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록파' 조지훈 시인 탄생 100주년…"전통에 뿌리 둔 보수의 가치 제시"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승무’의 시인 조지훈(1920~1968)의 아들 조태열 전 유엔 대사는 “한국적 정서의 시어가 너무 섬세해 ‘나빌레라’는 영어번역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로 잘 알려진 ‘동탁’ 조지훈 시인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그의 업적을 기리는 행사가 잇따르고 있다. 조지훈은 대표 시 ‘승무’를 비롯해 ‘낙화’ ‘고풍의상’ ‘봉황수’ 등으로 민족의식과 고전미를 잘 살려내 한국 현대 서정시의 대표 시인으로 꼽힌다.

11일 고려대가 주최하고 지훈 탄생 100주년 기념주간 기획위원회가 주관한 ‘지훈 주간’ 행사는 조지훈의 학문세계를 문학과 역사, 지성사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또 평가하기 위해 마련됐다.

조지훈 시인의 유품을 전시하는 특별전 ‘빛을 찾아 가는 길, 나빌레라 지훈의 100년’이 이날 고려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행사의 시작을 알렸다. 육필원고부터 두루마기, 안경 등 그의 유품 100여 점이 내년 3월 20일까지 전시된다.

고려대 100주년기념관에서 열린 ‘조지훈 탄생 100주년 기념 강연 및 추모 좌담회’에선 그의 시세계를 분석하는 강연과 좌담이 이어졌다. 이경수 중앙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정지용, 김수영과 겹쳐 읽는 조지훈의 시 세계’라는 제목의 주제발표를 통해 조 시인 시세계에 영향을 준 정지용·김수영 시인과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교수는 “조지훈 시인의 뿌리에는 전통과 민족문화 계승이 있다”며 “자유로운 실험과 현실과의 접점을 경험하고 난 후 다시 그가 전통에 대한 탐구로 돌아왔을 때 그의 시가 어떻게 달라졌을지 상상해 보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조 시인은 같은 해 태어나 나란히 1968년 작고한 김수영 시인과 동시대를 살았지만 진보적 자유주의자 입장을 지닌 김 시인과는 다른 편에서 지사적 정신을 지키며 시대 현실에 대한 비판을 했다”며 “조 시인의 시는 진정한 보수 정신이 훼손돼버린 오늘날 우리가 잃어버린 가치와 정신을 회복해야 할 필요성을 말해주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열린 추모 좌담회에선 홍일식 전 고려대 총장과 김흥규·최동호 고려대 국문과 명예교수가 조 시인과 처음 만나 인연을 맺은 이야기부터 그에게 받은 인간적 느낌, 그에게 받은 문학적, 학문적, 사상적 측면까지 회고했다. 조지훈 시인은 고려대 국문과 교수와 민족문화연구소 소장 등을 지냈다.

고려대는 13일 시, 민족문화 등 조 시인이 탐구했던 다섯 분야에 대한 발표와 종합토론이 이어지는 ‘조지훈 인문학 축제’를 연다. 내년 2월엔 고향인 경북 영양군에서 탄생 100주년 기념 논문집도 출간될 예정이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