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의 고뇌와 역사의 숨결이 느껴지는 아산 곡교천변길
[걷고 싶은 길] 이순신 발자취를 따라 걷는 백의종군길

이순신 장군이 백의종군 명을 받고 남쪽으로 내려가던 중 보름 동안 충남 아산에 머물며 지나던 길. 그의 고뇌를 통해 역사의 숨결을 느껴보자.
이순신 백의종군길은 아산시를 관통하는 곡교천을 따라 나 있다.

아산의 역사, 문화,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아산 둘레길 중 하나다.

신축년 벽두 곡교천은 깊은 겨울의 상념에 잠긴 듯 적막했다.

사람의 자취는 드물었고 천의 주인은 청둥오리, 기러기, 왜가리 등 철새들이었다.

천변에는 억새밭이 끝없이 이어져 있었다.

'도심 속 자연'이란 이런 곳을 두고 하는 말 같았다.

곡교천 둔치와 억새밭에는 며칠 전 내린 눈이 채 녹지 않아 곳곳에 하얗게 쌓여 있었다.

백의종군길은 곡교천의 아름다운 정취를 즐기고 이순신의 구국정신, 고뇌와 눈물을 되새겨볼 수 있는 길이다.

한국인이 선조 중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세종대왕과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설문조사 결과를 떠올려 본다.

새해에는 충무공의 발자취를 좇으며 상상의 지평을 역사로 넓혀 보는 것은 어떨까.

1597년 1월 14일 일본의 재침으로 정유재란이 시작된 뒤 이순신은 선조의 출정 명령을 어겼다는 이유로 삼도수군통제사에서 파직되고 도원수 권율의 막하에서 백의종군하라는 명을 받는다.

이순신이 1597년 4월 1일 현재의 종각 부근인 의금부에서 출발해 아산에 들렀다가 전북 남원, 전남 구례 등을 거쳐 경남 합천의 도원수 진에 이르기까지 걸었던 길인 640여㎞를 '이순신 백의종군길'이라고 한다.

이 길은 현재 옛 모습을 간직한 곳이 별로 없지만, 지방자치단체들을 중심으로 복원 사업이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아산은 서울에서 태어난 이순신의 성장지이다.

본가가 있었고, 그가 묻힌 곳이다.

이순신은 백의종군하던 중 4월 5일 아산에 도착해 같은 달 19일까지 아산에 머물렀다.

이 기간에 그는 어머니의 죽음을 맞는 비통을 겪어야 했다.

아산시는 이순신이 14박 15일 동안 아산에 머물며 걸었던 경로를 3개 구간으로 나눠 복원 중이다.

3개 구간 중 제2구간인 '효의 길'(게바위길)은 지난해 11월 조성이 완료됐다.

1구간과 3구간은 올해부터 내년까지 조성될 예정이다.

[걷고 싶은 길] 이순신 발자취를 따라 걷는 백의종군길

'효의 길'은 현충사에서 시작해 은행나무광장∼아산대교∼그린타워 전망대∼중방포 전망대∼강청교 쉼터를 거쳐 게바위 쉼터에 이른다.

이 장군이 실제로 걸었던 백의종군길은 지금의 624번 지방도로와 비슷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산시가 조성한 백의종군길 2구간은 이순신이 본가에서 게바위 나루터로 갔을 것으로 추정되는 옛길 중 차도를 피하고, 걷기 좋은 대체로를 찾아 연결한 길이다.

2구간의 거리는 15㎞나 된다.

강바람이 찬 겨울에 걷기에는 벅찬 거리다.

한 번에 다 걷지 않고 나눠 걷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구간을 골라 탐방할 수 있다.

현충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게바위 쉼터까지 갔다면 근처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현충사 주차장으로 돌아올 수 있다.

2구간의 일부만 걷는다면 구간 중간중간에 만들어져 있는 주차장을 이용하면 편리할 것 같다.

우리는 현충사에서 시작해 중방포 전망대까지 약 8.7㎞를 걸었다.

곡교천 둔치에 난 길과 둑길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번갈아 걸었다.

둑길에서는 곡교천에 내려앉은 철새들을 감상하고, 둔치 길에서는 바스러질 듯하면서도 삭풍을 견디고 있는 억새들을 한껏 즐겼다.

걷는 데는 3시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걷고 싶은 길] 이순신 발자취를 따라 걷는 백의종군길

현충사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나라 사랑 정신을 널리 알리고 되새기기 위해 지어진 사당이다.

이순신이 순국한 지 108년이 지난 숙종 32년(1706년), 그가 성장해 무과급제할 때까지 살던 이곳에 사당이 세워졌고, 1707년 숙종이 친히 현충사란 휘호를 내렸다.

현충사는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방화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과 자료실이 있다.

백의종군길을 짚어 가고자 한다면 세계 해전사에서 보기 드문 '전승무패'의 유적과 자료를 간직한 현충사를 둘러보는 것이 나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충무공 묘소는 현충사에 있지 않다.

