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작품을 다시 만든 이승택의 ‘바람’.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1970년 작품을 다시 만든 이승택의 ‘바람’.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사무동 건물과 교육동 건물 사이 미술관마당 하늘에 푸른색 천이 나부낀다. 길이 70m의 밧줄에 기다란 푸른색 천을 나란히 매달아 놓았다. 한국 실험미술의 거장 이승택(88)이 1970년 홍익대 교정의 빌딩 사이에 100m 길이로 설치했던 ‘바람’을 다시 만든 작품이다. 펄럭이는 천의 움직임과 소리, 시시각각 변하는 형태를 통해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을 시각화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북쪽 길 건너편 아라리오갤러리 지하 1층 전시실 바닥에는 새하얀 눈꽃 같은 것이 깔려 있다. 세로 730㎝, 가로 430㎝의 공간에 흰색 세탁소 옷걸이 8000여 개를 구부리고 감아서 깔아놓은 최병소(77)의 1975년작 ‘016000’이다.

한국 실험미술의 대표작가 2명의 회고전과 개인전이 나란히 열리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이승택-거꾸로, 비미술’과 아라리오갤러리의 최병소 개인전 ‘의미와 무의미-SENS ET NON-SENS:Works from 1974-2020’이다.

이승택 회고전에는 1950년대부터 지금까지 설치, 조각, 회화, 사진, 대지미술, 행위미술 등 여러 장르를 넘나들며 왕성하게 활동해온 작가의 대표작 25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미술과 비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고정관념 타파에 도전해온 그의 60여 년 예술 여정을 조망하는 자리다. 자료로만 남아 있는 그의 기념비적 작품 10여 점을 다시 제작해 선보인다.

이승택의 예술관은 ‘거꾸로’로 압축된다. 그는 “나는 세상을 거꾸로 보았다. 거꾸로 생각했으며, 거꾸로 살았다”고 강조한다. 이승택은 1960년대부터 전통 옹기를 비롯해 비닐, 유리, 각목, 연탄재 등 일상 사물들로 새로운 재료 실험에 몰두하면서 당시 미술계의 통념으로 자리했던 ‘조각’ 개념과 결별했다. ‘성장(오지탑)’은 1964년 옹기 6개를 바닥에서 쌓아올린 작품으로, 이번 전시를 위해 새로 제작했다. 좌대에 작품을 올려놓았던 당시 조각의 기성 문법으로서는 파격적인 설치였다. 1970년을 전후해 이승택은 바람, 불, 연기 등 비정형의 비물질적 요소들로 창작을 시도했다. 상황 자체를 작품으로 삼는 이른바 ‘형체 없는 작품’도 실험했다. 1964년 화판에 불을 붙여 한강에 떠내려 보내는 장면을 그린 드로잉 ‘무제(하천에 떠내려가는 불타는 화판)’가 시작이었다. 그는 1988년 마침내 한강에서 자신이 그린 구상화, 즉 ‘보잘것없는 회화’에 불을 붙여 띄워보냈다. 당시의 사진을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돌, 여체 토르소, 도자기, 책, 고서, 지폐 등 다양한 소재들을 노끈으로 묶는 1970년대의 ‘묶기’ 연작도 다시 만난다. 전시는 내년 3월 28일까지.

최병소의 ‘무제 016000’(아래)와 ‘무제 0170712’.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최병소의 ‘무제 016000’(아래)와 ‘무제 0170712’.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아라리오갤러리에서는 예술과 사회 전반의 주류 체계를 부정하며 이의 해체를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자 해온 최병소의 실험작들을 만날 수 있다. 전시 제목 ‘의미와 무의미’는 철학자 메를로 퐁티의 동명 저서에서 따왔다. 이성과 논리의 무의미함을 강조하면서 물리적 경험을 중시했던 퐁티의 세계관과 맥이 닿아 있다는 생각에서다.

최병소의 작업에는 반예술적 태도가 깔려 있다. 그는 신문지, 볼펜, 연필은 물론 의자, 잡지, 사진, 안개꽃 등 어쩌면 하찮게까지 여기는 일상의 사물들에 새로운 의미와 예술적 가능성을 부여한다. 의자 위에 사물을 놓고 촬영한 사진과 문자를 결합한 작품, 노닐고 있는 두 마리 새와 그 상황을 설명하는 언어의 결합 등이 그의 실험정신을 잘 보여준다. 전시는 내년 2월 27일까지.

서화동 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