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렁길 따라 눈부신 파랑, 그 찬란한 위로…한려수도 끝자락 별처럼 떠있는 섬 욕지도
동트기 전 어둠이 가장 짙은 법인가 봅니다.
코로나19는 쉽사리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아직도 많은 사람이 확진되는 상황에서 여행을 권할 순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좋은 경치를 나누고 싶어 저 멀리 남도의 섬 통영 욕지도 풍경을 길어왔습니다.
한려수도의 보석 같은 섬 욕지도는 코로나 시기에도 눈부셨습니다.
조금만 더 인내하면 이 매혹적인 풍경을 같이 즐길 수 있을 겁니다.
욕지도의 겨울 풍경이 잠시나마 마음에 위안이 되면 좋겠습니다.

화엄경에서 이름 따온 아름다운 섬

욕지도는 경남 통영 삼덕항에서 뱃길 따라 50분 정도면 닿는다. 관광안내서에는 욕지(欲知)의 뜻을 ‘알고자 하는 열정이 가득한 섬’이라고 풀이해놨다. 무엇을 알고자 한 것일까? 욕지도는 통영시 욕지면에 딸린 연화도·두미도와 남해 세존도 등 다른 섬과 연계할 때 비로소 해석의 실마리가 풀린다.

욕지라는 말은 화엄경의 한 구절인 ‘욕지연화장 두미문어세존(欲知蓮花藏頭眉問於世尊)’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연화(극락)세계를 알고자 하는가? 그 처음과 끝을 부처님(세존)께 여쭤보라’는 뜻이다. 욕지도는 부처님이 알려준 연화세계, 즉 지상낙원처럼 아름답고 살기 좋은 섬’이란 뜻일 것이다.

욕지도는 생각보다 큰 섬이다. 섬을 일주하는 21㎞의 긴 해안도로가 있고 종주에 5~6시간 걸리는 산행 코스도 있다. 이제는 까마득한 이야기가 됐지만 일제 강점기 욕지도는 어업의 전진기지였다. 앞바다에 밤낮없이 배가 그득해 맞은편 부두까지 배를 밟고 건너갈 정도였다고 한다.

욕지도 선착장에서 오른쪽 해안길을 따라 돌면 보이는, ‘좌부랑개’라고 불렸던 자부 마을에는 파시가 성행한 흔적이 남아 있다. 통영시는 이곳에 특색을 살린 근대역사문화거리를 조성했다. 뱃사람들이 드나들던 무려 100여 곳의 술집부터 일본인 총책임자인 도미우라 저택과 일본인 판자촌, 욕지고등심상소학교, 이시모토상회, 고등어를 염장하던 고등어 간독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마을 뒤편에는 계단을 따라 포구의 풍경이 소담하게 펼쳐진다. 해안도로 곁에 봉긋 솟은 숲은 화가 이중섭이 통영에 머물던 시절 ‘욕지도 풍경’(1953)에 담아냈던 메밀잣밤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제343호)이다. 메밀잣밤나무 외에도 해송, 사스레피나무, 팔손이 등 사철 내내 푸른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비렁길 걸으며 바다에 취해보세요

비렁길 따라 눈부신 파랑, 그 찬란한 위로…한려수도 끝자락 별처럼 떠있는 섬 욕지도
다도해의 장관이 펼쳐진 바다를 보고 싶다면 천왕산 대기봉(355m)까지 올라가야 한다. 섬 속의 산이라지만 최소 30분 이상 걸리는 코스였는데 2019년 12월 모노레일이 개통되면서 가뿐하게 오를 수 있게 됐다. 하부 탑승장에서 천왕산 대기봉까지 편도 16분. 평균 2㎞의 속도로 느릿느릿 산을 오르지만 출발부터 가파른 경사로 몸이 한껏 뒤로 쏠린다. 산을 오를수록 사진으로만 보던 풍경들이 조금씩 펼쳐진다. 대기봉 전망대에 오르면 욕지도와 다도해의 온전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몇 번을 봐도 질리지 않는 매력적인 산수화다. 망대봉과 옥동 정상 사이로 연화도가 아스라이 보이고, 그 옆으로 희미하게 매물도가 보인다.

