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앱은 시장에 등장하자마자 다른 경쟁 제품을 몰아내고 시장을 완전히 재편할 정도로 인기를 누리며 투자비용의 수십 배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말한다. 현대 기술을 나타내는 세 가지 언어인 빅데이터, 인공지능(AI), 클라우드를 활용한 킬러앱 산업이 어떤 형식으로 등장할지 전망한다. (쌤앤파커스, 336쪽, 1만7000원)
지난해 9월 냉장 상태로 운송돼야 할 독감 백신이 상온에 노출돼 큰 논란을 빚었다. 올해 국내에 도입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가운데 화이자 백신은 영하 70도의 냉동 상태로 유통돼야 한다. 이 때문에 콜드체인(저온유통체계)에 대한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콜드체인이 원활히 가동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이를 담을 냉동 설비다. 《필요의 탄생》은 영국 런던과학박물관 큐레이터인 헬렌 피빗이 냉장고의 역사를 통해 식생활과 유통구조 등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생생히 묘사한 책이다.지금은 냉장고가 없는 집을 찾아보기 힘들다. 하지만 냉장고가 보편화된 건 반세기밖에 되지 않았다. 저자는 “먼 옛날부터 얼음과 냉기는 특별한 요리와 음료를 만드는 첨가제이자 음식을 장기간 보존하는 수단으로 귀하게 여겼지만 냉장·냉동 기술에 관한 현실적인 욕구는 최근까지도 매우 낮았다”고 말한다. 식품을 오래 보관할 때 발효와 건조 방식이 선호됐고, 얼음의 필요성을 별로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냉장 기술이 처음 등장한 건 19세기 유럽이었다. 유럽에선 상류층을 중심으로 얼음 수요가 늘어났고, 냉장고 시장도 점차 커졌다. 1960년대 미국에선 가정용 냉장고가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저자는 냉장·냉동 기술을 “문명이 낳은 인위적인 욕망”이라고 표현한다. 또 냉장고의 대중화에 대해 “몇 세대 전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지만 이젠 우리 일상의 필수품이 돼버린 물건들을 만들기 위해 별난 사업과 직업이 수없이 탄생했다”고 설명한다.냉장고는 식품 무역 시스템을 통째로 바꿨다. 저온 유통이 활성화되면서 예전에는 비싸서 먹을 엄두도 내지 못하던 음식과 제철에만 겨우 맛보던 먹거리를 계절과 지역에 상관없이 즐기게 됐다. 현지 생산자는 저온유통 체계로 시장 가격 지배력을 적잖게 잃었다. 값싼 수입 식품 때문에 생산물 판매가를 대폭 낮춰야 했기 때문이다. 반면 다른 나라 농부들은 머나먼 땅에 새롭게 진입할 시장이 생겼다.식탁 위 음식 모습도 달라졌다. 열대 과일인 바나나와 망고를 어디서든 먹을 수 있고, 노르웨이에서 잡힌 고등어를 싼값에 구할 수 있다. 냉장고 제조사들은 20세기 중반부터 판매 촉진을 위해 차가운 음식 제조법을 담은 요리책을 함께 배포했다. 냉장고가 사회의 주류 소비재가 됐다는 신호였다. 저자는 “이 문명의 이기 덕분에 인간은 제철 여부와 상관없이 수많은 농수산물을 맛보고 이용하는 사상 초유의 능력을 손에 넣었다”고 설명한다. 2012년 영국왕립학회가 “식품학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은 냉장 기술”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맥락이다. 냉장 기술이 현대 사회의 식량 공급과 식량 안보, 식품 안전에 필수라는 이유다.냉장고가 제조업 식품산업 의료산업 등에서 얼마나 다양하게 쓰이는지도 소개한다. 냉장고는 양조 작업과 플라스틱 생산, 식품 가공 등 여러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기기다. 극저온에서 세포조직 샘플을 냉동하거나 페니실린과 같은 주요 의약품의 개발, 더운 기후에서 변질되기 쉬운 백신의 안전한 보관을 가능하게 한 것도 냉장고다. 우주선과 탄약 공장, 댐 건설 현장, 대규모 과학 실험 등에서도 냉장고의 힘은 막강하다. 냉각기술 덕분에 열처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책 후반부에선 미래형 냉장고를 전망한다. 인터넷이 연결된 스마트 냉장고, 환경 보호와 에너지 효율 제고를 동시에 이루는 냉장고 등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냉장고는 여태 그래왔듯이 우리와 줄곧 함께하며 말뜻 그대로 ‘쿨한 미래’를 열어갈 것이다.”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오늘도 하얗게 불태웠어.”매일 밤 퇴근 후 가방을 침대에 던지며 혼잣말로 되뇐다. 온몸을 불사르는 정신으로 일했다. 다음날을 위한 연료와 땔감을 채워야 한다. 그런데 어느 순간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이다. 번아웃이라는 용어는 1974년 미국 심리학자 허버트 프로이덴버거가 처음 사용했다. 당시만 해도 대중화한 단어는 아니었지만, 이젠 생활에서 흔하게 쓰이는 말이다. 그만큼 사람들이 몸과 마음 모두 극심한 만성피로에 시달린다는 방증일 것이다.삶의 에너지와 에너지원이 모두 고갈돼 번아웃에 시달리는 사람을 위로하는 신간 3권이 나왔다. 《내가 뭘 했다고 번아웃일까요》(창비)는 정신건강 전문의인 안주연 작가가 의료 현장에서 경험한 수많은 사례를 바탕으로 번아웃에 다각도로 접근한 책이다. ‘겨우 이런 일로 힘들어해도 될까’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피로의 자격이나 기준은 없음을 강조하며, 자신의 상태를 솔직하게 들여다보기를 권한다. 