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정이 치솟았다 이내 꺼진다. 날카로운 고음부터 중후한 저음까지 선율이 급변한다. 조지 거슈윈의 ‘랩소디 인 블루’에서 나오는 첫 마디다. 서두를 유려하게 독주로 풀어내는 주인공은 ‘클라리넷'이다. 재즈처럼 리듬을 타면서 클래식 곡처럼 진중한 소리를 낸다. 줄거리가 들어간 곡에서도 역할이 다채롭다. 브람스 교향곡 독주 부분에서는 깊은 음색을 내더니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선 사춘기 소년을 표현한다.

클라리네티스트 김한(25)이 클라리넷의 무궁무진한 매력을 선보이려 공연에 나선다. 올해 금호아트홀 상주음악가로 선정된 것이다. 금호아시아나문화재단이 2013년부터 20대 젊은 음악가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프로젝트다. 1년 동안 4~5회에 걸쳐 본인이 직접 공연을 기획해 선보인다. 김한은 오는 7일 신년음악회를 시작으로 올해 총 4회에 걸쳐 음악회를 연다.

지난 4일 열린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김한은 "어떨 때는 매끈한 신사처럼 보이지만, 고독과 우수를 보여주기도 하고 세련된 감각을 들려주는 악기다"라며 "미술로 치자면 '감정의 팔레트'가 넓다"고 클라리넷 매력을 설명했다.

클라리네티스트 김한은 어릴 때부터 촉망받는 연주자였다. 2007년 만 11세 나이로 금호영재콘서트에 데뷔한 후 2009년 베이징 국제음악콩쿠르 최고 유망주상을 수상했다. 2019년에는 독일 뮌헨 ARD 국제 음악 콩쿠르에서 준우승을 차지했다. 지금은 핀란드방송교향악단의 부수석으로 활동 중이다.
“재즈부터 클래식까지, 클라리넷 유연성 보여줄게요”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자신의 강점으로 김한은 '유연함'을 꼽았다.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실내악 곡, 독주곡까지 3가지 음악갈래를 수려하게 소화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한은 "연주 상황에 맞춰 어떻게 연주할 지, 낄때 끼고 빠질때 빠지는 '낄끼빠빠'를 잘한다는 칭찬을 들었다"며 "독주에선 제 정체성을 살리려 고민한다"고 이야기했다.

하나만 잘하기 어려운 음악계에서 3가지에 도전하는 것이다. 체력적으로도 버거운 일정을 강행하는 이유는 뭘까. 김한은 "독주를 할 때면 곡을 직접 분석하고 내 해석을 거침없이 표현하는 게 좋다"며 "실내악은 토론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창작하고, 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짜놓은 틀 안에서 톱니바퀴처럼 거대한 기계를 작동하는 게 매력이다"라고 했다.

공연 레퍼토리도 다채롭게 구성했다. 이달 7일 신년음악회에서는 현대 음악가들 작품을 선보인다. 2007년 금호아트홀 데뷔무대에서 연주했던 앙리 라보의 '솔로 드 콩쿠르'를 시작으로 스티브 라이히의 '뉴욕 카운터포인트', 지난해 작고한 크리슈토프 펜데레츠키의 '솔로 클라리넷을 위한 프렐류드' 등을 들려준다.

특별한 실험도 준비했다. 라이히의 곡을 연주하려 사전 녹음을 한 것이다. 김한은 "무대에선 같은 선율을 연주한 두 개의 카세트 테이프를 서로 다른 속도로 재생한다"며 "여기서 나오는 간극을 또다른 매력으로 풀어낼 예정이다"라고 강조했다.
“재즈부터 클래식까지, 클라리넷 유연성 보여줄게요” 클라리네티스트 김한
올해 6월에 열리는 두 번째 음악회에선 모차르트와 요하네스 브람스, 윤이상의 클라리넷 5중주를 선정했다. 10월 공연에선 윤이상의 '피리', 슈토크하우젠의 '어릿광대' 등을 들려주고 바이올리니스트 양인모, 피아니스트 박종해, 첼리스트 브레넌 조와 함께 메시앙의 '시간의 종말을 위한 4중주'도 준비했다. 연말에는 무대에 거슈윈, 번스타인 등 재즈를 클래식으로 풀어낸 작곡가들과 베니 굿맨 등 재즈 곡들도 공연 프로그램에 실었다.

오케스트라 활동과 병행하며 기획한 공연들이다. 무리해서 공연을 여는 배경엔 코로나19가 있다. 2019년 ARD콩쿠르 준우승 이후 유럽 명문 악단들에서 협연하자는 '러브콜'이 쏟아졌다. 지난해 코로나19로 예정된 공연 중 90%는 취소됐다.

아쉬웠던 지난해에 한풀이를 하듯 올해 공연을 짠 것이다. 그는 "최근 리카르도 무티가 '음악과 예술이 없으면 삶이 피폐해지기 쉬운 환경이다'란 말이 떠오른다"며 "무대에 서기 어렵더라도 음악은 이어져야 한다"고 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