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선우예권 독주회, 끝없는 변주로 보여준 20대의 혈기
피아니스트 선우예권(31·사진)이 묵혀온 혈기를 무대에서 풀어냈다. 지난 26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독주회에서다. 선우예권은 지난해 11월 발매한 음반 ‘모차르트’를 기념해 독주회를 열었다. 음반 발매 당시 그는 “굉장히 우울한 날들을 보냈다”고 했다. 지난해 내내 무대에 한 번도 오르지 못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날 그는 오랜만에 공연에 나섰지만 긴장한 모습은 없었다. 1부에서는 모차르트의 단조 레퍼토리만 골라서 연주했다. ‘환상곡 d단조’ ‘환상곡 c단조’ ‘피아노 소나타 8번’ ‘론도 k단조’를 들려줬다. 그는 연신 페달을 밟으며 울림을 줄였다. 한 음씩 또렷하게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단조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 속에서 서정적인 선율이 흘렀다. 류태형 음악평론가는 “절제력이 돋보였다”며 “모차르트 단조곡들을 통해 비극 속에서 느끼는 슬픔을 맑게 투사했다”고 평했다.

2부에 들어서자 광기 서린 연주를 선보였다. 프레드릭 쇼팽의 ‘녹턴 15번’ ‘환상곡 f단조’ ‘뱃노래’ 등이 이어졌다. 선우예권은 끝없는 변주를 통해 긴장감을 조성했다. 마지막 무대에 들어서자 공연은 절정을 향했다. 쇼팽이 작곡한 모차르트 오페라 돈 조반니의 ‘서로 손을 잡고 가요’ 변주곡을 연주할 때였다. 이 곡은 통상 피아니스트들이 오케스트라와 협연한다. 극 중 돈 조반니(바리톤)와 체를리나(소프라노)의 이중창을 피아노 한 대로는 풀어내기 어려워서다.

선우예권은 신기에 가까운 연주를 보여줬다. 왼손과 오른손이 다른 박자를 타는 동시에 여린음과 센음을 교차해서 들려줬다. 두 발은 연신 페달을 밟으며 울림을 조절했다. 류 평론가는 “2부에서도 선우예권은 차분하게 작품 구조를 온전히 보여줬다”며 “기교를 뽐낼 때도 선율끼리 마찰하지 않고 깔끔한 연주를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공연 갈증이 덜 풀려서였을까. 그는 앙코르로만 네 곡을 선사했다. 아르카디 볼로도스가 편곡한 모차르트의 ‘터키행진곡’과 ‘피아노 소나타 16번’ 중 1악장, 쇼팽의 ‘녹턴 20번’, 모차르트의 ‘글라스하모니카를 위한 아다지오’를 연달아 연주했다. 150분 가까이 이어진 공연에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선우예권의 독주회는 오는 30일 한 차례 더 열린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