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의 1951년 작 ‘달밤’
김환기의 1951년 작 ‘달밤’
코로나19 때문에 가족이라 할지라도 5인 이상 모이기 힘든, 사상 초유의 설 연휴다. 오랜만에 오롯한 휴식을 만끽할 수 있는 연휴, 예술 전시로 고단한 일상에 쉼표를 찍어보는 건 어떨까. 한국 근현대 미술의 정수를 감상하는 전시부터 해외 유명 작가전까지 예술감성을 충전할 수 있는 전시가 연휴 내내 관객을 기다리고 있다.

문학과 미술의 앙상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새해 첫 기획전 ‘미술이 문학을 만났을 때’는 1930년대부터 1950년대 초까지 문인과 미술인의 교류를 조명했다. 일제 치하 가장 어둡던 시기, 어둑한 다방 한구석에서 현실을 고민하고 찬란한 미래를 꿈꾸던 이들이 빚어낸 결과물은 슬프도록 아름답다. 이상, 구본웅, 박태준, 김광균, 김환기, 천경자 등 귀에 익은 문인과 미술가들이 나눴던 교감을 충분히 감상하려면 두 시간으로도 빠듯할 정도다.

식민 지배를 받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신문화가 빠르게 유입되던 시기. 예술인들은 새로운 자극을 자신의 방식대로 소화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한 문화를 꽃피웠다. 4부로 구성된 전시관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보석 같은 예술작품으로 빼곡하다. 김광균 시인의 사무실 사진에서 포착해 추적을 거듭한 끝에 처음 공개되는 김환기의 작품 ‘달밤’이 대표적이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김인혜 국립현대미술관 팀장은 “문인과 화가들이 따로 또 같이 추구했던 지적 탐색, 미적 향유의 가치를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당대의 입체적 관계도를 그리고자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연휴 내내 개관한다.

서울 대학로 아르코미술관에서는 인간의 언어를 넘어서 자연과 소통하고 공존을 모색하는 시도를 만날 수 있다. 여성주의 미술 대표작가인 홍이현숙의 개인전 ‘휭, 추-푸’이다. 바람에 무언가 날리는 소리인 ‘휭’, 남미 토착민 언어인 케추아어로 동물의 신체가 바람에 휘날릴 때 나는 소리 ‘추푸’에서 드러나듯 전시는 의성어와 의태어, 동물이 빚어내는 낯선 소리로 가득하다. 인간이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그들 각자의 언어로 소통하고 있음을, 그들 역시 인간과 다름없는 소중한 생명체임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다.

고래 여덟 마리가 내는 소리를 담고 작가의 방을 뗏목처럼 구성해 망망대해에서 고래를 마주치는 경험을 제공하는 사운드 설치작품 ‘여덟 마리 등대’, 서울 갈현동 인근 재개발 지역에 살고 있는 길고양이들과 공감하는 모습을 담은 ‘석광사 근방’ 등이 인상적이다. 설 당일(12일)에는 휴관한다.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본관에서 열리고 있는 ‘컬렉션_오픈 해킹 채굴’은 미술관 소장 작품으로 구성된 기획전시다. 비대면·온라인 환경에서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참여형 작품이 공개된다. 관람객은 미술관을 방문하거나 전시 홈페이지, 스마트폰 등을 통해 전시에 참여할 수 있다. 북서울미술관에서는 스페인 한네프켄재단과 공동 기획한 미디어아트 전시 ‘파도가 지나간 자리’를 즐길 수 있다. 서울과 바르셀로나에 기반을 둔 기관들이 협력해 구성한 전시로, 근대의 시간을 각자의 방법으로 관통해 온 역사적 긴장을 소개한다.

해외 유명작가 전시도 풍성

장미셸 바스키아의 1987년 작 ‘Victor 25448’
장미셸 바스키아의 1987년 작 ‘Victor 25448’
올해 놓치지 말아야 할 ‘고퀄리티 전시’를 챙겨볼 마지막 기회를 잡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웨민쥔, 한 시대를 웃다’ 전에서는 중국 현대미술의 정수를 느낄 수 있다. 웨민쥔은 장샤오강, 왕광이, 팡리쥔과 함께 중국 현대미술 ‘4대 천왕’으로 꼽힌다. 입을 크게 벌리고 하얀 이를 드러내며 포복절도하는 인물 캐릭터는 그의 대표작이다. 이 같은 파안대소는 사회주의체제에서 문화대혁명과 톈안먼사태 등을 겪은 작가가 품고 있는 ‘냉소적 사실주의’와 정치적 팝을 대변한다. 예술의전당은 설 연휴 내내 개관해 관객을 맞는다.

잠실 롯데월드타워에서 열리고 있는 ‘검은 피카소’ 장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대규모 회고전도 놓칠 수 없는 전시다. 전시는 원래 지난 7일까지였으나 오는 20일까지로 기간을 연장했다. 바스키아는 1980년대 미국 뉴욕 거리를 캔버스 삼아 낙서 같은 화풍을 만들어 작품으로 승화시킨 작가다. 2017년 미국 소더비 경매에서 1982년작 ‘무제’가 1억1050만달러(약 1245억원)에 낙찰되면서 미국 작가 경매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바스키아의 대작 회화를 비롯해 조각, 드로잉 등 150여 점의 원화를 만날 수 있다. 미술계에서 “국내에서 바스키아 작품을 한자리에서 이처럼 다양하게 보는 것은 향후 10년간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전시에서는 바스키아의 인터뷰와 아카이브 영상을 담은 다큐멘터리 ‘장미셸 바스키아: 더 레이디언트 차일드’(2010)도 볼 수 있다. 11, 12일은 휴관한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