는 뜻이다.

다소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런 상황은 그만큼 우리 정부와 학계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연구 결과와 피해자 증언 등 각종 사료를 영어로 번역해 출판하거나 국제저널에 실으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못했음을 방증한다.

이진희 이스턴일리노이주립대 사학과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결정적인 기본 사료부터 번역해 세계 학자들이 쉽게 찾아보고 확인이 용이하도록 준비됐다면 논문 심사위원이나 학술지 편집자들이 사실 확인 단계를 건너뛰어 엉터리 논문을 통과시키는 일은 적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사실에 근거한 부인할 수 없는 잘 정비된 역사적 증거 자료를 널리 알리는 일이 중요하다"면서 "개인 연구자나 소규모 단체가 진행하기에는 어려운 작업"이라며 정부의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여성가족부는 2019년 2월 위안부 피해자 증언집의 영어 번역 사업을 완료해놓고 저작권 문제 등의 이유로 2년이 지나도록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별 학자들이 할 수 없는 역사 대응의 총괄 컨트롤타워가 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해외 학술회의 등을 지원해 우호세력을 구축하는 일본국제문제연구소처럼 공공 학술기관의 역할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국내의 한 역사학자는 연합뉴스에 "일본은 위안부 문제를 한국 정부의 반일 정책으로 국제사회에 인식시키려고 노력하는데 한일관계의 문제가 아니라 보편적인 인권, 전시 여성인권의 문제로 다루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의 연구 자체를 더욱 장려해야 할 필요성도 있다.

한국교육학술정보원 학술연구정보서비스(RISS) 검색 결과 제목에 위안부가 들어가는 국내 박사학위 논문은 12건으로, 위안부 관련 예술작품이나 시민운동 등 부차적 주제에 관한 저술을 뺀 역사학 박사학위 논문은 1건뿐이다.

디지털 인문사회학 논문 검색 사이트인 프로젝트뮤즈에 따르면 제목에 'comfort women'이 들어가는 국제저널 논문도 27건에 불과하다.

[왜곡의 국제화] 논문엔 논문으로…日왜곡 맞설 '연구 국제화' 절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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