저자는 휴식을 방해하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직장 문화를 날카롭게 비판한다. “우리는 이미 온 힘을 다 쓰고 완전히 지쳐버린 상태인데도 휴식과 재충전에 시간을 쏟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지적한다. 퇴근 후에도 온전히 쉬지 못하고 머릿속으로 업무를 계속 생각하거나, 자기계발을 위해 공부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고, 대인관계에 지나치게 감정적 에너지를 쏟다 보면 결국 완전히 탈진해 우리 몸이 이상 신호를 보낼 수 있다고 경고한다.《나를 돌보는 법을 잊어버린 나에게》(나무와열매)는 간호사로 일한 장재희 작가의 번아웃 극복기다. 저자는 주위 사람들을 돌보느라 자신의 정신적, 육체적 상태에 대해선 무관심하게 일상을 보내다가 번아웃을 겪었다. 번아웃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으로 여행을 택했다. 저자는 “자연과 소통하는 시간이 많아지자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이 줄어들었고, 컨디션이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다”며 “자연에 감정을 흘려보낼수록 가벼워졌고, 자연에서 치유를 받을수록 조금씩 생기를 찾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는 “단 한 사람이라도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이 있다면, 나의 삶을 통해 아픔에서 자유로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며 번아웃을 함께 이겨나가자고 강조한다.《우린, 조금 지쳤다》(포르체)는 정신건강 전문의인 박종석 작가가 번아웃 증상과 치료법을 설명한 책이다. 삼성전자 부속의원 정신과 전문의로 일했던 저자는 번아웃을 호소하는 도심의 많은 현대인을 만났고 상담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무것도 되지 않을 자유를 누릴 때 우리는 다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그는 말한다. 그에 따르면 번아웃은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에게 특히 잘 찾아오는 증상이다. 그러니 번아웃에 대한 복잡한 생각이나 되새김질로 시간을 채우지 말아야 한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스트레스를 견뎌낼 회복력을 높이고, 일과 삶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고 그는 조언한다. “상사의 막말, 고객의 갑질 등 외부적 스트레스는 아무리 노력해도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며 유일하게 통제할 수 있는 변수인 ‘나’에게 집중하고, 자신만의 방어기제를 만들라고 조언한다.mia@hankyung.com
한 집 걸러 한 집꼴로 마약을 재배한다. 몸이 불편하면 마약을 일상적으로 복용한다. 누구도 마약을 사용하는 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정부는 알면서도 묵인한다. 범죄가 만연한 어느 후진국 얘기가 아니다. 조선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전근대 사회가 그랬다.《마약의 사회사》는 마약의 정의가 한국 사회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달라져왔는지 추적한 책이다. 저자는 근현대 한국의 마약 문제를 연구해온 조석연 신한대 교수. 그는 “마약은 의학 용어가 아니라 법률 용어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어디까지가 ‘잘 듣는 진통제’이고 어디서부터 마약인지가 국가와 사회의 필요에 따라 정해진다는 뜻이다.저자는 정부 발표 자료와 신문 등 다양한 사료를 근거로 마약문제의 변화상을 재구성한다. 조선시대에는 양귀비를 원료로 하는 아편이 가정상비약이었다. 약을 구하기 어려웠던 시절, 아편은 탁월한 진통·해열제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다. 약의 재배 및 이용은 민간의 자연스러운 권리였다. 하지만 청나라에서 아편 중독 문제가 심각해지자 조선 정부는 아편 사용을 처음으로 금지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조선이 일본의 아편 공급지가 되면서 수많은 아편 중독자가 생겨났다.1961년 5·16 군사정변 이후 박정희 당시 대통령은 마약을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강력하게 단속했다. 하지만 농어촌과 광산 등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약 기운을 빌리는 경우가 여전했다. 1965년에는 제약사들이 판매한 해열제와 비타민제에 합성 마약인 메사돈이 포함돼 있고, 일부 정치인이 이를 묵인했다는 사실이 밝혀져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1970년대에는 대마초, 1980년대에는 필로폰이 주 단속 대상이 되는 등 시대와 사회 환경에 따라 마약에 대한 인식과 통제는 계속 달라졌다.저자는 마약의 정의가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에 따라 결정돼 왔다고 거듭 강조한다.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대마초 합법화를 공약한 조 바이든이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의료용 대마초 재배 회사 등에 투자하는 ‘대마초 상장지수펀드(ETF)’ 수익률이 급등하고 있는 기현상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