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작가 듀나의 SF 신작 '평형추'

국내 공상과학소설(SF)의 개척자 중 한 명인 동시에 '듀나 월드'로 불리는 독보적 세계관을 구축해온 것으로 평가받은 듀나의 신작이 나왔다.

도서출판 알마에서 최근 출간한 장편소설 '평형추'이다.

이 작품이 흥미로운 건 원래 약 10년 전 옴니버스 소설집에 수록했던 동명의 단편소설을 장편으로 확장한 에디션이어서다.

인류가 태양계를 정복하고 성간 우주로 도약하고자 창조한 '궤도 엘리베이터'에 얽힌 이야기라는 뼈대를 유지했지만, 화자도 바뀌고 배경, 등장인물, 서사 구조 등이 훨씬 복잡하고 다양해졌다.

소설은 이 궤도 엘리베이터를 둘러싼 거대한 음모, 그리고 숨겨진 초월적 존재를 추적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치열한 두뇌 게임을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작가가 표방한 건 추리, 액션, 서스펜스가 어우러진 SF라고 한다.

장편으로 확장한 '궤도 엘리베이터' 세계관

적도 근방에 솟은 열대림의 섬 '파투산'은 우주와 지구를 잇는 포털이다.

다국적 거대 기업 LK가 궤도 엘리베이터를 이곳에 세운 이후부터 대기권 밖에 식민지를 건설하거나 성간 우주로 탐사선을 대량 파견하는 게 가능해졌다.

본격적인 우주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LK는 원래는 폐허였던 파투산에 완벽한 시스템 도시 '아콜로지'를 건설하고 많은 돈을 뿌렸지만, 불만을 가진 자들은 저항 세력인 '파투산 해방 전선'을 만들었다.

이 해방 전선은 환경론자일 것처럼 보이는 LK 말단 사원 최강우를 포섭하려 하고, 이를 포착한 LK 대외업무부 수장 맥은 최강우 등을 추격한다.

단순한 신입 사원으로 보였던 그에게는 사실 거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작품 활동을 시작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필명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듀나가 오랜만에 내놓은 장편이라 더욱 시선을 잡아끈다.

영상 시대로 접어들면서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타인에 알리려는 경향이 노출증에 가까울 만큼 강해진 요즘 듀나 같은 은둔자는 매우 특이한 존재다.

마치 '알려지지 않을 권리', '잊힐 권리'를 주장하는 듯하다.

소설가 정세랑은 추천사에서 듀나의 소설을 '대체 불가능' 수준으로 극찬하면서 "작가를 AI(인공지능)로 만들어 영원히 쓰게 하고 싶다면 위험한 고백일까"라고 말했다.

'특이점'(Singularity)을 이제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점을 고려하자면, '이메일 아이디'로만 존재한다는 듀나는 혹시 원래부터 AI가 아니었을까?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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