현충사에서 북쪽으로 9㎞가량 떨어진 아산시 음봉면에 자리하고 있다.

묘소 전역이 덕수 이씨 충무공파 종중 땅이다.

묘역 관리는 충무공파 종손의 동의를 얻어 현충사 관리소가 하고 있다.

현충사는 백의종군길뿐 아니라 현충사 둘레길, 물안·꾀꼴산성 둘레길 등 아산둘레길의 또 다른 2개 코스 시작점이기도 하다.

약 5㎞인 현충사 둘레길은 방화산 숲길로 연결되며, 난이도 초급의 걷기 편한 길이다.

현충사 둘레길에서 만날 수 있는 소나무 숲길은 일품이다.

현충사에서 은행나무광장까지는 약 1.8㎞다.

주로 마을 안을 통과하는 길인데 마을 옆 논은 작은 평야라고 할 만큼 드넓었다.

현충사에서 게바위까지 걸을 때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광활한 농토는 아산의 풍요로움을, 곡교천 너머 왼쪽으로 보이는 신축 아파트들은 아산시의 빠른 성장세를 상징하는 듯했다.

[걷고 싶은 길] 이순신 발자취를 따라 걷는 백의종군길

아산시는 1995년 아산군과 온양시가 통합해 출범했다.

인구가 약 31만 명으로 천안시 다음으로 많고, 충남 제2의 도시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삼성디스플레이 등 굴지의 대기업들이 들어서고 아산신도시가 건설되면서 인구와 소득이 함께 늘어나고 있다.

은행나무광장은 아산이 자랑하는 '명작' 은행나무길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서 있는 이 길은 충무교에서 현충사 입구까지 2.1km 거리로 곡교천을 따라 나 있다.

1966년 현충사 성역화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되기 시작했으며 1973년 10여 년생 은행나무를 심은 것이 지금은 아름드리 은행나무길이 됐다.

수령 50년이 넘은 은행나무 가로수들은 봄에는 어여쁜 신록으로, 여름에는 울창함으로, 가을에는 황금빛으로 눈을 황홀하게 한다.

잎을 다 떨군 겨울에는 꾸밈없는 굳건함이 장엄하다.

이 길은 산림청, 국토교통부 등에 의해 아름다운 거리 숲, 한국의 아름다운 길 등으로 선정됐다.

억새밭은 시민들의 걷는 즐거움을 더하기 위해 아산시가 공들여 가꾼 곳이 적지 않다.

은행나무길이 끝날 때쯤 본격적으로 억새밭이 펼쳐졌다.

둔치에는 억새밭 사이로 걷는 길과 자전거길이 따로 조성돼 있었다.

한겨울 찬 바람을 막기 위해 얼굴을 온통 가린 자전거 라이더들이 억새밭 사이에서 불쑥 나타났다간 쏜살같이 사라지곤 했다.

[걷고 싶은 길] 이순신 발자취를 따라 걷는 백의종군길

아산대교와 그린타워 전망데크를 지나면서 곡교천과 억새밭이 어우러진 풍경은 큰 변화 없이 계속된다.

그린타워는 쓰레기 소각장 굴뚝을 활용한 전망대다.

주변에는 생태곤충원, 장영실과학관, 배미 수영장, 풋살경기장 등 아산환경과학공원이 조성돼 있다.

소각장은 건설 사업 초기 주민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으나 민·관의 원만한 소통과 협의로 사업이 성공한 사례다.

중방포 전망대에서 여정을 마친 뒤 백의종군길 2구간의 종점인 게바위 쉼터는 차를 타고 방문했다.

형상이 게를 닮은 이 바위는 이순신이 어머니의 주검을 맞은 통한의 장소다.

백의종군하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82세의 노구로 여수에서 배를 타고 오던 충무공의 모친 변(卞)씨 부인은 도중에 숨을 거두고 만다.

[걷고 싶은 길] 이순신 발자취를 따라 걷는 백의종군길

어머니의 싸늘한 시신을 안고 통곡했던 이 장군은 게바위 나루에서 사흘간 머물며 시신을 입관한 뒤 7∼8㎞ 거리의 곡교천 상류인 중방포까지 배로 운구하고, 중방포에서 다시 육로로 본가까지 운구했다.

이순신은 난중일기 1597년 4월 16일 자에 "가슴이 찢어지게 비통하니 어찌 다 말할 수 있으랴. 집에 도착하니 비는 거세지고 나는 몹시 지친데다 남쪽으로 갈 일이 또한 급박하니 울부짖으며 곡을 하였다.

오직 어서 죽기만을 기다릴 뿐이다"라고 적었다.

큰 슬픔에 빠졌던 이때가 이순신이 아산에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기간이었다.

상을 제대로 치르지도 못한 채 다시 전쟁터로 나간 이순신은 삼도수군통제사로 복직한 뒤 명량대첩 등 여러 해전에서 승리를 거둔다.

1598년(선조 31년) 12월 6일 노량해전에서 적의 총탄에 쓰러지면서도 왜군을 크게 이겨 전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1년 2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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