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대관령겨울음악제 리뷰
노부스 콰르텟이 선사한 실내악의 진귀한 보석들
올해로 여섯 번째를 맞은 겨울 평창 대관령 국제 음악제는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기존보다 절반 이상 규모가 줄어든 3회 공연으로 열렸다.

비록 조촐한 느낌이지만 의미가 있었다.

해외 연주자들을 초빙하지 못했으나 공연의 수준은 전혀 떨어지지 않았고, 지역성을 살렸으며 그간 접하기 어려웠던 다채로운 프로그램들도 인상적이었다.

첫날인 5일에는 헨델의 '9개의 독일 아리아'와 하이든의 피아노 삼중주로 바로크 성악과 고전의 기악이라는 조합을 선보였다.

작품성에 비해 실연 기회가 드물었던 터라 국내 팬들에게 소중한 기회였다.

6일에는 노부스 콰르텟이 실내악의 왕이라 할 수 있는 현악 사중주의 향연을 펼쳤다.

전날과 달리 이날 프로그램은 무르익은 낭만주의 음악이 편성됐는데, 특히 벨기에의 르쾨, 체코의 야나체크, 그리고 독일의 브람스로 이어지는 현악 사중주 작품은 더러 생소했을지는 몰라도 낭만주의 이후의 현악 사중주 지형도를 잘 들려줄 수 있는 탁월한 선곡이었다.

프랑크, 댕디로 대표되는 벨기에 악파의 촉망 받는 신예로서 불과 24세에 요절한 르쾨는 현악 사중주를 위한 '명상'에서 경건하고도 신비로운 음조를 들려준다.

본래 계획 중이었던 현악 사중주의 2악장으로 작곡했지만,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단악장 곡으로 남겨졌다.

독일-오스트리아 전통의 악구의 치밀한 조직과 발전과는 다른 감각성과 색채가 인상적이다.

코랄 풍의 선율 아래 흐르는 비가적인 율격, 잦은 반음계적 진행, 미해결 화성으로 인한 긴장감, 순환 형식적인 통일성 등 노부스 사중주단은 곡의 특징을 잘 포착해 풍성한 화성 안에서의 정중동을 잘 살려냈다.

레오시 야나체크의 현악 사중주 1번 '크로이처 소나타'는 베토벤의 동명 바이올린 소나타에서 직접 영향을 받은 작품은 아니다.

오히려 베토벤의 소나타를 작중 재료로 삼아 쓴 톨스토이의 소설에 영감을 받아 나온 곡이다.

야냐체크는 작품에 대해 고통으로 절규하는 소설의 주인공 여인을 생각했었노라고 말했다.

전곡에 걸쳐 '콘 모토' 곧 '움직임을 가지고'라는 지시어가 붙어 있는 이 사중주는 남편에게 불륜을 의심받고 폭행당해 죽고 마는 한 여인의 갈등, 곧 자유에 대한 갈망과 위협에 대한 두려움, 억누를 수 없는 열정을 그리는 것 같다.

전곡에 걸쳐 때로는 낭만적이고 때로는 민속적인 선율은 고통스러운 악상과 겹쳐지거나 가려지면서 분열적인 양상을 드러낸다.

낭만성과 고통이 한데 엮인 이 작품을 노부스 사중주단은 탁월하게 연주했다.

특히 격렬한 트레몰로나 으스스한 목소리의 플라지올렛, 피치카토 등 다채로운 주법의 표현 효과가 선명하고 선율과 표현적인 수식의 대비 또한 훌륭하여 곡의 극적이고 심리적인 요소가 잘 전달됐다.

공연의 마지막은 브람스의 두 번째 현악 사중주로 장식됐다.

영성을 앞세우는 르쾨, 드라마틱한 표현의 야나체크와 달리 브람스는 구조적이고 탄탄한 형식미의 작품을 선보인다.

단정하고 정밀한 악구, 장조와 단조를 넘나드는 긴장감, 촘촘한 전개 등 브람스는 고전적 현악 사중주의 어법을 충실하게, 그러나 보다 낭만적으로 선보인다.

브람스 절친 바이올리니스트인 요아힘의 모토 '자유롭지만 고독하다(Frei aber einsam)'의 머리글자 F-A-E를 주제로 삼은 1악장은 브람스다운 동기의 정밀한 활용이 인상적이다.

바이올린과 첼로가 서로 선율을 주고받는 세도막 형식의 2악장, 고상한 춤곡에 활달한 트리오가 대조를 이루는 3악장, 헝가리 무곡인 차르다시가 활용된 민속적이고 기운찬 피날레 악장이 브람스 실내악의 전형적인 매력을 빠짐없이 전해준다.

노부스 사중주단은 한국 실내악의 대표 악단이자 미래가 더욱 기대되는 젊은 악단답게 탁월한 연주를 들려줬다.

특별히 이날 공연된 세 개의 서로 다른 개성의 작품을 그때마다 다른 색깔로 빚어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다만 노부스 사중주단의 해석은 야나체크와 같이 더 표현적인 작품에서 더욱 많이 빛을 발하고 브람스처럼 구조적인 작품에서는 긴장감이 반감되는 면이 있었다.

세부와 흐름에 강점이 있고 형식적 엄밀성에서는 더 발전의 여지가 있다.

관객들 입장에서는 이번 공연이 현악 사중주가 들려줄 수 있는 갖가지 음향과 여러 상반된 전통을 한자리에서 들을 기회였을 것이다.

다소 생소한 곡목과 어법에 이해가 쉽지 않다는 반응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처음에는 낯설더라도 새롭고 의미 있는 작품을 지속해서 선보이는 것이야말로 음악제가 지향해야 할 목표다.

호응을 쉽게 얻어낼 수 있는 작품을 '안전하게' 선택하기보다 장르의 다양성, 작품의 다양성을 늘려가되 더욱 친절하고 정확한 설명으로 소통하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대관령 겨울 국제 음악제의 행보는 응원과 격려를 받기에 충분하다.

손열음 음악감독은 이번 음악제 모토로 '기다림 속의 위로'를 언급했다.

이 기다림이라는 말속에는 코로나19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 우리 공연 문화와 애호의 저변이 더 건강해지기를 기다린다는 뜻도 분명 들어 있을 것이다.

노부스 콰르텟이 선사한 실내악의 진귀한 보석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