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망 전 어린이집 CCTV에 포착된 정인이 모습. 고개를 돌려 문쪽을 바라볼 뿐 움직임이 전혀 없는 모습이다.
사망 전 어린이집 CCTV에 포착된 정인이 모습. 고개를 돌려 문쪽을 바라볼 뿐 움직임이 전혀 없는 모습이다.
아이 목욕시키면서도 정인이는 어땠을까,
이유식을 먹이다가도 정인이 입은 아팠을 텐데,
아기와 잠을 자면서도 정인이 밤에 이불은 덮어줬을까 생각합니다.
아이와 놀아줄 때도 잠을 자는 아이 얼굴을 봐도 정인이 생각에 눈물이 납니다.
남편은 왜 실제 본 적도 없는 아이 때문에 그러냐며 기사를 그만 보라는데
틈만 나면 찾아보게 되고 그러면 또 마음이 아파서 생활하기가 힘듭니다.


양부모의 학대 끝에 16개월 짧은 생을 마감한 정인이의 마지막 모습이 국민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다. '그것이 알고 싶다'를 통해 정인이의 생전 마지막 모습이 공개된 후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갖게 됐고 정치권에서는 부랴부랴 아동학대를 금지하고 입양법에 대해 손을 본다고 난리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정인이 사건에 대한 분이 가라앉는 것은 아니다. 전문가들은 관련 법안이 미흡해서 정인이는 죽은 것만은 아니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미 3차례나 아동학대가 의심된다고 경찰에 신고가 접수됐음에도 불구하고 번번이 집으로 돌려보내진 정인이가 아니던가.

김예원 변호사는 "여론 잠재우기식 무더기 입법해서 현장 혼란만 극심하게 하지 말고 아동 최우선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변호사는 학대아동을 즉시 분리시킨다는 법안에 대해 "즉시 분리 매뉴얼은 이미 있다"면서 "고위험 가정, 영유아, 신체 상처, 의사 신고사건 다 즉시 분리 이미 하도록 돼 있는데 매뉴얼이 잘 작동되는 현장을 만들어야지 즉시분리를 기본으로 바꾸면 갈데없는 아이들 어디 보내려고 그러느냐"고 지적했다.
"하루종일 정인이 생각, 눈물만 흘러" 대리외상증후군 확산
위탁모가 돌보던 시절 티 없이 밝고 순수한 얼굴에서 점점 까맣고 웃음기 사라져가던 정인이의 얼굴을 떠올리며 무력감을 느끼는 이들이 늘고 있다.

맘카페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그것이 알고 싶다' 후폭풍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너무 화가 나고 마음이 아파서 하루에도 몇 번씩 눈물이 난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이들은 "아이 기저귀 갈아줄 때도, 밥 먹이거나 간식 줄 때, 놀아줄 때 씻길 때 내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에서 계속 정인이가 생각난다. 정인이는 어땠을까,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말도 못 하고 그 작은 몸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을 생각을 하면 가해자들을 죽여도 시원찮을 것 같다", "CCTV 속 정인이 꺼내와서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놀아주고 안아주고 싶다", "너무 가슴이 답답해서 기사를 안 보려고 해도 보게 되고 가슴이 미어질 것 같다", "생각하지 않으려도 해도 너무 몰입이 돼서 틈만 나면 정인이 기사 찾아보고 눈물짓는 게 일상이 됐다. 너무 가여워서 어떻게 하나"고 고통을 토로한다.

정인이의 사망 전날 CCTV 영상을 본 이들은 "아이 키워본 사람이라면 16개월 때 아이 상태가 어떤지 알 것이다. 1분도 안 쉬고 돌아다녀야 정상인데 마지막에 힘들어서 어린이집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정인이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고 화가 난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그 또래 아이가 그렇게 무기력하게 앉아있는 걸 본 적이 없다. CCTV 속 마지막 모습이 자꾸 떠올라 하루하루가 힘들다", "정인이가 다음 생이 있다면 제 딸로 태어나달라고 매일 기도하며 잠이 든다"고도 했다.

우울증을 토로하기도 한다. "저도 16개월 딸 키우는데 우울증이 뭔지 알 것 같다. 한참 일하다가도 정인이 CCTV 모습이 생각나서 화가 나고 우울하다. 눈물이 없는 편인데 자기 전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정인이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심장이 벌렁벌렁거리고 가슴이 조여온다. 그 예쁜 아기가 그렇게 학대를 받았다는 게 도저히 상상이 안되고 견딜 수가 없어서 하루 종일 기사 검색하고 맘카페 글 보다가 댓글 보고 또 주르륵 울고 내 아이 밥 먹는 모습 노는 모습 자는 모습 보는데도 눈물이 주르륵 흘러서 우울증인가 생각이 된다"고 호소했다.

이 같은 글들에 "저만 그런 줄 알았다. 남편은 정인이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해보라는데 진정서 밖에 없다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며칠 동안 울고 괴로워하니 남편은 얼굴도 직접 못 본 아이한테 너무 집착하는 거 아니냐고 걱정한다. 잊고 싶은데 잊히지 않는다. 힘들다면서 왜 계속 더 글을 보느냐고 이해를 못 한다"고 하소연했다.
 7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갖다 놓은 사진과 꽃 등이 놓여 있다.(사진=연합뉴스)
7일 오후 경기도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생후 16개월 만에 사망한 정인 양을 추모하며 시민들이 갖다 놓은 사진과 꽃 등이 놓여 있다.(사진=연합뉴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사회적 현상을 대리외상 증후군으로 진단한다.

사건·사고의 당사자가 아닌데도 간접 경험으로 인해 마치 자신에게 그 일이 일어난 것처럼 비탄에 빠지고 불안을 겪는 증상을 말한다.

사고 현장을 목격한 일반인이 간접 경험으로 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빠지는 현상으로, 간접 외상이라고도 불린다. 사고를 직접 겪지 않았음에도 언론매체를 통해 사고 장면을 보고, 비탄과 상실에 빠진 피해자들의 가족을 지켜보면서 자신 역시 심리적 외상을 겪는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계성 인천참사랑병원 원장은 "고통을 함께 느껴주는 것은 인간은 기본 감성이며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은 인간성의 근본이다"라며 "그런 면에서 정인이 양부모는 타인의 고통을 공감하지 못하는 또 다는 형태의 반사회성 인격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계성 원장은 "세월호 사건 때 기사와 동영상 글들을 아예 회피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았다"면서 "아이들이 느꼈을 고통을 상상하면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럽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이어 "현재 정인이 사건으로 고통을 느끼는 분들에게도 공감과 위로가 필요하다. 타인과의 정서적 교감을 통해 감정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행동이 필요하다"면서 "그렇지만 고통스러운 상상과 생각을 곱씹지 않은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힘든 일을 계속 되뇌는 행위는 정서적 고통을 필요 이상으로 더 느끼게 해준다"면서 "제일 좋은 팁은 생각이 들 때마다 다른 행동을 해서 주위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 스스로 노력하는 것이다"라고 조언했다.

아울러 "그런 노력들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고 증상이 지속된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