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겨울이 지나간 세계'

"당신은 참 열심히 살았어요.

"
아사다 지로의 신작 장편소설 '겨울이 지나간 세계'에서 정체불명의 여인이 주인공 다케와키 마사카즈에게 건넨 말이다.

대기업 계열사 임원까지 지내고 예순다섯 살의 나이로 퇴임하는 다케와키는 직원들과 송별회를 끝내고 귀가하던 지하철에서 뇌출혈로 쓰러진다.

의식을 잃고 집중치료실에 누워있던 그가 문득 포근하고 행복한 느낌에 눈을 뜨면서 이상하지만 기분 좋은 일들이 잇달아 일어난다.

신비한 여인 '마담 네즈'를 시작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병실에 있는 그를 방문해 '다른 차원의 세계'로 데리고 간다.

이들은 평생을 고생만 하며 위로받을 기회조차 얻지 못한 다케와키를 감싸고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위무한다.

마담 네즈는 그를 도쿄의 밤 풍경이 보이는 멋진 레스토랑에서 고급스러운 만찬을 베풀고, 하얀색 드레스를 입은 여인은 그를 한 여름 바닷가로 데려가 산책을 함께 한다.

다케와키는 일순 과거로 돌아가 젊은 육체를 얻기도 한다.

병실에서 옆 침대에 누운 환자 '가짱'과는 목욕탕을 함께 갔다가 포장마차에서 따뜻한 정종을 나눈다.

아사다 지로가 '열심히 산 당신'에게 건네는 위로
다케와키가 이들과 나누는 대화를 통해 '성공한 엘리트'로만 보였던 그의 불행하고 곡절 많은 개인사가 드러난다.

그는 전후 폐허였던 1951년에 태어나 부모에게서 버려졌고 겨우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한 뒤에는 평생 변변한 취미조차 갖지 못한 채 일만 하고 살았다.

시계추처럼 직장과 집을 왔다 갔다 한 세월만 44년이다.

소설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 성격도 띤다.

아사다 역시 1951년에 태어나 유년기와 청년기를 고도 성장기에 보냈고,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고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눈칫밥을 얻고 자랐다.

그가 고생 끝에 소설가로 데뷔한 것은 마흔 살이 다 돼서였다.

퇴임을 기념하는 자리를 마치고 쓰러진 주인공 다케와키를 찾아온 사람들은 하나같이 "열심히 살았다', "훌륭히 살았다" 등의 말로 그의 치열했던 삶을 칭송한다.

이런 말들은 유년기부터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야만 했던 작가가 자신을 향해 건네고 싶었던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이 소설은 지난 2016년부터 1년간 마이니치 신문에 연재되는 동안 '아사다 문학의 결정판'이라는 호평을 받으며 인기를 끌었다.

전문 번역가 이선희의 번역으로 부키 출판사에서 펴냈다.

아사다는 1995년 '지하철'로 요시카와 에이지 문학상 신인상을 받으며 이름을 알렸고, 1997년 나오키상을 받은 '철도원'으로 입지를 굳혔다.

소설집 '철도원'에 실린 단편 '러브레터'는 2001년 우리나라에서 '파이란'이란 제목으로 영화화됐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