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왈도 과야사민 특별전

사비나미술관 국내 첫 전시
모든 작품이 에콰도르 문화유산
유화·수채화·드로잉 총 89점

"예술가라면 대중을 향해
노래하고 눈물지어야 한다"
스페인 내전으로 고통받는 여인을 7개의 연작으로 담아낸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눈물 흘리는 여인들’.  /사비나미술관 제공

스페인 내전으로 고통받는 여인을 7개의 연작으로 담아낸 오스왈도 과야사민의 ‘눈물 흘리는 여인들’. /사비나미술관 제공

세로 145m, 가로 75m의 긴 화면에 시커먼 망토를 입은 여인의 모습이 담겨 있다. 상복을 입은 그의 표정은 절망으로 가득하다.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또 좌절하며 얼굴을 감싸안는 두 손은 앙상하게 말라 있다. 긴 화면이 마치 죽음을 상징하는 관(棺)처럼 느껴진다. 남미 에콰도르의 국민화가이자 라틴 아메리카가 낳은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오스왈도 과야사민(1919~1999)이 그린 ‘눈물 흘리는 여인들’이다. 1936년 일어난 스페인 내전으로 아버지, 남편 등을 잃은 여성의 모습을 담았다. 1963~1965년에 그린 7개의 연작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스페인 여인의 눈물과 고통이 1주일 내내 반복되고 있음을 표현했다.

‘남미의 피카소’로 불리는 과야사민의 특별기획전이 서울 진관동 사비나미술관에서 오는 19일부터 열린다. 과야사민의 작품이 국내에 전시되는 것은 처음이다. 그의 모든 작품은 에콰도르의 국보급 문화재로 지정돼 있어 해외로 반출하려면 정부의 승인이 필요하다. 이번 전시는 양국의 문화교류를 활성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은 16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관념적인 경향이 강한 한국 미술 풍토에서 본질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작품들을 소개하게 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입체주의부터 사실주의까지 망라
과야사민은 자신이 목격한 격동의 20세기를 직접 화폭에 담아냈다. 1·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전 등으로 황폐화된 현실과 억압된 인간의 비극적인 삶을 그렸다. 그는 “예술가라면 대중을 향해 노래하고 눈물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예술적 형식은 원근법을 해체하고 3차원적 시각으로 인물을 그린 파블로 피카소의 입체주의와 비슷하다. 하지만 멕시코 벽화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호세 클레멘테 오로스코, 디에고 리베라 등 여러 예술가와 교류하며 다양한 사조의 영향을 받았다. 입체주의, 사실주의, 표현주의를 한 화폭에 모두 담아내는 다층적인 예술세계가 탄생한 이유다.

이번 전시엔 그의 유화, 드로잉, 수채화 89점과 영상 자료가 소개된다. 전시는 시기별로 나눠 ‘애도의 길(1946~1951)’ ‘분노의 시대(1960~1970)’ ‘온유의 시대(1980~1999)’로 구성됐다. 초창기 작품들로 구성된 ‘애도의 길’ 시리즈는 페루, 볼리비아, 칠레 등 남미 여러 나라를 직접 여행한 뒤 그린 작품들이다. 1942년작 ‘파업’은 길바닥에 쓰러진 사람들을 겨우 붙잡고 일으키려 안간힘을 쓰는 장면을 담았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작가의 딸 베레니세 과야사민은 “흙색 등을 주로 사용해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정체성과 그들의 슬픔을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가장 왕성하게 활동했던 시기에 그린 ‘분노의 시대’는 인간의 잔인한 폭력성을 고발한 작품들로 구성돼 있다. 과야사민은 이때의 기억을 ‘피의 강’이라고 불렀다. 대표작은 1970년에 그린 ‘펜타곤에서의 회의’시리즈다. 가로 179㎝, 세로 179㎝의 대형 정사각형 캔버스에 군인을 연상시키는 인물 다섯 명을 각각 한 사람씩 그렸다. 유대인을 수용소에 몰아넣고 무차별하게 학살한 독일군 장교의 광기, 주먹으로 책상을 내리치는 듯한 강압적인 모습의 라틴 아메리카 장군, 곁눈질을 하며 무언가를 염탐하는 스파이 군인 등이 사실감 있게 표현됐다. 각각의 몸짓과 표정은 다르지만, 전시장에 함께 걸려 있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그들이 회의를 하고 있는 장면이 연상된다.
어머니 그리며 인류애 메시지도
노년기에 접어든 과야사민의 작품 세계는 이전과 완전히 다른 경향을 나타낸다. 세상과 역사에 대한 분노, 폭력과 억압에 저항하던 사회적 메시지는 사라졌다. 대신 인간 본연의 내면을 깊게 파고들었다. 그 대상은 어머니로 귀결된다. 그는 노년에 이르러 ‘어머니와 아이’(1982) ‘온유’(1989) 등 어머니의 모습을 자주 그렸다. 어머니는 작가의 어머니를 포함해 보편적 인간, 나아가 지구의 생명에 대한 사랑을 의미한다.

강렬한 색채와 붓질도 사라지고 부드러운 터치가 나타난다. 베레니세 과야사민은 “어머니를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류애와 세상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려 했다”며 “이전에는 주로 흑백을 사용했는데 ‘온유의 시대’에선 전혀 다르게 따뜻한 색채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1월 22일까지.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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