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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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전공자 100명 중 2명 정도가 정가(正歌)를 배워요. 인기가 없죠. 수요가 없으니까…. 과거엔 맥이 끊길 뻔했어요.”

가객 하윤주(37·사진)가 전하는 정가 전공자들의 현실이다. 그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歌曲) 이수자다. 국악 입문은 정가로 시작했다. 대중에겐 낯선 장르다. 접할 기회가 드물어서다. 국악 공연은 대부분 판소리나 국악관현악단의 연주다. 정가를 포함한 정악에선 종묘제례악 정도가 유명할 뿐이다. 하지만 하윤주는 “오랜 무명생활 끝에 인기를 얻는 대중가수들이 있는 것처럼 언젠가는 정가 열풍이 불 것”이라며 꿋꿋한 모습이다.

정가는 국악계에서도 비주류다. 꺾고 토해내며 이야기를 풀어내는 판소리나 구성진 민요와 달리 담백하게 부른다. 자기 성찰과 수양을 위한 노래여서다. 옛 시조가 소재여서 단번에 이해하기도 어렵다.

“정가는 ‘사랑방 음악’입니다.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판소리와 달리 풍류를 읊는 장르예요. 차분하고 정제된 선율이 나오죠. 가사가 어려우니 모르고 들으면 지루할 수도 있어요.”

정가 전공자의 미래는 불투명하다. 하윤주는 “정가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외면받는 장르”라며 “찾는 이가 없으니 무대에 서기 어렵고 기량은 떨어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음악을 그만두는 후배들도 많단다. 현재 정가를 부르는 가객은 150여 명밖에 안 될 거라고 했다.

척박한 토양에서 살아남으려 그는 다양한 시도를 했다. 지난해 9월 동요 작곡가 레마와 함께 2집 ‘황홀극치’를 선보였다. 가사는 옛 시조 대신 현대시를 활용했다. ‘풀꽃’의 나태주 시인이 노랫말을 썼다. 밴드 선율을 얹고 하윤주가 정악으로 풀어냈다. 그는 “정가는 시에 맞춰 노래를 부르는 장르니까 동요와도 접점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정가를 알리려 TV에도 출연했다. 오는 2월 설 연휴에 방영되는 KBS 드라마 ‘구미호 레시피’에서 주연 백여희 역을 맡았다. 보수적인 국악계의 관행을 깨고 경연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감정을 눌러 담은 정가를 부르다 연기를 하려니 어려웠어요. 하지만 노래만 해서는 무대에 서기 어렵겠다고 판단했습니다. 판소리의 창극처럼 다양한 공연을 열려면 발전해야 하니까요.”

하윤주는 10년 이상 무명 생활을 거쳤다. 2017년 서울 돈화문국악당에서 열린 음악극 ‘적로’에서 주연을 꿰차면서 볕이 들기 시작했다. 이듬해에는 KBS국악대상 가악상을 탔고, 2019년 다른 장르와 엮은 음반을 연이어 발매했다. 크로스오버 밴드 ‘두번째 달’에서 객원 보컬로 나섰고, 극작가 배삼식·작곡가 최우정과 함께 음반 ‘추선’을 선보이기도 했다. 국악계에선 다른 장르와의 협업이 전통을 훼손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전통은 이미 예술성을 인정받았습니다. 창작곡들이 정가를 쉽게 무너뜨리긴 어렵습니다. 오히려 전통을 전수받은 음악가가 알고 제작을 맡아야 좋은 선율이 나옵니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