모노레일을 내려오면 이제부터 욕지도를 두 발로 느낄 차례다. 욕지도의 대표적 걷기 길인 비렁길은 욕지도 노적에서 혼곡 마을까지 이어진다. ‘비렁’은 벼랑의 경남 사투리. 욕지도 주민들이 예부터 이용해온 벼랑길을 다듬어 950여m의 아찔한 해안산책로로 정비했다. 발아래 바다를 두고 벼랑을 따라 걸으며 갯바위에 부딪치는 파도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비렁길을 따라 걷다 보면 출렁다리를 만나게 된다. 작은 바람에도 출렁이는 다리 아래로 휘몰아치는 파도가 절경을 이룬다. 수직 절벽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연결된 다리는 걸을 때마다 아찔하고 스릴 있다.

출렁다리를 지나 펠리컨 바위에 이르면 욕지도가 품은 절경에 감탄이 쏟아진다. 펠리컨 바위에서 해안가 숲길을 따라가면 10여 분 거리에 고래 강정이 있다. 이 구간은 아찔한 해안 절벽 위 데크길과 숲길이 이어져 비렁길의 묘미를 맛볼 수 있다. 고래 강정은 바다 쪽으로 난 좁은 골짜기가 끝이 아득할 정도로 깊게 파여 아래를 바라보면 어지럼증이 생길 정도다. 강정은 바위벼랑이란 뜻이다.

세 여인의 전설 깃든 삼여도

자동차를 배에 싣고 왔다면 해안도로는 반드시 일주할 것. 해안도로 코스에는 저마다 색다른 매력이 있지만 그중 개미허리처럼 잘록 들어간 도로를 경유해 섬 동쪽 망대봉을 끼고 북쪽 해변을 달리는 코스가 으뜸이다.

도로를 따라 조금만 가면 삼여전망대가 절벽 위에 서 있다. 삼여도는 욕지도의 대표적인 비경 중 하나다. 송곳처럼 수면을 뚫고 솟아오른 두 개의 바위가 작은 바위 하나를 감싸고 있는 모양이다. 명승지가 다 그렇듯 삼여도도 그럴싸한 전설을 품고 있다. 용왕에게 세 딸이 있었는데 모두 900년 된 이무기가 사람으로 변한 총각을 사모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용왕이 노해 세 딸을 돌로 변하게 했다. 힘이 장사인 이무기 총각은 자신의 여인을 돌로 변하게 한 용왕이 미워 서산을 밀어내고 두 개의 섬으로 바다를 막아버렸다. 세 여인의 전설이 있다 해서 삼여라 명명했다고 한다.

꼭 드세요

비렁길 따라 눈부신 파랑, 그 찬란한 위로…한려수도 끝자락 별처럼 떠있는 섬 욕지도
욕지도에 가면 고등어회(사진)를 먹어볼 것. 살아있는 고등어는 욕지의 특산물이다. 고등어는 성질이 급해 일반 수조에서 살지 못한다. 욕지에선 고등어 치어를 잡아 가두리양식장에서 1~2년간 성어로 키워 횟감으로 쓴다. 살이 단단하면서도 씹을수록 고소하다. 비린 맛이 전혀 없다. 욕지도 항구에 자리한 '해녀 김금단 포차'는 산지에서 싱싱하게 맛볼 수 있는 고등어회로 일찍이 이름났다.

꼭 타보세요

욕지도 선착장에는 해안 일주도로를 한 바퀴 도는 마을버스가 있다. 통영에서 오는 배 시간에 맞춰 하루 6회 운행한다. 삼여도를 비롯해 덕동해수욕장 동촌 부두까지 두루 감상할 수 있다. 이 모두를 둘러보는 데 필요한 건 단돈 1000원이다.

찾아가는 길

통영에서 연화·욕지도로 가는 배의 출발지는 두 곳이다. 통영여객선터미널과 삼덕항이다. 삼덕항을 이용하는 게 더 거리가 가깝고 비용도 싸다. 다만 운항 시간과 주차 사정이 달라 각자 상황에 맞게 선택하면 된다. 섬으로 떠나기 전에는 며칠 후 기상 예보까지 꼼꼼히 챙겨야 낭패를 면할 수 있다.

욕지도=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